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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난, 여름』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3. 11. 15.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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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주체가 되어 제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의 힘

 

 

 

김네잎 기자

 

2012시로여는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 시집 야비해지거나 쓸모없어지거나, 동시집 여름 아이를 출간하고,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최휘 시인이 두 번째 시집 , 여름을 펴냈다.

 

최휘 시인은 등단한 지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아직은 보여 준 것보다 보여줄 것이 훨씬 더 많은 가능성으로 가득찬 신인이다. 그만큼 시를 향한 에너지가 충만하다는 의미다. 스스로도 시인의 말을 통해 , 아직 여기 있어요라며 자신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선언한다.

 

, 여름에서 최휘 시인은 억압된 현실을 놀잇감으로 만드는 이야기의 힘을 발휘한다. 직설적 화법이 아닌, 화자를 통해 이야기하는 방법과 태도를 통해 시의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김기택 시인은 해설에서 두 번째 시집 , 여름을 읽다 보니, 여전히 첫 시집의 삐딱한 상상력과 활기와 탄력이 느껴지면서도 그것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더 진화되었다는 느낌이 든다.”며 생동하는 감각과 감정을 따라 스스로 주체가 되어 제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이 시집 곳곳에 가득하다고 평했다.

 

이야기에는 금보다 더 귀한 느낌이라는 것이 있는데 저는 지금 그것을 건드린 것 같”(그린게이블즈의 앤이라면 이렇게 말할걸요)다는 최휘 시인. 그는 백련사 가는 오솔길 마삭줄 감긴 바위에 앉아”(기약도 없이 찾아오는 이를 위해 밤 깊도록 문을 열어 두었다) 이야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행위는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내면의 여러 충만한 에너지가 스스로 깨어나고 운동하도록 내버려두는, 깊이있는 지향성을 띤 방식이다. 시적 상상력이 스스로 제 본성대로 움직이는 독립적인 생명체로써 활동하도록 변화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독자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시어로 가득한 매력 있는 , 여름을 만나는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호두 혹은 화두

 

최휘

 

호두가 짖는다 화두가 짖는다 짖다가 커진다 커진 호두가 제 옆의 화두를 향해 짖는다 놀란 화두가 다른 호두를 향해 짖는다 컹컹 짖는다 한 호두가 한 화두가 가만히 있어, 소리친다

 

호두가 아니 화두가 바람을 끌어들인다 넓고 둥근 이파리로 호두가 화두를 덮는다 화두가 호두를 감춘다 호두가 가만히 흔들린다 이파리로 제 반쪽만 덮은 호두는 화두에게 밀려난 호두인가

 

화두가 호두를 본다 호두가 화두를 생각한다 호두가 화두만큼 커진다 화두가 브로콜리만큼 작아진다 호두나무의 뿌리가 축축한 화두를 더듬는다 호두들이 화두들이 간지러워 몸을 튼다 한 화두가 너무 간지러워 제 머리통을 툭 자른다

 

호두의 한때가 지금이라고 외치는 호두 피곤한 화두 퉁퉁 부은 화두 쓰러진 호두를 일으켜 세우는 화두 원칙적인 호두 밤새 토하거나 나사로 조이는 것 같아 이삼 분 간격으로 울부짖는 화두

 

호두들이 화두들이 밤을 건너간다 한 화두가 생각한다 이상하다 머리가 아픈데 왜 명치끝이 답답할까 화두는 옆에 있는 호두의 가슴에 가만히 손을 대 본다

 

호두가 살며시 이파리를 끌어다 덮는다 화두가 뒤척인다 꿈인가 호두가 중얼거린다 화두가 다시 머리통을 잡고 뒹군다 호두의 창문이 환하게 밝아 온다 너덜너덜해진 것들이 곯아떨어지는 화두의 새벽

 

저 화두를 지게막대기로 후려쳐 모두 떨어뜨려야 한다

― 『, 여름, 시인의일요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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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최휘

 

비단뱀이 울창한 여름 나무 아래를

리리리 리리리리 기어간다

 

피자두가 주렁주렁 열린 자두나무 아래를 기어가며

열흘을 지나야 먹을 수 있대

라고 한다

 

자둣빛 구름 사이로 멀어진 마음이

두 줄의 비행운으로 지나간다

참 속상했겠다

지나간 날들을 쓱쓱 핥아 주는 바람 같은 말

 

청포도 참외 토마토 오이 감자 옥수수

함께했던 여름들이 지천이다

 

여름의 가장자리를 밟으며 뙤약볕 아래를 누비며

아 더워, 라고 말하면

들은 듯 장마가 시작되었는데

 

이제 누군가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누군가를 사랑하다가 차라리 나를 사랑해 버렸어

, 여름

이렇게 말할 거다

― 『, 여름, 시인의일요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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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휘

 

의가 되기 위해 평생을 골몰했나

의가 되어 생을 엉망으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나

 

너의 우리의 사랑의 그들의

뒤는 언제나 빈자리

몇 마리의 새라도 앉혀야 할 은신처

의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깍두기

 

지금 의는

편두통 안에 한껏 몸을 낮추고 퍼덕퍼덕 야윈 꽁지를 흔든다

낮달처럼 낡아 가는 중이다

몰래 내린 밤눈처럼 고요해지는 중이다

 

그러나 의는 늘 농담의 언저리 돌기를 좋아한다

말풍선이 비눗방울 같은

허풍선이 뱃멀미 같은

정체불명의 농담 속을 헤엄치기를 좋아한다

끝없이 확대되고 늘어나는 의에는 고향 같은 것이 있다

 

의를 벗어날 수 없다

하나는 문밖에

하나는 문안에

저기 또 하나가 오고 있다

― 『, 여름, 시인의일요일, 2023.

 

 

 

최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난, 여름』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 < 신간+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최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난, 여름』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 - 미디어 시in

김네잎 기자 2012년 《시로여는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 시집 『야비해지거나 쓸모없어지거나』, 동시집 『여름 아이』를 출간하고,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최휘 시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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