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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봄희 시인의 첫 시집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시인의일요일에서 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3. 9. 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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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실, 시의 힘을 보여주는데 나이가 뭐 중요한가요?

 

 

하린 기자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시인의일요일, 2023.)는 올해로 일흔 살을 맞은 이봄희 시인의 첫 시집이다. 일흔 살의 나이와 이 만났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그의 시편들은 문청다운 패기와 발랄한 상상력을 갖추고 있었다. 2018경상일보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5년 동안 그는 재야의 고수처럼 시적 내공을 쌓고 또 쌓은 게 분명하다.

 

이봄희 시인는 어떤 대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을 통해 이미지를 포착한 후 동시에 상상의 옷을 입힌다. 그러면서 그 이미지들로부터 어떤 삶의 양상을 진정성 있게 도출해낸다. 따라서 그의 시에 나타난 치밀하고 깊은 이미지 조성은 이미지즘적인 대상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묘사를 통해 삶의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미학적인 과정에 해당한다. 그 예로 묵의 평전을 살펴보겠다.

 

풋 여문 알들, 우리들의 공복은

진하게 무르익을 때를 기다렸다

구부러지고 늙은 뼈를 화장한 뒤

묵 한 사발 시켜 놓고

컬컬한 울음의 뒤끝을 꿀꺽꿀꺽 삼킨다

죽은 목숨이든 산목숨이든

젓가락 사이에서 묵은 생물이다

 

누군가의 관을 들 때 묵을 집듯

조심스러운 손길에 따라

열매에서 가루가 되고

가루는 팔팔 끓어 넘치다가

다시 하얀 사발에 담겨 굳어 가는

저 한결같은 묵만 같아라

― 「묵의 평전부분

 

시인은 묵이란 대상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착안한다. 죽음의 새로운 이미지다. 시인에 따르면, “차갑게 식으면서 죽는묵은 관의 형상”, “생전의 모습이란 없는 죽음 자체의 상징적인 형상이다. 그러나 묵은 뼈가 없는 죽음이어서 야들야들 골격을 유지하는 관이다. 그래서 그 죽음은 딱딱하지 않다. 흔들거리고 물컹하다. 그래서 먹을 수 있는 죽음이다. 3연이 보여 주고 있는바, 우리가 누군가를 화장한 뒤 묵을 먹는 행위는 죽음을 먹는 것과 같다. 그 행위는 누군가를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의식이다(그래서인지 화장터의 우리는 묵 앞에서 컬컬한 울음의 뒤끝을 꿀꺽꿀꺽 삼키는 것이리라). 그 죽은 이의 죽음을 먹음으로써 그를 몸의 기억 속으로 스며들게 만드는 의식. 이 의식 속에서 묵은 생물이 된다. 죽음의 형상인 묵은, ‘젓가락으로 집어 그 죽음을 먹는 우리에 의해 도리어 살아 있는 물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몸속에 스며든 죽은 이의 죽음은, 우리 삶 속에서 존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그의 시에 대해 신형철 평론가는 소박한 편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울림이 느껴지는 경우였다라고 했고, 이건청 시인은 시로 말하기의 방법을 성실히 체득해 보여줬다라고 했다. 그것을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는 것이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이다. 그의 시집은 온통 감동의 요소인 울림을 향한 세련되고 진중한 언술로 이루어져 있다.

 

문학에 대한 열정은 나이를 잊게 하는 감각을 내내 펼쳐 보일 수 있게 만든다. 그런 열정으로 우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매번 문청이 될 수 있다. 그런 문학의 원리와 힘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를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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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스위치

 

이봄희

 

똑딱,

모든 저녁은 스위치에서 온다

 

이 말은 가장 짧은 거리일 수도 또는 가장 먼 거리일 수도 있다 빛의 점화를 가진 누군가가 어디서 정적의 궤도를 조종하며 스위치만을 관리하고 있다는 설이 분분하다

 

노을을 일그러뜨리고 휘발성 경적을 울리며 머나 먼 거리를 횡단해 온 별, 야행의 순간들을 똑딱, 소리 나게 조명한다 그 시간이란 너무 길어서 몇 트럭의 전선을 연결해도 못 켠단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별을 찾아내면

그 별의 스위치부터 찾는단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별을 찾아내면 그 별의 스위치부터 찾는단다 하루 몇 번씩 전선에 묻어나는 별의 닻 소리 인광은 박피의 지문에 반들거리고 똑딱, 푸른 수신호에 수시로 몸을 끄덕거리다가 수많은 별을 품는 모난 잠들

 

스위치를 위로 올려 켜는 곳에

황홀한 저녁이 있다고 믿는다

 

때론 설비업자가 거꾸로 달아 놓은 아침과 저녁이 있다고 한다 거대한 톱니바퀴를 거뜬히 돌리고 가로수들의 소실점을 뿔뿔이 켜고 더러는 모진 날들의 한쪽에 굳은 바람으로 거주하는 저녁과 소실점과 몇 억 광년 떨어진 별의 점등

 

희미한 별의 명암을 밝히는 키가

다름 아닌 우리 집 벽에 똑딱, 붙어 있다

—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시인의일요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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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이봄희

 

, 막무가내로 뚫고 나오는 것들

정말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어디 눈 똑똑히 뜨고 보고 말 거야, 겨울의 은닉술들이 예상치 않은 보도블록 틈에서, 나뭇가지 끝에서, 양지에서 허락도 없이, 선전포고도 없이 막 나오겠다 이거지

 

생의 고수들 앞에서 하수에게나 통할 감언이설로 구구절절 허투루 야멸찬 앞날을 논하겠다 이거지

두고 보자는 말 무섭지 않지

 

어디로 갈지, 말도 않고

제풀에 자취를 끊고 꽁무니 뺄 것 다 아는데

뾰족한 수도 없이 고작 따뜻한 햇살 하나 믿고

대책 없이 밀고 나오는 봄의 앞잡이들

 

그 최후의 순간을 아는지 몰라

과신은 때로 낭패의 원인이기도 하지

 

무지하게 변덕 심한 햇살이 열백 번 쨍쨍해도

발등 한번 안 찍히는

저 꿋꿋한 혈기와 두둑한 배짱

 

왠지 그것들에게 코를 얻어맞거나

멱살을 잡히고 싶은 날이지

어이없이 멍하니 감탄만 할 뿐인

봄날의 현란한 시비 같은 거지

—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시인의일요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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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

 

이봄희

 

놀이공원엔 비명이 꽃핍니다

대체 어떤 믿음이 저리 비명을 질러 대는 걸까요

어떤 무모한 믿음이 구심력과 원심력에 매달려

아찔한 생을 소진하고 있는 걸까요

밖으로 튀어 나갈 수 없는 이 놀이는 무섭습니다

현기증을 다독이며 회전하는

공중의 수를 서서히 줄이기로 합니다

훌라후프처럼 돌리고 돌리던

저녁의 둘레를 줄이면

둥근 공포는 야광으로 빛날까요

노랗게 질릴수록 안전 운행을 믿지만

믿어서 더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힘이 센 믿음에서 이탈하고 싶어도

굴곡의 운행은 중도하차를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존재의 끈을 놓지 않고

기어이 튕겨 나간 방식으로 지킨 일생이라면

저렇게 즐거워도 됩니다

현란한 굴레를 휘돌리던 바퀴들의 공중

즐겁던 아비규환이 조용합니다

어떤 황홀한 절정까지도

저리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놀이기구 밑엔 비명들이 즐비하고

비명은 즐거움과 고통의 두 가지 방식입니다

구심력으로 밀고 원심력으로 배신당하는

이 아찔한 일생의 놀이

아이들은 일찍부터 배우려 합니다

—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시인의일요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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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봄희 시인의 첫 시집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시인의일요일에서 발간 - 미디어 시in

하종기 기자『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시인의일요일, 2023.)는 올해로 일흔 살을 맞은 이봄희 시인의 첫 시집이다. 일흔 살의 나이와 ‘첫’이 만났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그의 시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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