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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 시인의 〈時詩각각〉1 _ 김영란의 「슬픈 자화상」

시조포커스

by 미디어시인 2022. 10. 2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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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자화상

― 나혜석을 다시 읽으며

 

김영란

 

꽃이 피었다 한들

그대 위해 핀 건 아냐

금지된 소망 앞에

슬픈 꽃말 피어난다고

세상에 맞춰 살라는

그런 말 하지 마

수없이 피고 지는

삶이 곧 사람인 걸

덧칠해도 더 불안한

세월은 마냥 붉고

한 시대 행간을 건너는

여자가 거기 있네

― 『누군가 나를 열고 들여다 볼 것 같은』, 시인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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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서양의 사조들이 들어와 격변기를 맞았던 일제 강점기 시절, 여성해방론을 펼치며 진보적인 길을 걸었던 화가 나혜석! 전통적 가치관에 저항해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무모한 도전을 시도했던 그녀의 용기는 비난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가져왔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탓으로 그녀의 재능과 가치관은 오히려 불미스럽다는 취급을 받았고 그녀의 상당수 그림은 짓밟혔다. 파격적 결혼관과 여성해방에 관한 글들은 그녀의 말로를 비운으로 내몰았다. ‘서양화가’, ‘근대적 여성 해방운동의 상징적 인물’, ‘문학가’라는 그녀를 수식하는 말들은 ‘여성 최초’라는 브랜드로 인해 그녀를 더 빛나게도 비참하게도 만들었다. 만삭의 몸으로 최초의 서양회화 전시회를 여는 주인공이 되고 결혼 후에도 육아에 관한 수기와 계몽적인 글을 쓰던 나혜석의 길은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다. 남편 김우영을 따라 1927년 세계여행을 가기 전까지는.

그녀가 맞닥뜨린 파리의 미술계는 그녀에게 일본식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인상파, 입체파, 야수파의 화풍에 매료되게 하였다. 낯선 풍경은 그녀에게 대담한 붓질을 허용했지만 우리와는 다른 자유로운 부부생활을 보면서 위험한 사랑에 빠지게 되는 비운을 낳았다. 여자는 “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 남편의 아내 인형으로 그들을 기쁘게 하는”(「인형의 집」) 존재가 아니다. “꽃이 피었다 한들/ 그대 위해 핀 건 아”니므로 “세상에 맞춰 살라는/ 그런 말 하지” 말아야지. 가부장적 가치관을 격하게 비판했던 그녀에게 파리는 자신의 삶에 빛과 어둠을 예고했다. 나혜석의 불륜은 당시 사회에 퍼지고 이혼으로 이어지면서 그녀의 외로움은 커져갔다. 〈슬픈 자화상〉에서 보여준 강렬한 흑백 대비와 인물의 표정에서는 마치 비운의 말로를 예감한 듯하다. “한 시대 행간을 건너는/ 여자”를 마주 보는 시간이다. 

 

 


 

이송희

2003 《조선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했으며 열린시학 등에 평론을 쓰며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환절기의 판화, 아포리아 숲, 이름의 고고학, 이태리 면사무소, 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 평론집 및 연구서 아달린의 방, 눈물로 읽는 사서함, 길 위의 문장, 경계의 시학, 거울과 응시, 현대시와 인지시학, 유목의 서사(근간) 등이 있다. 고산문학대상,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전남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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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 시인의 〈時詩각각〉1 _ 김영란의 「슬픈 자화상」 - 미디어 시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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