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린 기자
2014년 《창비어린이》로 등단한 정지윤 시인이 두 번째 동시집 『전달의 기술』을 상상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전달의 기술』(상상, 2023)은 2023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으로 동시의 지평을 미리 인정받은 바 있다.
정지윤 시인은 다재다능한 문필가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2015년엔 경상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2016년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동시집 『어쩌면 정말 새일지도 몰라요』 시집 『나는 뉴스보다 더 편파적이다』 시조집 『참치캔 의족』 『투명한 바리케이드』를 발간하면서 운문에 대한 문학적 자양분도 쌓아 왔다.
정지윤 시인의 동시는 우리 생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물들을 새삼스레 다시 발견한다. 흔하게 보이는 사물들도 『전달의 기술』 안에서는 당당하고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불림에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자기 긍정의 태도가 있기 때문이다. 긍정은 단순한 허풍이나 합리화가 아니다. 동시에 등장하는 존재들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일으켜 세우는 양상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가치라는 명제처럼 시 속 인물들의 태도는 독자들에게도 따뜻한 위로를 전해 준다.
그로 인해 서 있는 행위만으로 자신 주변을 꽃길로 만드는 당당한 꽃의 향기가 독자들에게 스며든다. 자존감이 필요한 아이들은 이 동시집을 읽으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가 왜 중요한지, 당당하게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왜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해 주는지 잘 알게 될 것이다. 대단하고 힘센 존재들이 아니라, 보잘것없어 보이는 약한 존재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힘을 주는 모습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주변의 존재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 또한 아이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임을 이 동시집은 암시한다.
아이들의 시각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동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말들이 아이들에게 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친구가 자신의 부탁을 거절했을 때 상처를 받지만 이내 “그럴 수도 있지”라며 “마음을 녹이는”(「달콤 레시피」) 성숙한 어린이 화자의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이유를 『전달의 기술』은 자연스럽게 내민다.
그런 시집 속 특징을 파악한 김제곤 아동문학평론가는 “시인이란 어쩌면 우리가 없다고 치부하는 것들에서 ‘간절한 있음’을 발견해 내는 사람이 아닐까. 정지윤의 동시 세계를 이루는 존재들은 작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뿐 아니라, 자신 옆에 있는 누군가를 감싸고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북돋우는 세계가. 바로 정지윤의 동시가 구현하는 세계이다.”라고 평했다.
<시집 속 시 맛보기>
당당한 향기
정지윤
보도블록 사이에
피어난 작은 꽃 한 송이
누가 밟으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아슬아슬해
어쩌다가 여기에 피었니?
옮겨 줄 수도 없는데 ……
지나가던 아이 하나
쪼그리고 앉아 말을 걸어
괜찮아
당당하게 피어 있으니
사람들이 다 피해 가잖아!
꽃이 피면 꽃길이 되는 거야
― 『전달의 기술 』, 상상,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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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세 마리’의 비밀
정지윤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
노래를 부르며
으쓱으쓱 춤을 추는 친구들
우리는 엄마랑 아빠랑 따로 사는데……
울먹이는 준이
너 그거 알아?
사실, 곰들은 따로 산대
아빠 곰은 수컷끼리
애기 곰은 엄마랑 잠깐만 산대
엄마 곰은 혼자서 살아간대
자연에서는 따로 사는 동물들이 더 많아
코끼리도 호랑이도 다 그렇게 살아가거든
같이 살아도, 따로 살아도 괜찮아
우리도 하루의 반을
어린이집에서 같이 살고 있잖아
― 『전달의 기술 』, 상상,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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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
정지윤
시험지가 출렁거린다. 멀미가 날 것 같아. 청새치 같은 문제들 휙휙 날아다니고 숫자들 뒤집어진다. 토해 내는 오답들, 문제가 문제인지 내가 문제인지……
시험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교실, 오늘도 펜을 두드리며 누가 데리러 오길 기다린다.
― 『전달의 기술 』, 상상, 2023.
본지 객원기자 정지윤 시인, 두 번째 동시집 『전달의 기술』 발간 < 신간+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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