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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양수덕 시인, 시집 『자전거 바퀴』 상상인시선으로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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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3. 9. 17.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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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힘으로 시상을 미학적으로 끌어올린 작품

 

 

하린 기자

 

양수덕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자전거 바퀴가 상상인시선으로 발간됐다. 양수덕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기억의 황홀한 복기復棋”(해설)를 꿈꾼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중요한 코드는 엄마. 양수덕 시인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영혼과의 만남이자 종착역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영혼의 마지막 처소는 어머니이기에 이미 엄마라는 시집을 낸 바 있다. 그런데 두 번씩이나 엄마에 대한 시집을 냈다는 데에 주목하게 된다.

 

벗은 영혼에게 옷을 입혀주려니 시가 부스럭거렸다라는 시인의 말처럼 양수덕 시에서의 회상은 돌아가신 엄마의 삶을 돌아보면서 그 영혼에 가까이 다가가려 했을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외로움과 갖가지 시련 속에서 꿋꿋하게 버틴 영혼의 스승인 엄마를 느꼈을 것이다. ‘자전거 바퀴라면……에서 볼 수 있듯이 그런 가정의 행위를 통해서만이 자전거 바퀴는 굴러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긋났던 두 바퀴가 엄마 사후에야 하나의 자전거 바퀴로 완성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시인은 절절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자전거 바퀴에서 노래하게 된 어머니와 관련된 사물은 어머니의 자서전이자 시인에게 남겨진 소중한 선물이다. 굳게 닫힌 창문을 활짝 열고 방의 묵은 먼지를 털며 가구를 닦는 심정으로 어머니의 유품을 갈무리하는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공감하면서 정서적 떨림을 경험하게 된다.

 

어느 죽음 앞에서도 공평한 슬픔의 뒤끝, 어떤 물리적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이별 앞에서 시인은 상실감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이치에 근거해 시인은 엄마와의 영원한 교감으로 이어진 현재와 미래를 살 것이다. 영혼의 스승은 종착역에서 헤어진 것이 아니고 지금 또 시인의 자리에서 새로운 만남을 이끌어갈 것이다. 그것은 시인으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펼쳐질 시의 미래이자 존재양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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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대나무는 어떻게 사나

 

양수덕

 

거센 비바람이 두 쪽 열 쪽을 내도 꺾이지 않았다

마디마디 꼬장꼬장하다

 

몰아친 비바람 흔적 위에

또 철없는 바람이 한 수 아래 지문을 찍는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빈방이 가슴에서 생겨난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아지는 물결에 쓸려

음악의 표정을 이은 그리움 빈속을 울린다

 

보이는 것은 다

만져지는 것은 다

자신 아닌 헛것

 

별빛으로 속을 채우면 하루치 숙제가 끝나는 거야

가만히 귀 대면 그런 엄마의 혼잣말이 쓸려 나온다

 

태생의 하늘 올려다보며

틈새도 구부러질 수 없는 엄마

― 『자전거 바퀴, 상상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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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가를 쓰다듬다

 

양수덕

 

보드라운 깃털로 싸인 밤에 안기면 숨소리조차 시끄러워 거친 숨 내려놓고 생각을 거두고 오직 잠으로 가는 여행에는 아픔이 없어 두려움이 없어 걸림이 없어 지저분한 내장 다 골라 버리면 잠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살을 얻지 목화솜 타고 오는 잠 자장 자장 자장……

 

살에서 삐져나온 뼈처럼 다른 밤으로 갈아타는 엄마 보드라운 깃털들 빠져 빨간 맨살 드러내며 엄마에게 이주 신고를 마친 밤 기침과 가래가 밤의 속삭임은 아니야 뒤척이는 잠이 밤의 묘약이 아니야 가면을 벗어 벗어봐 보드라운 깃털로 싸인 밤 자장 자장 자장……

― 『자전거 바퀴, 상상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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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드라미를 알기까지

 

양수덕

 

엄마의 바코드를 읽어줄 사람이 없었어요

 

젊은 엄마가 목 부스럼 위에다 보라색 물약을 칠했어요

발라도 낫지 않는 엉터리였지요

 

그 물약 오래 덧칠하다가 바랜 자줏빛 엄마가 피어났어요

아주 까슬까슬한 그늘이었어요

 

빗줄기들이 슬픈 눈매로 때 가리지 않고 건너오고

 

어느 날 오글오글한 알들이 슬었어요

어찌 그리 용하게 알짜 토종인 여인을 찾아왔는지

이듬해 꽃을 흉내 내며 달려들었어요

다음 생까지 따라가려 틈을 보았지요

 

빗줄기들로 엄마의 바코드가 완성되었어요

누구와도 젖을 수 없는 비망록이었어요

 

엄마는 오래 견디며 시들어가다가 어느 때부터

맨드라미의 반달 눈웃음만 보여주기로 했어요

 

어느덧 다 해진 엄마가 허공에 들자

바코드가 까만 빗줄기들을 떼어내기 시작했어요

― 『자전거 바퀴, 상상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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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양수덕 시인, 시집 『자전거 바퀴』 상상인시선으로 발간 -

하종기 기자 양수덕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자전거 바퀴』가 상상인시선으로 발간됐다. 양수덕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기억의 황홀한 복기復棋”(해설)를 꿈꾼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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