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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미영 시집 『봄만 남기고 다 봄』, 달아실 시선으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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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3. 3. 10.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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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픔으로 상한 영혼을 위한 처방전

 

 

 

정지윤 기자

 

1995현대시로 등단한 노미영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봄만 남기고 다 봄이 달아실시선 63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교육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그동안 시집 『일 년 만에 쓴 시』(현대시, 2002)와『슬픔은 귀가 없다』(시인동네, 2016)를 발간했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황정산은 이번 시집을 갇히고 닫힌 세계의 영혼들을 위한 진혼곡이라 명명하며 우리의 삶은 모두 무게로 이루어졌다. 모두 어깨에 무거운 짐을 얹고 살고 있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고, 가족에서의 역할, 직장과 조직에서의 위치, 사회적으로 얻은 명망과 영예가 모두 무게가 되어 본인의 삶을 압박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한없는 가벼움을 추구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이 모든 무거움으로 갇히고 닫힌 세계에 살고 있다. 노미영 시인의 이번 시집은 바로 이 닫히고 갇힌 세계 안에 살고 있는 존재들을 위해 쓰여졌다라고 평했다.

인간은 없는 것들을 꿈꾸는 동물이다. 없는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말을 만들고 없는 것들을 재현하고자 예술을 발전시키고 없는 것들에 대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못 가진 아니면 내가 잃어버린, 이 없는 것들을 위해 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없는 것들을 위해 일을 하고, 없어서 지금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위해 사랑을 한다. 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그가 가진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가 갖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의해 내려진다라고 말하며 없는 것들의 세계에 대해 주목한다.

 

황정산 문학평론가는 노미영 시인의 살피고 있는 슬픔의 근원을 “(자본주의가 낳은) 욕망과 결핍으로 설명하지만,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슬픔의 근원은 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슬픔을 치유하는 어떤 처방전도 원인(근원)을 알지 못한다면 미봉책일 뿐이라는 것. 그러니 스스로 그 연유를 찾아야 한다는 것. 시인이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지점이 아닐까. “이름만 남고 다 뜯겨진 봄이란 화두는 슬픔의 근원을 찾으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노미영 시인은 이번 시집이 “‘봄다운 봄이 오기를 바라는 영혼들에게 처방전 같은 노래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자신 안의 반딧불이 같은 빛을 잃는다면 슬픔의 근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근원을 밝혀야 슬픔의 새장에서 놓여날 수 있다는 것, 타인의 슬픔들도 녹여낼 수 있는,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되자는 것, 그런 봄다운 봄이 오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담은 시집이라고 자평했다.

봄다운 봄을 기다리는 모든 독자의 일독을 권한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이름에게

 

 

노미영

 

 

숭숭한 돌을 던지는 마음과 가만히 두는 마음 사이에서

천칭자리처럼 개여울처럼,

 

이름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들끼리 만나

이름으로 수놓아진 노을의 피부들

 

동시에 균질한 진공관이 되고

서로를 음송吟誦할 수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찾아올 수 없는 축복

 

거슬러 올라가는 액체의 빗장뼈로

어귀로 번지는 기체의 잎맥으로

 

놓아줄 수가 없어

견고해진 이름은

무성한 반딧불이들의 성곽

 

작지만 큰 기운의 둘레길을 나란히 걸으며

빛의 도록이 데려다주는 계절로 숨어들어요

 

누구도 찾아낼 수 없는 절기節氣의 지붕 위에서

강아지풀처럼 서로의 손바닥에 기대

 

저물지 않는 손등을 쌓아 올려요

손가락을 걸어 이름의 눈망울을 두드려요

 

 

 

- 봄만 남기고 다 봄, 달아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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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入門

 

 

노미영

 

 

우리는 언젠가 모두 그을려요

왜 슬픈지 모르고 슬퍼요

안 고이는 데가 없어요

 

구절초와 코스모스가 늘 헷갈렸어요

그래서 당신을 아프게 했나 봐요

걷다가 자꾸 멈칫했나 봐요

못 알아봤나 봐요

 

만개한 노을이 물구나무서서 고샅길로 흩어지네요

 

평상에 누워 하늘을 들이마셔요

 

곡진한 빛이 저기서 묻어나네요

 

손등을 마주 대보아요

우리들의 시간을 앞섶에 담아요

 

 

 

- 봄만 남기고 다 봄, 달아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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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노미영

 

 

시푸른 그림자의 창문을 처음 두드려주던 소리가 좋아요,

명주달팽이의 보폭보다 더 느리게 다가와 스며들던 매일의 섬이 좋아요,

바다 밑이 좋아요 몇백 점의 수평선이 좋아요 누를 수가 없어 더 좋아요

 

돌고래들이 일으키던 파도를 넌지시 건네주던 손길이 좋아요,

다 좋아요, 녹지 않는 눈[]을 거품 내어 허공에 발라주며 평화를 빌어주어,

그림자의 그림자까지 다 건져다가 태워버리라고, 유려한 용기를 내일로 끌어다 주어서 좋

아요,

 

다 들어주는, 넓은 귀가 좋아요, 청귤의 향을 그려내는 당신의 바탕체가 좋아요,

시간을 삭이느라 구름 위의 하늘을 오래도록 내려다보던 눈 밑도, 멋쩍어하는 웃음도,

좋아요, 더욱 밝아진 의심이, 이름을 묻는 목소리가 좋아요,

내일을 모레를 밟아볼 수 있게 기다려준 기다림이 좋아요, 다 좋아요,

오들오들 떨던 섬에게 의자를 가져다주어서 좋아요,

다 알고 있었으면서 모르는 듯 물러서 있던 어깨가 좋아요,

 

바람을 고르는, 바람의 흙을 골라 가지런히 반죽하는 믿음이 좋아요, 없는 행간을 발견하

속내가 좋아요, 어둠을 돌보는 불꽃들을 지펴주는, 부서진 영혼을 다 그러모아 동그랗게

붙여주는 뒷모습이 좋아요, 부드러워지지 않는 횡격막을 해거름의 군락으로 초대해주어

좋아요 다 좋아요, 핏빛 굴레가 일으키는 슬픔의 팔가락지를 함께 손목에 두를 수 있어,

나의 세계가 아니던 통창들, 보이지 않던 집의 윤곽들, 서까래를 처마 밑을 지어주어

 

좋아요, 좋아요, 다 좋아요

누를 수 없어, 누르고 싶어, 더 좋아요

좋아요가 보름달이 되어, 부서지지 않는 달항아리가 되어, 하늘길이 되어

 

좋아요 좋아요 참 좋아요

 

 

- 봄만 남기고 다 봄, 달아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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