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시
생각대로 산다는 건
쉽지만은 않았어요
머리와 가슴이
엇갈린 그 길 위로
바람이
기척할 때마다
휘청이는
당신과 나
김영란
― 『연못과 오리와 연꽃』 21세기시조동인 14집, 고요아침,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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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이라는 말이 있다. “고상한 품격이나 운치”를 말하는데 대체로 이러한 멋이 드는 시기는 젊었을 때보다는 지긋이 나이가 들었을 때가 아닐까 한다. 멋이라는 것은 차림새를 세련되게 함으로써 만들어질 수 있는 외형적 아름다움도 있겠고 또는 말씨를 가려 나직나직하게 씀으로써 오는 행위의 품격도 멋이라는 명사를 드러나게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감탄사를 불러일으키는 진짜 멋은 어려운 시간을 오래도록 견뎌온 굴곡의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란의 시 「나무의 시」에 특별히 눈길이 갔던 것은 바람 없는 화창한 날에 거친 바람이 일듯이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나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나무의 아름다움은 몸의 선에서 읽을 수 있다. 풍파를 많이 견딜수록 나무의 선은 깊은 운치를 만들어낸다. 자연의 풍파없이 곧게 자란 나무를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의 바람(희망)은 직립의 나무처럼 굴곡 없이 매끈하게 삶을 살고 싶겠지만 “생각대로 산다는 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머리에 의존하는 “엇갈린 그 길 위”에서 “바람의 기척”에도 휘청거리며 살아가는 것이 보편적인 우리네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견딜 것 다 견디고 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는데, 제 몸 속에 나이를 새기고 사는 나무처럼 우리 몸에도 나이테가 자라고, 바람의 형상을 닮은 가지를 갖게 된다면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우리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언덕을 운영하고 있는 거친 나무의 숨결이 오늘따라 더 멋있게 느껴진다.(표문순 시인)
표문순
2014년 《시조시학》 신인상 등단, 시집 『공복의 구성』,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열린시학상, 나혜석문학상, 정음시조문학상 등 수상, 한양대 대학원 박사 과정 졸업(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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