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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 시인의 〈時詩각각〉11 _ 박정호의 「발인(發靷)」

시조포커스

by 미디어시인 2023. 5. 18.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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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인(發靷)

 

 

박정호

 

 

달개비야 비비추야 돌 바늘꽃 기대 사는 영산강 더디 걸어 장장하일 따라가서 텅 비어 아득한 곳에 꽃씨를 묻고 온다.

 

그래서 살아지도록 그래서 죽어지도록 쥐고, 놓고, 놓고 쥐고, 보내고 떠나는 풀숲에 들꽃 보다 못한 이름 하나를 묻고 온다.

 

박정호, 발인(發靷), 고요아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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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어서 가는, 저승에는 이승에서 가졌던 그 무엇도 가져갈 수 없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이승에서 취하는 그 무엇도 예외 없이 모두 다 빌려서 쓰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이런 이승의 것을 소유하고 집착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고 덧없다. “텅 비어 아득한 곳에 꽃씨를 묻고" 오면 그 자리에 꽃이 핀다. 죽은 게 죽은 것이 아니다. 더 멀리 뛰기 위해서 잔뜩 몸을 움츠리는 행위와 같다. 철근을 꼿꼿하게 피기 위해서는 먼저 구부려야 한다. 최대한 자기를 낮춰야 가장 높게 올라갈 수 있다. 스스로를 높이면 떨어지는 길밖에 없다. 살려야 한다면 죽어야 한다는 아이러니가 여기에 있다.

꽃씨가 깨져야 꽃이 태어난다. 씨앗의 죽음이 없으면 꽃도 나무도 태어날 수 없다. 꽃이 져야 열매를 맺고 열매에는 새로운 생명이 움틀 수 있는 씨앗이 들어 있다. 무덤 위에 요람이 들어서는 것과 같다. “쥐고, 놓고, 놓고, 쥐고라는 말은 삶과 죽음이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이것이 무한반복 된다.

이 시의 제목인 '발인(發靷)'은 자연의 순리와 순환의 과정을 묘사한다. 이 극에 달하면 양이 태어나고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태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일종의 보편적인 자연의 운동성이다. 보름달은 서서히 기울어서 점점 줄어드는데 초승달은 서서히 차오른다. 늘 모든 존재는 변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래서 살아지도록 그래서 죽어지도록 쥐고, 놓고, 놓고 쥐고, 보내고 떠나는 풀숲에 들꽃보다 못한 이름 하나를 묻고 오는 발인의 과정이 지나야 또 다른 생명이 움튼다. (이송희)

 

 

 

 

이송희

2003조선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했으며 열린시학등에 평론을 쓰며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환절기의 판화,아포리아 숲,이름의 고고학,이태리 면사무소,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 평론집 및 연구서 아달린의 방,눈물로 읽는 사서함,길 위의 문장,경계의 시학,거울과 응시,현대시와 인지시학,유목의 서사등이 있다. 고산문학대상,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전남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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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인(發靷) 박정호 달개비야 비비추야 돌 바늘꽃 기대 사는 영산강 더디 걸어 장장하일 따라가서 텅 비어 아득한 곳에 꽃씨를 묻고 온다. 그래서 살아지도록 그래서 죽어지도록 쥐고, 놓고,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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