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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 56년 강인한 시인, 『백록시화』(포지션, 2023)로 오늘의 시를 말하다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3. 6. 1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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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기자

 

 

시화(詩話)는 우리나라에서 고려 말 이인로에 이어 조선 초 서거정의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시화에는 첫째 시의 본질을 논의하는 시론(詩論), 둘째 시의 작법을 제시하는 작시론(作詩論), 셋째 시 작품이나 시인을 해설평가하는 , 넷째 역대 시인들의 행적이나 시작 배경의 숨은 이야기를 서술하는 시 일화(逸話) 등이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시 시론, 시 해설이나 비평 따위를 모두 담을 수 있는 장르가 곧 시화(詩話). 그런 시화처럼 백록시화에는 백록 강인한 시인이 말한 시론(詩論)’ ‘작시론(作詩論)’ ‘시평(詩評)’ ‘시 일화(逸話)’가 포함되어 있다.

 

강인한 시인은 잘 알려진 대로 인터넷 카페 푸른 시의 방을 운영하면서 4,000명이 넘는 회원들에서 좋은 시를 소개하고 나누는 작업을 20년 넘게 하고 있다. 시 전문 독자로서 직접 시집과 잡지, 웹진 등의 지면을 살펴서 좋은 시라고 판단되는 경우 한 편 한 편 일일이 워드로 쳐서 카페에 소개한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과 문청들에 신뢰를 얻었고 푸른 시의 방〉은 좋은 시를 읽고 싶은 사람들의 보고가 되었다.

 

백록시화는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교직에 있으면서 시인은 해마다 학교 교지에 학생들에게 시에 관한 에세이를 발표하였다. 그 무렵 발표한 몇 편의 글들과 당대의 시 현실, 시와 비시에 대한 구분 등을 분명하게 밝힌 깊이 있는 글들이 1부에 포함되었고, 2부엔 주로 오늘날의 시단 현실에 나타난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한 진단한 글이 포진되었다. 주목할 만한 시인과 개별 작품을 들어 비평하였고, 시인이 독자를 기만하는 잘못된 태도에 대한 반성적 비판도 덧붙였다. 3부엔 강인한 시인이 시력 50여 년 동안 써온 작업 가운데 짚어야 할 부분이나 독자에게 약간의 배경 지식을 전달해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시 30편에 대한 시인의 해설이 담겨 있다. 4부엔 시인의 에세이, 그리고 20여 년 동안 카페지기로서 혼자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카페 푸른 시의 방에 관한 대담을 실었다.

 

인터넷 카페 푸른 시의 방의 운영으로 강인한 시인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져 있다. 거기에 이번 저서 백록시화가 더해져 강인한 시인의 시에 대한 가치관은 독자들에게 의미있는 지표를 선사할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또 다른 시화(詩話)’를 이끄는 주체로 거듭날 것이다.

 

 

< 책 속 문장 맛보기 >

 

 

시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형식에만 집착하는 버릇이 있는 신인 지망생들의 작품을 여기에서 직접 들춰보긴 어려우므로 4천여 편의 예심을 마친 중앙일보기사(2015.9.4.)를 읽어본다.

 

손택수 씨는 대뜸 태양이 너무 눈부셔 그 너머를 볼 수 없는 상태와 같은 작품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미지를 촘촘하게 배치해 화려한 느낌을 주지만 그런 경향이 지나쳐 정작 읽고 나면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작품들을 그렇게 평한 것이다. 강동호 씨는 세련된 스타일이 대세로 느껴질 만큼 내용보다 기량이 승한 작품이 흔하다는 설명이다. 강 씨는 특히 40대 이상 나이 든 사람들의 응모작 가운데도 모던한 느낌의 작품이 많았다.”고 했다. 대학 등에서 시를 가르치는 시 선생들이 주로 젊은 느낌의 모던한 시를 가르친 결과다. 그래서 위기에 몰린 건 전통 서정시다. 소수, 타자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강 씨는 형식적 새로움을 추구하는 데서 오는 피로감은 없는지 반성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 「독자 없는 시대에 불통이 미덕인가부분, 백록시화, 포지션, 2023,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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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의 시 물속의 사막은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가슴 저리게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시다. 여름 밤 장맛비, 빌딩 안, 밤 세 시. 도심 속의 한 점 섬인 양 완벽하게 단절되고 구원이 닿지 않는 시간과 공간 속에 그는 갇혀 있다. 제목에서의 '사막'은 막막한 절망의 심정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금지된다, 인기척을 내지 않는다, 통과하지 못한다" 등 부정 어법에서 끼치는 절망감은 흑백의 대비적인 풍경 속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시 속에서 , 석탄가루, 검은 유리창과 함께 흰 개, , 비닐집, 환한 빌딩, 와이셔츠 흰빛의 흑백 대비는 어쩌면 죽음과 삶의 경계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밤 세시의 풍경 속에 유일하게 푸른 옥수수잎이 들어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과거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을 뿐, '무정한' 희망이었을 뿐이다.

 

― 「기형도의 물 속의 사막감상부분, 백록시화, 포지션, 2023,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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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는 축산농민과 소, 돼지의 위치가 전복돼 나타나 있다. 마스크를 쓴 소들이 우리에 갇힌 농민들을 끌고 나와 트럭의 짐칸에 아무렇게나 던져 넣어 어디론가 사라지는 장면. 어디서 봤더라, 이런 장면을. , 그건 19805월 광주에서 본 그 장면 아닌가. “어둠이 검은 것은 슬픔 때문이다라는 경구(警句)가 검은 상복처럼 낮게 깔리고, 다시 장면은 비록 비유의 몸을 입고 있으나 이라크 전쟁 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이어진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진, 벌어지고 있는 이 끔찍한 살해의 연속. 깊이 파헤친 흙구덩이 속으로 한꺼번에 몰려 떨어지며 비명을 지르는 돼지들, 허우적거리는 돼지들의 모습, 그게 오늘 우리들의 다른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시인은 그렇게 묻는다.

 

―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아름다운 고통부분, 백록시화, 포지션, 2023,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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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물고기/ 절 집을 흔들며/ 맑은 물소리 쏟아 내네/ 문득 절 집이 물소리에 번지네// 절 집을 물고/ 물고기 떠 있네 ―「풍경(風磬)부분

절 집의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 그 쇠로 된 물고기가 바람에 흔들리며 울려내는 맑은 물소리. 시인의 어법을 잘 드러내는 이 시의 묘미는 '뒤집기'에 있다. 절 집에 매달린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가 절 집을 물고 있다는 것. 세계를 뒤집어 생각하기에서 시인은 영감을 얻는 것일까. "갑자기, 큰 물고기 한 마리가 저수지 전체를 한 번 들어올렸다가 도로 내립다 칠 때"라고 낚시터의 풍경을 묘사한 시 저수지에서 생긴 일도 바로 그런 식의 발상이다.

 

― 「전복과 함축된 여백, 서정춘 시집 , 파르티잔』」 부분, 백록시화, 포지션, 2023,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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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기 기자 시화(詩話)는 우리나라에서 고려 말 이인로에 이어 조선 초 서거정의 『동인시화(東人詩話)』 에서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시화에는 첫째 시의 본질을 논의하는 시론(詩論),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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