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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인의 시론집 『문명의 바깥으로』 창비에서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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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3. 5. 14.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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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에 대한 나희덕만의 생각을 알고 싶다면…

 

 

 

하린 기자

 

 

 

대산문학상, 백석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시단의 큰 ‘기둥’으로 우뚝 선 나희덕 시인이 시에 대한 철학과 그간의 관심사를 촘촘하게 엮어 두 번째 시론집 『문명의 바깥으로』를 발간했다. 발표한 글들을 벼리고 선별한 다음 일관된 주제와 색채로 책을 구성한 것이 눈에 뜨인다.

 

제1부에서 시인은 자본주의의 말기적 증상과 이로 인한 생태위기의 현실에서 시의 역할을 되짚어본다. 자본세(Capitalocene)와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지금’을 사는 시인들은 어떤 의식을 바탕으로 저항하고 있는지를 톺아보는 작업이 인상적인데, 백무산 · 허수경 · 김혜순의 시를 바탕으로 살펴본다. 강성은 · 이장욱 · 이근화의 작품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공생의 길을 추적해본 것도 유의미한데 최근 발표되는 ‘반려동물 시집’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제2부에서는 작가론들을 모아 놓았다. 정현종 · 김종철 · 강은교부터 신예 시인인 조온윤 · 박규현에 이르기까지 나희덕이 주목한 시인들의 시세계가 담겨져 있다. 분석 중심의 작가론과는 달리 개인적인 에피소드와 담담한 사념이 윤활유처럼 감싸고 있어, 마치 각각의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편안함을 주고 가독성을 배가시킨다.

 

제3부엔 백석 · 윤동주 · 김수영 · 김종삼에 대한 학술적 성격의 글이 담겨져 있다. 한국 현대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시인들의 작품 세계를 나희덕만의 시선과 통찰력으로 해석했다. 특히 김종삼의 「라산스카」 시편에 대한 비평문은 마치 추리소설을 방불케 할 정도로 흥미진진한데, ‘라산스카’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를 폭넓은 문화적 지식을 동원해 추적하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나희덕의 말에 의하면 시는 “세상에 대한 절박한 호소와 경고”이자 “성냥팔이 소녀가 필사적으로 그어대던 성냥의 불꽃처럼 이 시대의 어둠을 조금이나마 밝힐 수” 있는 간절함이다. 그 간절함이 나희덕의 시와 시론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시에 대한 나희덕만의 생각을 알고 싶다면 『문명의 바깥으로』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사진 _ 권혁재

 

 

<책 속의 구절 맛보기>

 

 

2000년대 이후 한국시는 지배적 감각체계를 바꾸고 새로운 윤리를 모색하는 전환기를 통과하고 있다. 특히 생태정치가 세계의 위기와 삶의 고통을 발화하는 공통지점으로 등장하고, 다양한 정동의 양태와 언술방식으로 분화한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 스펙트럼은 매우 넓지만, 이 글에서는 백무산, 허수경, 김혜순의 최근 시를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이 세 시인들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대립구조 속에서는 다른 경향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과 죽음, 노동과 계급, 문명과 자본주의, 전쟁과 폭력 등에 대한 지속적 탐구와 시적 실천을 해왔다는 점에서 친연성을 지닌다. ‘자본세’의 디스토피아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그들의 몸은 언어라는 가장 무력한,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로 맞서 싸우고 있다. 이 싸움이 주체 중심의 증언과 선언이든, 타자 지향의 질문과 대화이든, 타자-되기의 연행과 제의이든, 그 모두를 ‘저항’이라고 부르지 않을 이유가 내게는 없다.

― 「자본세에 시인들의 몸은 어떻게 저항하는가」 부분, 『문명의 바깥으로』, 창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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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라는 매트릭스에 안주하거나 자연과의 낭만적 동일화를 넘어, 파괴되고 오염된 세계의 실상을 직시하고 증언하는 시들이 계속 쓰이고 있다. 그 시들은 상실의 고통 속에서 부르는 비가(悲歌)이자, 죽거나 희생된 존재들을 애도하는 만가(輓歌)다.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하데스에게 딸을 빼앗기고 스스로 불모의 땅이 되어 불렀던 슬픔의 노래다. 시는 순하고 부드러운 흙에서 태어났으나 더러워지고 병들어가는 흙 속에서도 끝내 그 자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 흙의 마음이 곧 시의 마음이기에.

―「흙의 시학」 부분, 『문명의 바깥으로』 ,창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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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적 팬데믹을 겪으며 드러난 미국과 유럽의 실태를 보면, 앵글로색슨 문명이 근본적 한계지점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러한 문명의 전환점에서 새로운 지표를 어떻게 세워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시기에 선생님의 혜안을 더이상 접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예루살렘’을 무엇으로 설정하든 “정신의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 “나의 칼을 내 손에 잠들어 있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생님은 블레이크의 시를 통해 말씀하고 계신 듯하다. 그러고 보니, 남은 우리의 손에 모래 몇 알이, 또는 씨앗 몇 개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지 않은가.

―「문명의 파수꾼 김종철」 부분, 『문명의 바깥으로』, 창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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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의 화자들은 대부분 길 위에 있다. 이 시의 ‘나’ 역시 모든 길들이 흘러오는 저녁의 정거장에 서 있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는지 알지 못한 채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다고 여기며 나그네는 이렇게 말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라고. ‘나’는 짐짓 희망을 향해 몸을 돌린 것 같지만, 실은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을 처연하게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어둠에 천천히 버무려지는 이 풍경에는 절망과 희망, 추억과 망각, 자연과 인간, 개인과 집단, 내면과 현실 등이 서로 교차하며 뒤섞인다. 그 대립되는 양극 사이에서 예민하게 작동하는 윤리적 감수성은 ‘미안하지만’이라는 말의 반어적 뉘앙스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미학적 진원지로서의 기형도」 부분, 『문명의 바깥으로』, 창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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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인의 시론집 『문명의 바깥으로』 창비에서 발간 - 미디어 시in

하종기 기자 대산문학상, 백석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시단의 큰 ‘기둥’으로 우뚝 선 나희덕 시인이 시에 대한 철학과 그간의 관심사를 촘촘하게 엮어 두 번째 시론집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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