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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시집 『흉터 쿠키』 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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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2. 10. 19.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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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으로 생긴 텅 빈 자리를 매만지는 따뜻한 시적 언어들

하종기 기자

 

 

2006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해 시집 보라의 바깥』 『뜻밖의 바닐라』 『빛의 자격을 얻어로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혜미 시인이 네 번 째 시집 흉터 쿠키(현대문학, 2022)를 발간했다.

 

이혜미 시인의 흉터 쿠키는 커피로 시작해서 도넛으로 끝나는 독창적인 시집이다. 향긋한 커피 한 잔과 달콤한 도넛으로 아침을 시작하듯, 그의 시편들은 우리의 무뎌진 감각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깨운다.

 

전작 빛의 자격을 얻어(문학과지성사, 2021.)에서 시인은 더 이상 어떤 관계의 맥락 안에서가 아닌 홀로의 완전함을 지닌 것으로 나아갔다면, 이번 시집에선 자신이 누구인지 온전히 알기 위해 겪어내야 했던, 결핍으로 생긴 텅 빈 자리를 매만지는 따뜻한 언어로 다른 색채와 또 다른 시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럴 때 시 속 화자는 과거의 기억을 이불처럼 걷어 툭툭 털어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고, 힘없이 쏟아지는 낱말과 바스라지는 영혼을 느낄 때 무늬목처럼 서서히” “가짜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걸(라파이티) 알아차리게 된다.

 

아물지 않는 상처는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통증으로부터 흘러나와 // 점차 흉터가 되어 가는데(흉터 쿠키), 고통의 근원을 직시하고 집요한 태도로 마음을 돌보면서 점차 흉터의 안쪽까지 도달하”(스크래치)는 생생한 감정을 언어미학으로 감지해 거침없이 형상화시킨다.

 

시인은 시는 상처보다 흉터에 가깝다고 이야기하며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는 과정을 특유의 감수성과 밀도 높은 언어로 그려낸다. 비대한 슬픔에 침몰하지 않고 상처가 아물어 흉터가 되는 순간 시인에게서 매력적인 언어들이 흘러나온다. 시인의 문장은 아픈 자리를 오래 쓰다듬어 분노하고 좌절했다가 그 구멍마저 사랑하게 되는, 삶을 향한 독백이자 기꺼이 결핍을 끌어안는 끝없는 목소리인 것이다.

 

한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에는 공통 테마 에세이가 덧붙여 있다. 에세이는 시인의 내면 읽기와 다름없는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라 볼 수 있다. 독자들은 시를 통해서만 느꼈던 시인의 내밀한 세계를 좀 더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할 것이다.

 

이혜미 시인은 에세이에서 시를 지면에 실을 때마다 무대 위에 올라서는 듯한 상상에 사로잡히는데, 원고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한 가수의 콘서트에 간 날을 회상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시인은 콘서트를 떠올리며 종이에 글자 한 자 한 자를 부려놓을 때마다, 몰아치는 바람을 홀로 견디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실패할지도 모르는 노래를 불러야 하는 가수처럼) 시인에게 시를 쓰는 행위는 모욕과 슬픔을 관통하는 용기이자 나지막한 노래가 되는 일임을, 창작에 대한 열망과 집요한 믿음이 한 편의 시가 탄생하기까지 견뎌야 하는 고독과 고통임을 에세이를 통해 아름답게 증언한다.

 

 

 

 

원테이크

 

이혜미

 

그러니까 우리가 신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갓 내린 영혼을 테이크아웃해 온 거라고 믿는다면. 하나뿐인 몸에 일렁이는 마음. 다시 돌아가 무를 수도 없는 첫 모금이 시작된 거라면

 

너를 봤어.

 

넌 태어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문가에 앉아 있었지. 얼음이 녹아갈 때 마음의 겉면은 맑고 슬픈 액체를 흘린다. 투명하고 아름다운

 

잠시

 

너는 플라스틱 컵, 깨진 액정, 한쪽뿐인 이어폰, 이면지, 어설픈 맞춤법, 끝물 과일을 사랑한다고 했어. 불완전해서 유일해진 것들만을

 

인간은 자신 아닌 모든 것을 영원이라 부르지. 미래는 이미 끝나 버렸고 옛날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니까. 일회용 컵을 씻어 다시 물을 마시고 구멍을 뚫어 흙을 채우고 식물을 심으며, 다시 태어날 것을 몰래 믿으며

 

매장에선 끝없이 음악이 흘러나왔어. 다정한 사람들이 무심히 노인이 되어가는 동안. 다시 들을 수 없고 2절 없는 단순한 무한

 

너를 훔쳐보며 하루치의 시간을 마시다가 지금이 나의 마지막 신이라는 걸 눈치 챈 순간 남아 있던 영혼이

 

뜨겁게

 

탁자 위로

엎질러졌다

 

버려진 영수증을 주워 펼치면 음용시 주의사항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지 ; 오늘의 감정에는 오늘의 책임이 필요합니다

 

― 『흉터 쿠키(현대문학,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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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기 기자 2006년 으로 등단해 시집 『보라의 바깥』 『뜻밖의 바닐라』 『빛의 자격을 얻어』로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혜미 시인이 네 번 째 시집 『흉터 쿠키』(현대문학, 2022)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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