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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근일 시인의 시집 『당신의 기억은 산호색이다』(시인의 일요일, 2023)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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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3. 6. 11.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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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히지 않는 유년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포에지

 

 

하린 기자

 

이근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당신의 기억은 산호색이다가 시인의 일요일 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2006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첫 시집 『아무의 그늘에서 둥근 꿈과 허방의 현실 속에서 잘 숙성된 한 편의 정갈한 숲의 몽유라고 부를만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사진 시집 침잠하는 사람에서는 시와 사진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병존하면서 침잠한 이가 거느린 그림자들. 그 그림자들이 이루는 고독한 앙상블을 미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번 시집 당신의 기억은 산호색이다에서는 꿈과 현실, 실재와 환상의 경계를 지우면서 싱싱한 감각을 직관적 상상력으로 마음껏 펼칠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시의 주요 모티브는 해설을 쓴 이정현 문학기고가의 언급대로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이 시집의 중심축을 유년사랑으로 간파하고, 유년과 사랑의 변주에서 드러나는 그리움과 근심, 사랑의 상실에서 빚어진 슬픔을 이미지 중첩으로 회오리치도록 형상화했다. 그래서 당신의 기억은 산호색이다의 시편들을 유년시사랑시로 대별할 수 있다. 유년은 어린 시절의 천진한 기억이고, 사랑은 자신의 삶 속에서 후회해야 할 것밖에는 발견하지 못하는 한 성년의 신음이다. 시인은 시에서 유년은 손에 잡히지 않아 환상이고 사랑은 이룰 수 없어 으로밖에 표기할 수 없음을 암시했다.

 

이근일 시인에게 유년은 예찬이고 사랑은 환멸이다. ‘유년사랑이라는 두 수레바퀴를 달고 싱싱한 감각직관적 상상력을 가득 채운 채 독자를 향해 달려가는 시집 당신의 기억은 산호색이다. 이 시집은 독자들의 심미안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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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당신의 기억은 산호색이다

 

이근일

 

살구색을 보고 산호를 떠올리다 눈동자가 산홋가지에 걸렸다

 

산호색과 살구색은 다르듯 산호는 따뜻한 해류가 지나는 바다에 살고 살구는 그보다 더운 바람이 지나는 뭍에서 영근다

 

우리 사이사이에서 점점 윤기를 잃어 가던 빛, 그 빛으로 어둠을 감춘 얼굴, 그럴수록 선연해지는 허깨비의 춤, 부풀어 오른 구름과 태풍에 밀리고 밀려 우리는 잠시나마 고요한 태풍의 눈에 머무르길 바랐으나

 

몰랐다 그것이 덫이라는 걸 모진 바람을 피한 대신 새들은 눈에 갇힌 채 수천 킬로미터를 빙빙 돌아야 한다는 걸

 

산호는 죽으면 골격만 남는다

살구는 죽어도 무르고 무르다

 

당신 아니면 누가 또 날 기억해 줄까, 이런 생각으로 나는 단단해진 관계의 골격에 살구를 달아 주었다

 

길 잃은 새 몇 마리가 산호 무덤 위를 선회하는 동안

 

― 『당신의 기억은 산호색이다, 시인의 일요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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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어디 있습니까

 

이근일

 

잎이 돌고, 해가 돌고, 소용돌이치는 당신의 말을 따라 내가 돌고 있었다

 

그리고 잠든 나는 꿈을 꾸면서 꿈을 찾아 사막을 헤맸다

 

꿈은 어디 있습니까, 허공에 묻는 사이 사막은 돌고 있는 해를 껴안았고 이어 누런 피 흘리며

죽은 낙타를 끝없이 낳고 있었다

 

나는 곧 피 흘리는 꿈, 죽은 꿈을 목도하게 될까 두려워 달아났다 멀고 먼 지평선을 향해

 

그러는 사이 또 잎이 돌고, 말 잃은 당신의 입술이 돌고, 나는 돌면서 빨려들고 있었다

 

부서진 빛들이 열어 놓은 환멸 속으로

 

― 『당신의 기억은 산호색이다, 시인의 일요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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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월빵집

 

이근일

 

목월빵집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나는 줄을 서기 전 잠시 유리문 너머를 기웃거린다 목월을 찾아서 그러나 목월은 보이지 않고 빵 냄새 같은 그 아우라만 조금 풍길 뿐

 

빵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목월빵집 앞에 줄을 서지 않는다 어제도 오늘도 그들이 지나쳐 간 이 길 밖에는 더 넓고 매혹적인 길이 출렁일 것이고

 

준비한 빵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진다 빵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뒤를 따르는 사람, 서둘러 다른 빵집을 향해 걸음 옮기는 사람, 빵 대신 하얗게 부푼 목련꽃을 따 가기로 한 사람

 

나는 끝까지 없는 빵을 좇는 사람이 되기로

없는 빵들이 진열된 목월빵집 앞, 줄을 서자마자 내 앞의 큰 개가 돌아보며 컹컹 짖기 시작한다

 

― 『당신의 기억은 산호색이다, 시인의 일요일, 2023.

 

 

200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근일 시인의 시집 『당신의 기억은 산호색이다』(시인의 일요일, 2023) 출간 < 신간+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200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근일 시인의 시집 『당신의 기억은 산호색이다』(시인의 일요

하종기 이근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당신의 기억은 산호색이다』가 시인의 일요일 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200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첫 시집 『당신의 기억은 산호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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