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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유고 시집 『허무의 빈 바다』 도서출판 ‘도훈’에서 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2. 10. 19.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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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픈 생을 살다간 노동자의 마지막 노래

 

김기석 시인은 1957년 경북 영천 출생하여 평생 노동자로 살았다. 그런데 2018 2 3일 안산 빈민가 원룸에서 그의 주검으로 발견됐다. 추운 겨울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가 떠난 날도 그때처럼 추운 겨울이었다고 누군가 증언을 했다. 시인은 머리맡에 그가 써 놓았던 시 60여 편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놓았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고 본인의 유고 시집을 정리해 놓은 듯, 시집의 제목과 표지의 색등을 메모해 놓았다. 그 원고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처 그에게 시를 가르쳤던 윤석산 시인에게 닿았고, 그의 유고 시집 허무의 빈 바다가 도서출판 도훈을 통해 2022 9 28일 발간됐다.

 

시인의 안타까운 일은 또 있었다.
시인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는데, 유가족으로는 남동생이 한 명 뿐이었는데, 가난한 시골 교회 목회자였다. 남동생은 생활이 넉넉지 않아서 형의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하였고, 자치회와 안산문인협회 회원들과 지역 교회분들의 도움을 받아 장례를 치렀다. 장례를 치르고 남은 돈 약 70만 원 가량을 동생은 안산문인협회에 돌려주고 집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참석한 시인들은 김기석 시인의 작품을 낭독하며 시인을 추모했고 그와 함께 불렀던 노래도 몇 곡 불렀다. 특히 시인의 사진을 움직이는 영상으로 제작하여 보여 주었고 동영상에는 여러 명의 시인이 김기석 시인과의 추억담을 인터뷰 형식으로 담았다. 이날 행사는 덤덤한 분위기에서 치러졌고, 모두 다 김기석 시인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을 예감하며 헤어졌다.

 

 

홀로 새우는 밤

 

김기석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안에 혼자 앉아 글자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안에 혼자 앉아

글자 놀이를 하다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안에서 깨어 일어났을 때

창밖에는 비만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안에서는 책들도 얼어붙어 글자들도 밖으로

걸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고립무원孤立無援

어둠 속을 향해 소리쳐 불러봅니다 거기 누구 없소

거기 누구 없으시냐고요

돌아오는 것은 묵묵부답黙黙不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단잠을 청했지만 외로움의 깊이가

깊이깊이 뼛속까지 가 닿아

나의 모든 알맹이는 어디로 가고

나의 모든 빈껍데기만 남아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안에는

알 수 없는 짠 내가 그것도 베갯잇만 적시며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안에서 알고 보니 그것도

혼자 울고 있었습니다

- 『허무의 빈 바다』 , 도훈, 2022.

 


 

일용직 노동자

 

김기석

 

간다 간다

하루살이 몸 팔러 간다

 

간다 간다

이 땅의 아들딸들

몸 팔러 간다

 

간다 간다

어둡고 침울한 비탈길 새벽녘 이 거리

작업복 가방을 메고 간다

너와 내가 간다

 

간다 간다

물 먹은 솜뭉치마냥 파김치 되어서 간다

 

간다 간다

막노동판 건설 현장 몸 팔러 간다

 

간다 간다

하루 세끼니 피 뜨거운 저 나이에

처자식 목구멍에 따순 밥을 넣기 위해 간다

몸 팔러 간다

- 『허무의 빈 바다』 , 도훈,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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