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박용하 시인 시집 『저녁의 마음가짐』 과 동시집 『여기서부터 있는 아름다음』 동시에 출간해 화제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3. 3. 5. 22:04

본문

 

일상을 활강하는 민낯의 불온한 기록들

 

 

김정미 기자

 

 

1989문예중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용하 시인이 시집 저녁의 마음가짐과 동시집 여기서부터 있는 아름다움동시에 출간해 화제가 되고 있다,

박용하 시인은 나무들은 폭포처럼 타오른다, 바다로 가는 서른세 번째 길, 영혼의 북쪽, 견자, 한 남자, 이 격렬한 유한 속에서, 저녁의 마음가짐등의 시집을 발간한 바 있는데, 지난해 10년 만에 여섯 번째 시집 이 격렬한 유한 속에서를 펴내기도 했다. 놀랍게도 불과 1년 만에 박용하 시인은 시집 저녁의 마음가짐과 동시집 여기부터 있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독자 앞으로 다가왔다. 독자들은 반가움과 놀라움, 흥미로움으로 두 권의 책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이 불과 1년 만에 신작 시집과 동시집을 함께 내놓을 있었던 이유는 시인의 말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나는 시를 멈춘 적이 없었다. 시는 나의 언어였고 언어는 나의 일이었다라는 말을 통해 끝없이 분출되고 있는 시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가열찬 시 정신의 산물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동안 박용하 시인은 시로써 우리를 불편하게 했다. 그 불편함을 견뎌내면 마침내 불순하고 불온한 세상을 통찰하게 된다. 등단 34년 만에 세상에 처음으로 내놓은 동시집 속엔 시인만의 개성 있는 시선과 호흡이 가득하다. 삽화 대신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을 넣고 사진과 어울리는 동시를 썼는데, 출판사 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동시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유니크한 동시집이라고 한다.

 

박용하 시인의 시집엔 평론가의 해설 대신 시인 자신의 산문을 실었다. 그리고 시집에 실린 시의 편수가 38편밖에 되지 않는다. 일반 시집과는 차이가 나는 지점인데, 개별 작품의 힘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언어의 힘(삶의 힘)이 떨어진다고 느낀 작품을 빼고 시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로만 수록한 것 같다.

 

시인 심재상은 이번 시집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출판사 자료 인용)

인간 박용하, 시인 박용하가 절대로 양보하지 않거나 포기하려 하지 않는 것은 정직함이다. 세계 전체와 총체적으로 맞서온 막무가내의 젊은 시절에도 그랬고, 이미 저녁을 예감하는 중년의 나이에 일상이라는 이 격렬한 유한과 처절하게 몸싸움하는 요즘에도 그렇다. 치열함도 여전하다. 달라진 것은 언어의 강도가 아니라 시선의 깊이, 바로 성찰의 깊이다.

또한 이 시집은 한없는 슬픔과 회한과 치욕감과 비애를 안겨주는 바로 그 일상에 군림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실제로 박용하 시인은 일상적 코드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보적인 언어로 유한의 세계에서 무한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 세상에 처음 자신의 시를 들이밀 때부터 지금까지 박용하는 끝끝내 세상과 불화하였고 앞으로도 그러한 시적 지향성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그대가 자유하다면 부자유하라. 나는 부자유를 먹고 또 먹는다. 부자유를 활강하겠노라라고 한, 박용하의 의지가 담긴 이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끝끝내 숨기고 싶은 부끄럽고 추악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는 길일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글에 관한 추억

 

 

박용하

 

 

말이 우리를 갖고 논다

우리는 갖고 놀지도 못하던 그 말을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갖고 논다

갖고 놀기의 선수들

말 돌리기의 명수들

무죄책의 달인과 무자책의 9단들

그런 그들이 우리를 갖고 논다

우리가 몸 저리며 마음 아꼈던 그 말을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굴린다

그들이 잘 갖고 논다는 국민들과

국민이라는 이름의 신민들과

어불과 성설과 함께

지극히 민주적이지 않은 민주 시민들과

부패 주민들과 함께

나였던 적이 없었던 우리를 부리듯이 국가를 갖고 논다

갖고 놀기의 기계들 앞에서

갖고 놀 말이 없어서

우리는 겨우 글로 만난다

몇 년에 한 번 글로 만난다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를 갖고 놀 때

우리는 팔았다

우리의 양심을

우리가 지켜야 할 고통과 노래까지 팔았다

 

말이 우리를 갖고 논다

심지어 그들의 말이 그들의 얼굴을 갖고 논다

우리는 맘껏 갖고 놀지도 못하던 그 간사한 얼굴을

그들은 가볍게 갖고 논다

갖고 놀다 싫증나면 금방 버린다

갖고 놀다 버리기의 선수들

단물 빨고 빠지기의 명수들

그런 그들이 우리를 갖고 버젓이 농락할 때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

우리는 피부를 뒤집어쓴 부품이었다

그들이 말을 갖고 파티를 열 때

얼굴을 갖고 놀지 못하도록

그들의 심장을 파냈어야 했다

우리가 지은 죄는

그들을 끝까지 의심하지 않은 죄

나 자신을 의심하지 않은 죄

그들이 말을 갖고 한 사회를 유린하려 들 때

우리는 그들이 인간인 줄 알았던 것처럼

우리도 인간인 줄 알았다

 

말이 죽음을 갖고 논다

우리는 돌 울음

우리는 자라나는 질문

 

― 『저녁의 마음가짐, 달아실, 2023.

 

 

 

평범한 날들

 

 

박용하

 

 

일상이 무너지면 많은 게 무너진다

거의 다 무너진다

일상 같은 거 그러며 우습게 지내던 날들도 엊그젠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는 오가고

생활이라는 아름답고도 처절한 말과 함께 또 하루를 살아간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나 없는 세상이 무슨 소용인가

그대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대 없는 세상이 또 무슨 소용인가

서 있는 울부짖음과 뛰어가는 환희와 함께

돌아올 수 없는 몸 냄새와 함께 시간이 날아간다

평범이 무너질 때 비범도 함께 무너진다

 

어진 사람이 사는 곳이 명당이라는데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없다

 

― 『저녁의 마음가짐, 달아실, 2023.

 

 

 

 

구름

 

 

박용하

 

 

구름바다에 비행기 떠간다

구름바다에 눈동자 떠간다

 

구름의 일은

구름의 일

 

인간의 일은

인간의 일

 

구름은

구름 아래의 일을 모른다

 

동시집 여기서부터 있는 아름다움, 달아실, 2023.

 

 

동물의 힘

 

 

박용하

 

 

고양이와 잘 지내는 사람을

신기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나는 고양이보다는 개여서 그런지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사람을 놀라운 심장으로 대한다

 

그들은 똑같은 사람인데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어서

십 초라도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나를 더듬게 한다

 

파충류와 동고동락하는 사람도 있지

생긴 게 그렇지

인간처럼 거짓말을 합니까

배신을 때립니까

그러면서

여러 마리가 몸을 감고 있는데도 태연히 독서를 하는 그 사람

 

돼지와 한 방에서 지내는 사람도 있지

그건 차라리 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제자리서 점프해 담장 위를 훌쩍 뛰어오르거나

날아오르는 참새를 공중에서 낚아채는 광경도 가끔 목격한다

 

고양이는 이미 신비

꼬리와 털과 걸음걸이에 들어 있는 신비가 백이라면

그 눈동자에 들어 있는 신비는 이백

 

동물한테 함부로 안 하는 사람은

사람한테도 함부로 안 한다

사실일까?

 

사람한테 함부로 안 하는 사람은

동물한테도 함부로 안 한다

진실일까?

 

동물이 식물이라면

식물은 동물이었고

인간은 동식물이었다

 

고양이의 세계에서 고양이와의 세계로

돌멩이의 우주에서 돌멩이와의 우주로

개의 나라에서 개와의 나라로

 

동시집 여기서부터 있는 아름다움, 달아실, 2023.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