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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이인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검은 머리 짐승 사전』 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3. 5. 18.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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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바깥도 아닌 세계에서 요괴하거나 퀴어하거나

 

인터뷰 진행: 이미영 기자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에로 등단한 신이인 시인이 첫 번째 시집 검은 머리 짐승 사전(민음사, 2023)을 발간했다. ‘완벽한 관리자이면서 특별한 난동꾼이라는 심사평과 함께 데뷔한 시인은 2022년 문지문학상 후보로 선정되었으며 2021 ‘시소프로젝트인 여름의 시에 꼽히는 등 신인임에도 평단의 꾸준한 관심을 받아왔다. 이번 시집 속 시적 주체들이 동물의 감각으로 생의 다채로운 순간과 열렬히 조우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신이인 시인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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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첫 시집 검은 머리 짐승 사전의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021, 시인님의 신춘문예 등단작을 읽고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는데요. 이번 시집 역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선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시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네요. 나방(배교자의 시,p18), 고슴도치(Grooming, p27), 개구리(펄쩍펄쩍, p66), 송충이(악취미, p109), 바퀴벌레(왓츠인마이백, p94), 거북(외로운 조지, p101) 등등이 나오는데요. 이러한 동물들이 시 속에서 구현되는 방법이 매우 매력적입니다. 동물들을 통해 시인님이 보여주고자 했던 시세계는 어떤 것인가요.

 

A1: 사실 이런 시 세계를 보여줄 거야상정하고 오브젝트를 정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람마다 시를 쓰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저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쪽에 가까워요. 어려서부터 동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나방은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곤충이고, 고슴도치는 중학교 때 가장 친한 친구가 키웠던 동물이고요. 개구리는 색도 모양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동물이라 원체 좋아했습니다. 개구리 인형을 직접 뜨개질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시에 자연스럽게 녹아서 주연이 된 거라고 추측해 봅니다.

요즘도 시간 날 때는 동물이 나오는 유투브 채널을 즐겨 보는 편이에요. 어제는 개미지옥을 만들어 곤충을 사냥하는 개미귀신 영상을 보았습니다. 요즘은 수달 영상을 자주 봅니다.

 

 

Q2: 시인님의 시들은 요괴하거나 퀴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적 화자들은 대타자의 세계를 흔들지 않으면서 그곳에서 한 발 비껴난 소외자를 자처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위악적이고 자학적이었어요. 그런데 그 모습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이런 시적 발화는 다른 시인들의 시에서 보이는 서정성과도 다르고 페미니즘 시들과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시인님은 자신의 시에서 어떤 차이점을 말해줄 수 있을까요.

 

A2: 저도 제 시를 보며 고민하는 지점입니다. 쓰고 보면 확실히 서정성이 짙은 시라거나, 꼭 여성의 이야기만을 하는 시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어요. 제가 부드러운 서정시를 좋아하는 페미니스트란 사실이 작품 활동에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않는 모양입니다. 제 또래 시인들, 여성들이 어느 정도 모여서 말하고 있는 목소리에 끼어들기에는 불합하는 느낌이 있는데, 이게 왜 이럴까 싶어 시집을 계속 들여다보고는 있지만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감정 표현이라는 것도 공감의 토대가 되다 보니 남들과 감정의 결을 같게 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외로워지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너무 많기 때문에, 덮어두고 공감하기보다는 반대편에 서서 이해해보고자 나를 들여다보고 맞은편을 들여다보면서, 어느 정도 소외당한 채 쓰기를 자처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저의 감수성이나 정체성을 쉽게 말하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것입니다. 이미 세상에서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하고 뭉뚱그리면서 살고 있는데 시에서까지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현실의 제가 다수에게 완전히 굴복당해 맥없이 다수자 편에 서는 약자라면, 제 시는 절대로 침범당하지 않는, 강인한 소수자같이 느껴집니다.

 

 

Q3: 시집을 읽다보면 눈에 띄는 시구가 있습니다. ‘구덩이/ 자꾸 커지는 구덩이// 안에 손을 넣었다/ 이십 년 전 버린 속옷이 거기에 있지’(의류 수거함, p122), ‘내 태몽은 내가 정할 수 없는 거였다/ 그렇지만 나는 내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부터.’(의류 수거함 이전의 길몽, p123),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한번 구멍이 뚫리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뛰쳐나오는 덩어리들은 내가 어찌할 수 없다.’(도마뱀, p200) 또한 시적 자아는 제가 작가가 된 것은 저의 잘못이 아니에요. 가까이에서 말려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뿐입니다’(검은 머리 짐승 사전, p205)라고 말합니다. 상징계 너머에 있는, 실재계의 가장 안쪽까지 도달하고픈 시인의 마음이 엿보이는데요. 그것은 아브젝트(abject)이기도 하고 주이상스(jouissance)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과연 시인님의 심상은 어디에 가 닿고 싶었을까요.

 

A3: 어쩐지 질문만큼 멋있는 답을 드리지 못할 것 같은데요. 여러 작품을 인상 깊게 읽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공부를 깊게 하여 무엇을 설계하여 쓰거나 분석되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화려한 감상 앞에서는 늘 머뭇거리게 됩니다. 저의 심상은 그저 저를 조금 더 편하게 하고 건강히 울 수 있게 만들어 주던 선의의 거짓말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Q4: 진심어린 답변 감사드립니다. 지금 하고 계신 활동이나 향후 활동 계획들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4: 언제나와 같이 시를 틈틈이 쓰면서 살고 있습니다. ‘한겨레교육말과 활 아카데미에서 작은 창작 수업을 맡아 하고 있고요. 글 쓰는 친구들, 시인 분들과 함께 철학 스터디를 하고 있다는 것이 나름의 특이점이 될까요? 철학 쪽으로 관심이 있거나 그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아니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싶어 참여합니다.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두 번째 시집을 내고 싶기도 합니다. 마음에 드는 시가 모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Q5: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시인님의 시가 있을까요. 요즘 드는 생각을 담은 시도 좋고 독자들이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시도 좋습니다.

 

A5: 요새 날씨도 풀리고 있으니 따뜻한 시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제 시집에서는 따뜻한 시가 조금 희귀할지도 모르겠는데……. 2부 첫 시 <투성이>를 개인적으로는 좋아합니다. 보살핌이 필요한 내가 양질의 사랑 앞에서 초라해지면서도 그 사랑을 배워 실천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길 바랐습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 이 시를 읽어 보시면서 늦봄, 초여름의 기분을 즐겁게 누리시기를요. 감사합니다.

 

 

<시집 속 시 맛보기>

 

투성이

 

신이인

 

여기 뭐 묻었어요

모르는 사람이 제 팔을 낚아채고 가리키면서

일러 주었습니다

 

팔이……

간호사가 주사를 놓으려다가 입을 다물었습니다

 

멍이야? 타투야?

무슨 뜻이야?

외국인 친구는 팔을 스스럼없이 만지며 물어봅니다

한국인 친구가 당황해서 말을 돌립니다

 

사려 깊은 당신들이 티 나지 않게

투명 수건을 돌려 가며 가려 주는 행위를 고맙게 생각합니다

 

목욕 후 거실을 지날 땐 바다 바퀴벌레처럼 사라져야 합니다

수건 한 장만 앞면에 달고

 

아빠: 애써 TV로 시선을 고정함

엄마: 안 본다 안 본다 손사래 침

 

소리 내며 저절로 열리는 서랍 앞에

안 봤어

다정하게 말해 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 다행인

저는 더욱

혼자서만 고장입니다

 

수건을 스스로 내릴 즈음엔 술 끊기 일찍 자기 점잖게 말하기 어른스러운 연애 다 가능할지 모르겠다만

아직도 저에게 뭐가 붙어 있는지

몰라요

볼 수 없어요

환해질수록 눈치 빠른 그늘들은 뒤로 사사삭

얼룩의 머리채를 잡고 숨어 버리고

팔짱 낄래요?

저는 약간 바보처럼 잇몸 안쪽을 열어 두었어요

상가 건물 공공 화장실 같은 거니까

와서 숨어도 되고

저처럼 웃어도 돼요

 

깨끗해요

 

씻겨도 무늬가 어지러운 들고양이를 편애할 수밖에요

이 서랍에 제가 개켜 모아 둔 사랑이

엉망진창 앞에서 팔을 자꾸 벌려요

엉망진창 앞에서 유독 깨끗합니다

선천적으로 이랬습니다

 

 

— 『검은 머리 짐승 사전민음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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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미와 소원

 

신이인

 

화분을 끌어안고 비행기에 탔어 어디론가 실려 갈 때면 심장은 꼭 한 걸음이 늦었지 몸 안의 몸이 주춤하는 기분을 뭐랄까 불안이라고 처음 불러 준 사람이 있었는데

 

공중 어디쯤에서 잠이 깨졌어 맞지 않는 그릇에 쑤셔 박힌 몸이 꿈틀했거든 깨지기 쉬운 안을 데리고 날아가다 보면 좋아하는 식물을 물어도 대답할 수가 없는 거야 너는 꽃집에서 씨앗을 사 볼까 하다가도 곧잘 그만두었잖아

 

떨어지면 무조건 깨지는 거라고

화분은 그렇게 알고 있으니까 잘못 없이 넘어진 흙을 알고 있으니까

흙은 깨진 적 없지만 처음부터 터진 모양이었으니 소리 낸 적도 없을 것이지만 오래 갈리고 젖어 고와진 흙 진흙으로 검어진 발가락 아슬아슬하게 쫓아오는 나를 미워하면 목구멍까지 흙이 차오르게 돼 심장이 또 뿌리를 흔들어 입 밖으로, 무엇이 뱉어질 것 같은

 

식물이 나에게 있는 것이 버거웠고

나에게 없는 식물이 너무 버거워서

 

알지 못하겠어 이 비행기가 어디로 갈지 가지 않을지 알지 못하겠어 추락할지 도착하기는 하는지 잠을 자면 꿈이 계속되었어 잠 안의 꿈 꿈 안의 나 나는 계속해서 잠을 시도했어 그런 식으로 화분이 흙과 동일해 왔어 그러나 아무도 여기에서 까맣게 젖은 나의 일부에서 무엇이 시작되리라고 여기지 않아 아직도 이 진흙의 이름을 모르고 있어

 

— 『검은 머리 짐승 사전민음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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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이인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검은 머리 짐승 사전』 발간 -

인터뷰 진행: 이미영 기자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에」로 등단한 신이인 시인이 첫 번째 시집 『검은 머리 짐승 사전』 (민음사, 2023)을 발간했다. ‘완벽한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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