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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송 시인의 첫 시집 『식물성 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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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2. 10. 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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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대상에게 잊고 있던 숨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시집

하종기 기자

 

 

 

2019년 7회 ‘평택 생태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 2020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주송 시인이 첫시집 『식물성 피』(걷는사람, 2022.)를 출간했다. 『식물성 피』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주최 ‘2022년 우수출판콘텐츠’에 선정된 작품집으로 출간 전에 이미 그 실력을 인정받은 바가 있다.

 

이주송이 쓰는 시는 평소에 강인한 생명력과 역동적인 힘이 느껴진다는 평을 받았는데, 시를 밀고 가는 역량이 섬세하면서도 힘차다. 추천사에서 류근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주송 시인의 언어는 우리가 일찍이 다 잊고 내다 버린 시의 성실과 진심을 다 기억하고 있”다고. 또 이승하 시인은 “이 지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뭇 생명체의 삶에의 의지를 찾아내는 예리한 관찰력, 그것들의 몸짓을 아주 꼼꼼하게 그려내는 치밀한 묘사력은 마스크를 쓰고 팬데믹 시대를 견디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적지 않은 위안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 더욱 의미 있는 인간의 막다른 골목을 아이러니하게 다루고 있”(김익균 문학평론가)다는 점에서 이주송의 시집은 진보적이고 고무적이다. 이주송은 상생을 이야기하며 우리 곁에 자연의 숨결과 무늬를 고스란히 옮겨 놓는다. “햇볕을 잘라 와 찢긴 면바지에 무늬를 새기죠/(…)/회화나무에서는 얼룩도 헹궈내는/바람이 있으니까요”(「회화나무 세탁소」)라는 대목처럼 친근한 일상에 자연을 접목시키는 장면들이 있는가 하면, “제 몸에 눈 녹은 묵은 봄이 가려워/멧돼지는 부르르 온몸을 털어댈 터/씨앗들은 직파 방식으로 파종될 것이다/(…)/번지는 초록들은 멧돼지의 숨결/국경도 혈연도 지연도 없다”(「풀씨창고 쉭쉭」)라는 표현처럼 우리가 잊고 살던 생명 존재를 불러와 유쾌한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타자를 향한 따듯한 인식, 열린 눈, 포옹의 방식으로 생물체들이 지닌 고유의 가치를 인식시켜 준다.

 

이주송 시인의 눈은 다각의 방향으로 열려 있다. 흔한 사물과 풍경에도 숨을 불어넣어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특히 “물기 없는 뒷말들의 포자, 공중에 찍히다 만/새들의 발자국도 내게 질끈 묶였으니” (「노란 고무 밴드」) 같은 표현, “눈물방울이 튈 때마다 파문은 여백을 키웠고/형광펜이 지나간 기슭엔/꼬리 잘린 의문 부호들이 질퍽했다/관성을 바를수록 서로의 표정은 두꺼워졌고/초여름의 쇄골이 도드라졌다” (「종이를 차지하려고」) 같은 표현은 우리가 본 적 없는 새로운 시어로 이미지를 연출해낸다. “골목이 사슴뿔처럼 능선을 향해 뻗어 있다/(…)/뿔이 벗어 놓은 샛길이 가끔 발견되기도 하지만/오늘 밤은 갈이 중이어서 모퉁이가 간지럽다”(「사슴」) 같은 문장도 마찬가지다. 그의 시는 자연의 색감을 풀어내 시각적 요소를 부각시키고, 그로 인해 시의 생명력이 높은 탄성彈性을 가진다.

 

인간으로서의 생명성과 회복력을 되찾기 위해 시인은 끊임없이 노래한다. “그리움의 지침에는 식전과 식후가 표기됩니다 날씨를 살피거나 호칭 하나 챙기는 일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앓아야 압니다」)란 문장에서 보듯이 그는 “암흑에서 웃자라는 콩나물처럼” 앓는 시간을 이겨낼 ‘그날’을 시로써 열망한다.

 

『식물성 피』는 사물과 대상에게 잊고 있던 숨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진 시집이다. 독자들은 이주송 시인의 발화를 통해 섬세한 눈과 섬세한 마음을 공유하게 되는 행복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식물성 피

 

이주송

 

버려진 차의 기름통에선

몇 리터의 은하수가 똑똑 새어 나왔다

빗물 고인 웅덩이로 흘러 들어가

한낮의 오로라를 풀어 놓았다

그러는 사이 플라타너스 잎들이

노후된 보닛을 대신하려는 듯

너푼너푼 떨어져 덮어 주었다

칡넝쿨은 바퀴를 바닥에 단단히 얽어매고

튼실한 혈관으로 땅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햇빛과 바람, 풀벌레와 별빛이 수시로

깨진 차창으로 드나들었다

고라니가 덤불을 헤쳐 놓으면

그 안에서 꽃의 시동이 부드럽게 걸렸다

저 차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

식물성 공업사에 수리를 맡긴 것이다

그래서 소음과 매연과 과속으로 탁해진

그동안의 피를 은밀히 채혈하고

자연수리법으로 고치는 중이다

풀잎 머금은 이슬로 투석마저 끝마치면

아주 느린 속도로 뿌리가 생기고

언젠가는 차의 이곳저곳에 새들도 합승해,

홀연 질주 본능으로 기슭을 배회하다가

봄으로 감쪽같이 견인될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효율성 좋은 자동차라고

차 문을 열거나 지붕 위에서 뛰기도 하지만

계절의 시속으로 함께 달리는 중이라는 걸

아무도 모를 것이다 지금도 차 주위로

푸릇한 수만 개의 부품이 조립되고 있다

―『식물성 피』, 걷는사람, 2022.

 

 

이주송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2019 7 평택 생태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했으며, 2020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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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기 기자 2019년 7회 ‘평택 생태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 2020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주송 시인이 첫시집 『식물성 피』(걷는사람, 2022.)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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