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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시집 『조금 전의 심장』 민음사에서 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3. 5. 3.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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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선명해지는 생의 소리와 언어 바깥의 세계

 

 

 

하린 기자

 

1992경향신문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후 꾸준히 감각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 준 홍일표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조금 전의 심장을 민음사에서 발간했다.

 

그동안 홍일표 시인은 언어로 포획될 수 없는 인간 질서 너머의 세계를 좇아 형상화하면서 깊이 있는 시의 지평을 열어왔다. 조금 전의 심장은 그 지평의 연장 선상에 있으면서 독보적인 감각과 사유로 찾아낸 신비한 요소들을 모티브 삼아 또 하나의 세계를 구축했다. ‘구전설화노래등 오직 소리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들과 방언이나 불립문자같은 신성의 언어를 원천으로 삼아 길어 올린 이미지와 소리들이 그만의 시선으로 색다른 결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 발견한 새로운 세계의 신비스런 원천은 다름 아닌 이다. 시인에게 심장은 몸 안에 깃든 인간 질서 너머의 세계그 자체이다. 조금 전의 심장으로 시인은 온몸의 감각기관을 활짝 열고 전에 없이 삶에 밀착된 몸짓으로 세계를 마주한다.

 

해설을 쓴 오연경 문학평론가의 말대로 홍일표 시인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문자로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사물과 존재들이 뱉어내는 말, 해석되지 않고 문장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세계의 맨얼굴을 붙들어 보려는 과정을 시로쓰는데, “온몸의 감각기관을 재배치하여 세계의 감각기관과 조응하려는 몸짓이 더욱 역동적이고 생생하게 살아나도록 하는 시작법을 선보인다.

 

시인이 열어 준 길을 따라 우리는 몸과 인식의 경계를 허물어 사물이 말을 걸어오는 방식에 감각을 내맡겨 보게 된다. 그 전엔 알아채지 못했던 낯설고 매혹적인 반짝임과 그림자, 희미한 소리 들이 물밀듯 다가든다. 그렇게 우리는 생성되는 순간 사라지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언어 바깥의 소리들, 저마다의 리듬을 만들어 내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따라 이제 조금씩 다르게 박동하기 시작하는 심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발신

 

홍일표

 

멀리 안개 뒤에서 개가 컹컹 짖는다

개는 보이지 않고

귀만 점점 커진다

 

소리를 만진다

몸으로 만지는 소리에는 거친 거스러미가 있다

울퉁불퉁한 흉터도 있다

 

눈앞에 없는 개가 점점 자란다

하느님만큼 커진다

 

컹컹 짖을 때마다 허공이 조금씩 찢어진다

틈새로 얼핏 보일 듯도 한데

보이지 않는다

개는 죽어서 돌아오지 않는

열일곱 살 봄날 같다

 

강가에 서 있던 내가 지워진다

안개 저편에서 누가 내 목소리로 부르는 것 같다

그가 나를 살고 있는 것 같다

 

그가 꾸고 있는 기나긴 꿈의 한 모퉁이

잠시 피었다 지는 개망초 근처에 내 발자국이 있다

 

저만치서 낡은 신발 한 짝 물고 흰 강아지가 오고 있다

안개가 숨어서 몰래 낳은 아이 같다

 

― 『조금 전의 심장, 민음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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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칭

 

홍일표

 

너머에 숨은 얼굴이 있다

이름도 없고

기호도 없는

그를 뭐라고 불러야 하나?

 

이곳의 표정을 지운다

이곳의 표지판을 삭제한다

 

컵은 물을 기억하지 않고

물은 컵의 형태를 고집하지 않는다

 

잠시 지상에 어른거리다 사라지는 물안개를 따라간다

바깥의 바깥까지 가면

컵이 없다

바위도 없다

 

어제의 결심이 있던 자리에 드라이아이스가 있다

마이크가 있던 자리에 파꽃이 흔들리고 있다

 

결정되지 않고

텅 비어 있던 나는

잠시 무정형의 리듬이 된다

바깥에서 무한으로 출렁이는 노래가 된다

 

외진 구석에서

밀정처럼 숨은 얼굴이 나타난다

 

어디선가 새로 태어난 봄을 호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 『조금 전의 심장, 민음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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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시집 『조금 전의 심장』 민음사에서 발간 - 미디어 시in

하종기 기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후 꾸준히 감각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 준 홍일표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조금 전의 심장』을 민음사에서 발간했다. 그동안 홍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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