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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희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봄의 귀를 갖고 있다』 시작시인선으로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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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3. 5. 4.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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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뛰어 넘는, 봄을 향한 시편들

 

 
 
 
하린 기자
 
1990년 『현대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후 시집 『종이꽃』 『늑대의 발톱』 『시간 여행자』 『초록이 아프다고 말했다』 등을 발간하고, 제2회 『현대시』 시인상을 수상한 바 있는 최춘희 시인이 시집 『봄의 귀를 갖고 있다』(천년의시작, 2023)를 통해 독자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이번 시집 『봄의 귀를 갖고 있다』의 테마 중 하나는 죽음이다. 죽음 너머를 본 자는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처럼, 죽음 이후 ‘무덤에 들었던 한 사람’인 것처럼 죽음의 제 현상을 시인은 시라는 장르를 통해 탐색한다. 그런데 그 죽음이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고 암울함을 뛰어넘는다. “나 아닌 또 다른 내가/ 물그림자로 비치는/ 헛것인 나를 보고/ 비바람에 지워진 비문처럼”(「우두커니」) 죽음 너머를 미학적으로 인식했지만 죽음을 뛰어넘는 사유를 끊임없이 펼친다. 죽음이 모든 생명이 살아나는 새봄에 다시 돌아온다는 걸 연기적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편들은 봄의 태동하는 조심스런 숨소리를 갖고 연하고 순하게 다가온다. “미세한 땅의 기척과/ 바람의 숨소리”조차 잠재우며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는 서정적 순간들을 자연과 나누는 감각적 교감을 통해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어둡고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듯이/ 귓가에 따스한 숨결 불어 넣으며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중략) 오늘이 빙점을 깨트리고 나온 첫, 생일”(「입춘」) 이라고 말하는 시인. 그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텅 빈 생의/ 도착점”에서도 희망의 끈을 쉽게 놓지 않는다. “지나 보면/ 꽃 피던 시절/ 다 봄날이었다”(「따라가는 봄」) 라고 말하며 죽음의 그림자를 긍정적으로 승화시킨다.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바람처럼 흩어지는 짧은 봄날’ 같은 순간을 살아내며 시인은 ‘비 그친 뒤 더 쨍하고 세상은 살만’(「맑음, 흐리고 비」)하다고, 그곳이 어디든 자기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면 된다고 위로의 말을 스스로에게 전한다.
 
추천사를 쓴 한영옥 시인은 시집 『봄의 귀를 갖고 있다』의 “봉인된, 깁스된 봄(春)의 낱낱들은 시인이 지나는 터널이자 우리 모두의 터널”이라고 말하며, “터널을 숨죽이며 걸어가는 것은 터널이 끝나리라는 것을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언술했다. 한영옥 시인의 말처럼, 최춘희 시인에게 고통과 불안을 뚫고 나올 수 있는 유일한 힘은 ‘터널’ 끝에 곁을 내어 주는 사랑과 신생의 봄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한 폭의 서정적 풍경을 이루는 봄의 시편들이 자연과 인간의 내밀한 관계에 깊이 뿌리 내리며 펼쳐진다. 암울한 시대에 암울한 상태를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은 시집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입춘
 
최춘희
 
내 이름 속에 봄이 들어 있었는데 나는 봄을 찾아 멀리, 더 멀리 떠돌아 다녔지요 눈 내리는 날 태어난 눈의 아이, 겨울왕국의 얼음세포가 모든 걸 얼어붙게 만든다고 믿었어요 눈 폭풍이 휘몰아 칠 때마다 두려워 도망쳤지요 불빛 없는 북극의 얼음 굴에 몸을 숨기고 봄이 나를 찾아주길 기다린 적도 있어요
 
천변 풀밭에 원앙 한 쌍 사이좋게 모이를 쪼아 먹고 있네요
물위를 천천히 오리들 떠다니며 햇살아래 평화롭게 놀고 있어요
이 가지 저 가지로 참새 떼 옮겨 다니며 재잘재잘 노래 불러요
까치들도 반갑게 인사하며 소식 전하고 여기 저기 날아 다녀요
 
어둡고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듯이
귓가에 따스한 숨결 불어 넣으며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잿빛으로 물든 우울한 풍경 눈사람처럼 천천히 녹아내리고 솜사탕처럼 달콤한 바람이 불어 와요
두꺼운 외투를 입은 사람들 발걸음도 새털같이 가벼워 보이네요
 
오늘이 빙점을 깨뜨리고 나온 첫, 생일입니다
 
― 『봄의 귀를 갖고 있다』, 천년의시작,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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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질량은 우리 몸의 고유한 기록이다
 
최춘희
 
물가에 오래 앉아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물가에 앉아 하염없이 등만 보이고 앉은 사람
그 뒤에 서서
오래도록 그를 바라보던 사람도 있다
 
아이들 깔깔, 달려가고 선 캡을 푹 눌러 쓴 사람들 팔 다리 내저으며 걸어가는 천변공원, 기역 자로 허리 꺾어진 노인 뒤를 반려견이 꼬리치며 따라가고 있다 붉은머리 오목눈이는 흰 조팝나무 갈라진 나뭇가지 사이에 둥지를 짓고, 이제 곧 새끼들이 날개 퍼덕이며 날아오를 것이다
 
눈물 많은 이 세상에 온 푸르른 것들이 나는 좋다 길가 깨어진 블록 사이 풀 몇 포기, 피워 낸 잔별들이 너무 좋다 물안개처럼 차오르는 잘 익은 슬픔의 향취가 굶주린 뱃속을 채우고 어느 날 나를 떠나갈 때 내 갈증과 비천함과 측은한 눈빛도 떠 갈 날이 금세 오리라
 
지나가는 모든 이에게 자신의 뒷모습을 아낌없이 내어 준
당신은 누구였을까
 
― 『봄의 귀를 갖고 있다』, 천년의시작,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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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희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봄의 귀를 갖고 있다』 시작시인선으로 발간 - 미디어 시in

하종기 기자 1990년 『현대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후 시집 『종이꽃』 『늑대의 발톱』 『시간 여행자』 『초록이 아프다고 말했다』 등이 발간하고, 제2회 『현대시』 시인상을 수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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