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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시in _ 스페셜 집중조명 _ 박은정 시인편1

스페셜 집중조명

by 미디어시인 2023. 3. 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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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피스트대표 박은정 시인 인터뷰를 통해 알아본 1인 출판사의 세계

 

 

<미디어 시in>에서는 최근 타이피스트’ 1인 출판사를 창업하고 첫 책 출간을 하게 된 박은정 시인과 인터뷰를 통해 타이피스트출판사의 특징과 1인 출판사 창업이 갖는 여러 요소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인터뷰 진행: 하린 기자

 

 

1: 박은정 시인님 아니 타이피스트대표님 안녕하세요.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답변: , 반갑습니다. 시인으로서만 활동하다 출판사 대표로서 인사를 드리자니 아직은 어색하기만 합니다. 아마도 단어에 실린 무게감을 이제야 실감하고 있는지라 더 그런 것 같아요. 요즘은 첫 책 영원과 하루를 출간하고 첫 책을 알리는 일들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모르는 부분들을 하나둘씩 배워 나가며 새로운 경험치들을 쌓아가는 중입니다.

 

2: 그래요. 첫 책 발간을 하고 바쁘게 지내시는군요. 텀블벅을 진행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진행 상황은 어떠신가요?

답변: 첫 책 영원과 하루를 어떻게 하면 많이 알릴 수 있을까 고심하다 텀블벅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시 창작 에세이라는 좁은 카테고리의 책이라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다행히 많은 분들이 후원해 주셔서 펀딩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3: 그렇군요. 1인 출판사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1인 출판사를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그리고 창업을 준비하면서 있었던 어려움은 없었나요? 1인 출판사를 준비하고 있을 분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답변: 오래전부터 책이라는 물성에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언젠가 내 손으로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고, 작은 사각형 안에 함축된 세계를 제가 보는 관점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1인 출판사를 하게 된 건 여러 여건이 작용하였겠지만, 무엇보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매달 나가는 지출을 줄여 좀 더 안정적으로 출판사를 운영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구요. 인쇄소, 지업사, 배본사 등을 결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저자 섭외, 책의 기획과 구성에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편집자로 일했던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그동안 제가 경험해 보지 못한 현실적인 부분들도 많았어요. 서점 계약을 할 때는 공급률 조정으로 여러 번 메일이 오가기도 했구요. 마케팅 부분은 더 많은 고민과 경험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하지만 1인 출판사는 제가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독특한 세계의 책을 만들 수 있죠. 독자들과도 더 가까이 소통할 수 있구요. 앞으로도 1인 출판사만이 가진 장점들을 찾으려고 합니다. 좀 더 개성 있고, 세심하게 신경쓸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1인 출판사는 거의 모든 것을 혼자 고민하고 실행해야 하기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수십 번 생각이 바뀌기도 하죠. 그럼에도 저만의 기준을 잡아서 결정을 하고 나면 성취감도 그만큼 크게 다가옵니다.

 

4: 구체적인 답변 감사합니다. 출판사 이름이 타이피스트인데요. 그 이름에 담긴 뜻과 의도는 무엇인가요?

답변: 타이피스트라는 이름을 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약간은 문학적이면서도 너무 상업적이지 않은,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이름을 짓고 싶었어요. 타이피스트는 세상의 작지만 소중한 목소리를 기록하겠다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입니다.

 

 

5: 발간을 앞둔 첫 책이 시를 쓰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시 창작 에세이영원과 하루입니다. 9명의 시인들이 각각 시 창작과 관련된 개성적인 에세이를 담은 것 같은데요. 책이 갖는 특징과 장점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답변: 말씀하신 대로,영원과 하루는 현재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시인들의 시 창작에 관한 에세이와 시를 함께 엮은 책입니다. 시인들이 시를 쓰면서 터득한 시적 사유와 창작에 대한 노하우를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9명의 시인이 건네는 시적 고민과 경험들은 시인이 되고자 하는 분들, 현재 시를 쓰고 있지만 시적 사유와 방향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창작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영원과 하루에 실린 글들에서 제 시의 방향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팁을 얻었으니까요. 시를 쓰는 일은 고독한 작업입니다. 그 고독한 시간 속에서 옆에 누군가 있음을 알려주고 힘이 되고 싶습니다.

 

6: 정말 시 쓰는 사람이나 시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문청들에게 좋은 읽을 거리가 될 것 같네요. 첫 책을 발간하고 나서 다음 책을 준비하고 계실 텐데 기획하고 계신 다음 책에 대해 살짝 귀뜸을 해주실 수 있나요?

답변: 며칠 전에 두 번째 책에 들어갈 원고가 들어왔어요. 타이피스트의 두 번째 책은 44색 사진 에세이입니다. 강혜빈, 이옥토, 홍지영, 김이인, 네 분의 필자가 함께 엮는 책입니다. 이 책은 네 명의 개성과 조화가 중요한 부분이라 섭외하는 데 고심이 많았습니다만, 다행히도 네 분 모두 글과 사진이 멋진 분들이라 특별한 색깔의 책이 나올 것 같습니다. 5월에 출간될 타이피스트의 두 번째 책이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저 역시도 기대가 됩니다.

 

 

7: 박은정 시인님은 타이피스트 대표인 동시에 시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데요. 창작 활동은 어떻게 하고 계시고 다음 시집(또는 시적 방향) 계획은 어떻게 잡고 계신가요?

답변: 두 번째 시집 밤과 꿈의 뉘앙스2020년에 출간되었으니,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세 번째 시집 원고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만, 좀 더 시편들을 다듬고 추가할 생각입니다. 요즘은 원고를 집중해서 볼 여유가 없어서 책상 위에 묵혀 두고만 있어요. 시인으로서는 미안한 마음입니다만, 조만간 다시 원고 뭉치를 손에 쥐어야겠지요.밤과 꿈의 뉘앙스가 실패한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한 노래였다면 세 번째 시집은 사랑의 연장선상에서 더 나아가 불확실한 사회적 질서 속에 내던져진 사람들이 자신만의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자기 갱신을 이루어 가는 이야기가 될 듯합니다.

첫 시집 사진

 

질문8: 박은정 시인님은 지금까지 공동 저서를 제외하고 시집 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문학동네, 2015)밤과 꿈의 뉘앙스(민음사, 2020)를 발간하셨습니다. <미디어 시in>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 2편만 소개해 주세요.

 

 

 

 

 

아내의 과일

 

박은정

 

아내가 떠난 뒤

그는 책상 위 편지를 읽었다

 

열매가 벌어지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어요

 

필체는 심해 속 물고기처럼 고요히 떠 있었다 어둠 속 어둠과 함께 몸을 섞으며 번지는 글자들

 

창밖으로 가끔씩 뼛조각 같은 달빛이 비치기도 했지만 거대한 어둠은 정화되지 않고

 

잠이 들면 도시가 물에 잠기는 꿈을 꾸곤 했다

 

아내는 떠다니고 있었다 썩은 과육처럼 짓무른 얼굴로, 그런 밤에는 심장이 딱딱해질 때까지 아내의 문장을 곱씹었다

 

우리는 누군가 버린 망원경 속에서 태어났어요 서로를 볼 수 있지만 만질 수는 없는, 적막한 빛의 세계 속에서 소각되기 위해 태어난 미물들

 

아내는 자신의 껍질을 모아 태우곤 했다 수북한 연기 속에서 어떤 문장을 주문처럼 반복하며

 

여보, 열매들이 썩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 기괴한 빛이 우리를 망치고 있어요 혀를 내밀며 조금씩, 우리가 우리를 조금씩

 

달고 시큼한 냄새가 온 집에 역병처럼 퍼지고 있었다 아내의 불면보다 더 집요한 기세로

 

과일들은 시들어갔다 조금씩 물러지는 부분을 손톱으로 눌러 터트리면 벌레 한 마리가 과즙 속에서 꿈틀거렸다

 

가끔씩 바다 위에서 비행기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아내의 이름은 없었다

 

과일 껍질들을 태우면 검게 변색한 아내의 속살이 거기 있었다 슬픔을 가려움으로 달랬다던 아내의 푸석한 얼굴이 슬픔도 없이 타고 있었다

 

― 『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문학동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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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의 밤

 

박은정

 

밤이었다 낮이라고 하기엔 우울했으니까 부모를 버리고 슬픔에 빠진 아이의 얼굴을 아름답다 느낀 밤이었다 어쩌면 다시는 없을 미움에 몰두하느라 자신의 나이를 잊어버린 눈빛이라 말해도 좋을 밤이었다 그날은 우연치 않게 우연으로 점철된 하루였다고 너는 말한다 그리고 나는, 너를 받아쓰는 사람이다

너는 언젠가부터 취해 있다 느슨한 혀로 알 수 없는 문장을 발음하느라 자주 흐느낀다 그러니까 어디까지 했더라 기억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느라 생긴 주름을 나는 어떻게 받아써야 할지 몰라 볼펜을 돌린다 시계 방향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다 보면 끝과 시작이 사라질 테고 그러다 보면 스스로 멈추거나 추락할 때도 있으니까

너는 한 문장을 바라보고 있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 손끝이 부스러지고 부서진 문장이 슬로모션으로 달아나는 것을 보면서, 기타라고 발음하자 기타, 네가 기타라고 말하면 나는 같다라고 쓰고 기타라고 쓰면 너는 기다 기어가다 기다랗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너의 혀는 길고 나의 손가락은 마디가 없다 입속의 침묵과 망각으로 만든 문장을 나열하면 나열한 문장들이 저들끼리 분란하도록, 우리를 지나친 시간이 밤의 무한으로 나아가도록

그러니까 어제는 밤이라 말해도 좋고 새벽이라 말해도 옳다 모두들 절반쯤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너는 여전히 미간을 좁히며 무엇을 잊었는지 생각한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볼펜을 돌린다 창밖에는 편백나무 숲이 보인다 한 문장만 반복하던 날들을 사랑이라 불렀던 적이 있다

―『밤과 꿈의 뉘앙스,민음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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