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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 시인 시화집 『물소리 같았던 하루』(시와사람, 2023) 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3. 6. 18.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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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세고 난 뒤에 부르는 사랑의 노래

 

 

김휼 기자

 

바람의 도시 시카고에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신호철 시인이 첫 시집 바람에 기대어를 낸 지 5년 만에 <시와사람 >에서 시화집 물소리 같았던 하루를 펴냈다. 신호철은 2009동방문학신인상으로 등단하여 한용운 문학상 등을 수상한 시인으로서의 경력과 홍대 미대를 졸업하고 그림을 꾸준히 그린 화가로서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신호철의 물소리 같았던 하루속에는 시와 그림이 결합된 콜라보가 미학적인 결을 확보하고 있다.

 

모티브도 이색적이다. 먼 이방 바람의 도시 시카고에서 디아스포라로 사는 삶에 담긴 희로애락을 어떤 절대자의 사랑으로 승화시킨 점이 눈에 뜨인다. 당신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꿈을 꾸고 싶었다고 말하는 시인의 말처럼 한 편 한 편에 그만의 독특한 서정적 감성을 담아냈다.

 

시와 시인은 불가능한 것들 사이로 자신의 길을 지어가는 맹목이라 할 수 있다. 그것들이 구하려는 창조의 세계는 무수한 장애와 훼절 속에서 이루어지는 회색의 운명들이 대부분이다. 만일 시와 시인이 그런 불가능성에 도전하거나 돌파해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사실 진정한 의미의 창조가 아닐 수 있었다. 창조자(시인)는 자기 특유의 불우와 상처를 극복해 내려는 뼈아픈 위치에 서 있는 자들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신호철 시인의 아름답고도 쓰라린 시들은 나비처럼 매미처럼 슬픈 동체들이기도 하였다고 해설을 쓴 정윤천 시인의 말은 그의 시를 관통하는 진단에 해당한다.

 

신호철 시인에게 미디어 시in에서 몇 가지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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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국땅에서도 모국어를 놓지 않고 두 번째 시집 물소리 같았던 하루시화집을 발간 하심을 축하드립니다. 시카고에 거주하시면서 이방인으로서 시를 쓰는 일은 좀 특별할 것 같은데요. 제목을 물소리 같았던 하루로 하신 것이 그런 삶과 연관이 있을까요

 

A: 대학을 졸업하던 해 시카고행을 결정했고 그곳에서 45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노른자라고 불러도 될 좋은 시절을 시카고에서 살았기에 불현듯 몰려오는 그리움이 늘 마음속에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기억에 대한, 풍경에 대한, 내 스스로에 대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이런 그리움이 나를 끌고 여기까지 온 모티브였고 끊임없이 나를 재촉한 발걸음이었습니다. 밤을 밝히는 빛나는 별빛이었고 지친 나를 만지고 지나가는 바람이었습니다. 45 년을 살아도 문뜩문뜩 생소해지는 이방인의 아픔이었습니다. 내 속엔 그 희로애락의 순간 모두가 그리움으로 각인돼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기억 앨범 속에 고스란히 감춰져 있던 시간들을 펼치면 시 한 구절이 노래처럼 입술에 담겨집니다. 그리움이 창가에 앉아 나를 부르고 있습니다. 매일매일의 삶이 물소리 같이 흐르고 있습니다. 과거를 지나 지금 나를 통과하는 하루, 잡을 수 없어 흘려보내는 하루가 물소리 같습니다

 

Q: 시집 속 그림에서 새와 꽃과 소년이 자주 등장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들이 갖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A: 무의식의 심층 속에 잠재된 또 다른 형태의 나라고나 할까요, 물리적인 봄이든 마음속의 봄이든 저는 늘 봄을 기다리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눈이 채 녹기 전에 뒤란으로 달려갑니다. 뒤란에 쌓인 눈 밑 새싹이 보고 싶어 눈을 들치고 파아란 싹을 쓰다듬어주기도 했습니다. 눈이 녹아 연두의 싹들이 뒤란을 덮을 즈음 이른 새벽 창가엔 새들의 대화가 잠을 깨웁니다. 아직 어둑한 뒤란은 작은 생명들의 축제가 벌어집니다. 모양은 달라도 숨소린 같아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내 안 소년의 볼에도 홍조가 띱니다. 새와 꽃과 소년은 하루의 물결 속에서 함께 깨어나고,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신비한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하루에 스미듯 내 안에 담겨 오는 나의 나이기도 합니다.

 

Q: 시집 전편에 드러난 그리움의 대상이 어떤 추상의 경계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시집 곳곳에 너라는 통증을 견디고 있는 흔적들이 보이는데 시인이 닿고자 하는 너는 어떤 대상일까요?

 

A: 그리움은 딱 누구를 향한 것만은 아닙니다. 언제는 잊을 수 없는 고향 같아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고, 밀려오는 파도처럼 아프게 가슴을 쓸고 가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는데 다시 살아나는 울림 같아서, 가슴 가득 채워줘 터져 버릴 것 같은 아픔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움은 신열 후 찾아오는 나의 분신 같은 것이어서 뼈와 살의 부딪치는 소리 같이 새벽을 읽어 내기도 합니다. 때론 신음을 낼 수 없는 깊은 어둠 같기도 하고 빛을 잃은 별들이 모여 부르는 노래 같이 쓸쓸함이 담겨 내려오기도 합니다. 당신으로부터 내게로 와서 부서져 다시 네게로 향하는 아물지 않은 상처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맛 같이 달콤하기도 하여서 그리움은 나를 깨워 내 앞에 나를 세우는 것이어서, 멈춘 세상의 문을 열고 걸어 들어가 만나는 사람들의 손을 잡는 것이어서,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숨쉬고 살아갑니다.

 

Q: 그렇군요, 나의 너이기도 하고 너의 나이기도 한, 어쩌면 죽을 때까지 앓아야 하는 대상이겠네요. 흔히 시는 글로 그린 그림이라고 하는데요, 글로 그린 그림과 그림으로 쓴 이미지 사이 어느 것이 더 독자의 마음 깊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신가요?

 

A: 글과 그림 제게는 둘 다 놓을 수 없는 중요한 화두이지요. 글을 나중에 접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시간 동안 머릿속으로는 무수히 많은 글들을 떠올리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 글들이, 생각들이 그림으로 표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별히 제 그림 같은 경우는 생각을 그리는 것이기에 그림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글이 연상되리라 생각합니다. 붓으로 그린 그림이나, 글로 그린 그림이나 모두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글과 그림 모두 다가가는 방법이 다를 뿐 같은 맥락의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Q: 마지막으로 질문드리겠습니다. 약력에 보니까 시카고 문인회장을 역임하시는 등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향후 활동 계획은 어떠신지요?

 

A: 2009년 등단 이후 10년 만에 첫 번째 시집 <바람에 기대어> (시와 정신)에서 출간했고 올해 시화집 <물소리 같았던 하루> 시화집을 (시와 사람)에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미주 중앙일보에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이라는 코너를 4년 동안 연재하고 있는데요, 내년 가을쯤 그동안 연재하였던 글들을 모아서 산문집을 준비하려 합니다. 그리고 내년 곽재우 시인의 초청으로 순천에서 15점의 시화를 전시할 예정입니다. 여기가지 오는 동안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부끄럽지 않은 하루 하루를 살며 힘을 다해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집 속 시 맛보기>

 

 

물소리 같았던 하루

 

신호철

한 박자 느린 공허가 덤덤히 흐르는 하루

책상에 앉아 새어나가는 나를 가만히 세어보는 하루

너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지나갔고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아서

물소리 같기도 한 무언가를 마음에서 꺼내어

흘려보내는 하루

 

— 『물소리 같았던 하루, 시와사람,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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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달력

 

신호철

 

내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늦은 밤 별들이 내 대신 노래할 것입니다.

당신의 잠든 머리맡에 꽃병을 하나 놓아두고

옥빛 새벽으로 깨어나려고 합니다 뒤돌아보지 않을 겁니다

남아있는 별들을 향해 얼굴을 들겠습니다 빈들에 나가 서 있겠습니다

모르고도 살고 알고도 산다면 차라리 모름의 삶을 택하겠습니다

안다는 것으로 자유를 속박하지 않으려 합니다

춤추는 갈대와 바람과 뱔들을 향하여

빈들의 여백을 나누기로 합니다

 

— 『물소리 같았던 하루, 시와사람,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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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의(含意)에 대하여

 

신호철

 

바람이 분다

바람은 모든 사물을 흔들어 댄다

멈추지 않는 흔들림 속에 흔들리고 있다

바람을 따라 마음도 흔들리다 보면

내가 슬프면 너도 슬퍼야 하고

네가 기쁘면 나도 기뻐야 한다는 논리는 허망하다

바람은 흔들리면서도 속내는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소용돌이 속에 존재하다 사라지는 별이 될 뿐

내가 너였다가 그대로 네가 되어지는 빙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다 내 앞에 서 있는 너를 마주한다

아이는 아이의 말을 하고 어른은 어른의 말을 하고 있다

바람은 바람의 목적지를 향해 불어가고 있다

나도 확실한 전제를 하고 있기에 함의(含意)에 도달하기 전 내 몸에 따라붙는 분진을 털어낼 수 있다.

 

안국역에서 내리실 분은 우측 도어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역은 시카고입니다

 

바퀴가 소음을 내며 미끄러지다가 기차가 선다

하늘에서 떨어진 수많은 별들이 가슴을 파고든다

내려야 하는데 내 발은 우측 도어에서 너무 멀리에 있다

 

— 『물소리 같았던 하루, 시와사람,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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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 시인 시화집 『물소리 같았던 하루』(시와사람, 2023) 발간 - 미디어 시in

김휼 기자 바람의 도시 시카고에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신호철 시인이 첫 시집 『바람에 기대어』를 낸 지 5년 만에 에서 시화집 『물소리 같았던 하루』를 펴냈다. 신호철은 2009년 《동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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