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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묵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내일은 덜컥 일요일』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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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2. 10. 19.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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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좌절을 아름답게 가리는 은폐술사의 섬세한 목소리

하종기 기자

 

2007년 《월간문학》 201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수주문학상, 천강문학상, 제주4·3평화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는 최은묵 시인이 세 번째 시집 『내일은 덜컥 일요일』을 ‘시인의일요일시집’으로 출간했다.

이번 시집 『내일은 덜컥 일요일』은 시인이 경험한 욕망과 좌절의 기록이다. 대부분의 문학적 글쓰기가 본질적으로 욕망과 좌절의 담론이긴 하지만 최은묵의 이번 시집은 주체의 욕망과 좌절에 절대적인 헌신을 하고 있다. 시인은 우리 삶이 감추고 있는 욕망의 조건과 역학 관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가장 아름답게 은폐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행간에서 보여주는 존재론적 욕망과 좌절은 그의 시적 세계에 대응하는 미학적 변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목격한 죽음들과 그 죽음에 필적하는 삶의 고통을 견디고 성찰하며 면역력을 키우는 일로 시행을 채우고 있다. 두려움 없이 죽음과 삶의 진정한 주체이기를 욕망하지만 한낱 무력한 대상임을 깨닫고 좌절하는 일이 최은묵 시의 역설적 동력인 것이다.

 

이 시집은 시집의 통상적 관례를 벗어난 몇 가지 지점을 가지고 있다. 시집 해설 부분을 ‘소풍’이라는 짧은 에세이로 대신하거나 시인의 친필을 그림 파일로 그대로 옮긴 「낙서는 어른이 되면서 자라지 않고」라는 시들이 그 지점이다. 최은묵 시인의 곁을 오랫동안 지켰던 문우로서 네 명의 시인이 쓴 글에는 그와의 사사로운 인연과 그의 인간적 면모 뿐만이 아니라 오래된 지인만이 가질 수 있는 개성적 관점에서 그의 시를 예리하게 재단하고 있다.

특히 리호 시인은 최은묵 시인의 첫 시집에서부터 이번 시집의 성격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는 시집 『괜찮아』가 위로의 말을 건네는 서간록이라면, 두 번째 시집 『키워드』는 인간을 대변하여 신과 나누는 대화록일지도 모른다. 신이 한 말을 받아 적거나 신을 들이받거나 신과 딜을 한 무용담이 적혀 있다. 이번 시집 『내일은 덜컥 일요일』은 과격하지만 그 펜 끝은 따뜻하고, 부드럽지만 눈은 날카롭고, 먹먹하지만 희망을 쓴 잠언서다.”라고 평가했다. 최은묵 시에 관심을 가져온 독자라면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소풍’에 참가한 이정훈 시인은 최은묵 시인이 자신에 시에 녹여낸 그의 죄목들을 정리하였다. “여우불을 함부로 삼킨 죄, 자전거 뒤에 등대를 싣고 내뺀 죄, 겨울의 뼈를 말려 첼로를 만든 죄, 가족을 지우고 생일을 백지로 둔 죄, 실밥 터진 바지 뒷주머니에 아버지를 구겨 넣은 죄” 이러한 좌절의 목록들이 시인을 죽음과 삶에 대한 내성의 수련으로 이끌어낸 것들이다. 타자의 고통에 대한 응시와 공감을 바탕으로한 내성 기르기는 상황을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언어로 묘사하며, 가장 아름답게 은폐시킨다고 했다.

 

 

은폐의 바탕에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의 세계로 끌어오는 시인의 상상력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시인은 감정의 충만을 회피하고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고, 침묵하며, 참아낸다. 돌이킬 수 없다면, 가질 수 없다면 그저 견디고 침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마음과 생각을 넘치게 흘려보내고 이것들을 단단하게 뭉쳐낸다.

최은묵 시인은 이러한 시적 형상화 능력이 탁월하다. 시인은 여기에 새로이 이름을 붙이고 포장지를 씌워 리본까지 달아 독자 앞에 내놓는다. 이것이 우리가 그에게 매혹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이다.

 

 

달맞이꽃은 지붕의 냄새를 닮았겠다

 

그들이 떠난 집은 그레이스케일

 

조간신문을 찢어 먹은 뱃속에는 죽은 이름들이 발인 순서대로 모이고

 

흑백의 테두리에서 아침을 맞은 그들은 밝아지지 않는다

 

지붕의 몸짓을 배우는 오전

 

생존한 사람들은 잃어버린 색깔을 되짚을 것이다.

 

접힌 신문을 펼쳐 간밤에 작별한 이름을 지붕에 넣어 둔다 잉크가 덜 마른 쪽광고 부고처럼

 

해 뜨기 전의 연노랑은 모르는 죽음을 알리기에 적당하다

 

저절로 벌어지던 당신의 아래턱을 닫을 때 밤은 갔고 당신의 냄새는 지붕에서 증발했다

 

가벼워진 이름의 값을
누구도
묻지 못했다

 

조간신문이 우비를 입고 왔다

― 「부고는 광고보다 작다」 전문, 내일은 덜컥 일요일, 시인의일요일,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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