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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신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롤랑을 기억하는 계절』 끝과 시작에서 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3. 12. 7.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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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시집

 

 

 

하린 기자

 

김명신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롤랑을 기억하는 계절끝과 시작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2009년 등단한 이후 김명신 시인은고양이 타르코프스키』『남아있는 이들은 모두 소녀인가요를 출간한 바 있으며,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시어로 삶의 내부에서 마주치게 되는 목소리들을 담아 왔다.

 

이번 롤랑을 기억하는 계절에서는 자신이 기르고 있는 앵무에 대한 돌봄을 이야기하면서 또 다른 생의 감각을 성찰한다. 해설을 쓴 이정현 문학기고가의 말처럼 새 앵무가 시()의 몸을 입고 시집으로 육화(肉化), 하이데거라면 뒤따라옴이라 부를 만한 사건이다. 한 마리의 앵무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호명의 역사가 되고 그 지점으로부터 시인은 다시 삶을 반추한다. 한 시인의 간절한 부름에 앵무들이 화답하며 삶을 공유하는 존재 방식을 보여 주는 것이다. 김명신 시인에게 앵무는 숭고하고 지극히 아름다운 존재이다. 앵무를 돌봄으로써 죽음과 애도까지 함께 사유하는 시인. 앵무를 호명하는 일은 김명신 시인에게 신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이며, 앵무 인간 마홍이 새의 존재를 입고 지혜로운 삶으로의 여정을 이어가는 길이다. 그리하여 앵무의, 앵무에 의한, 앵무를 위한 단 한 권의 시집으로 태어난다.

 

새에 대해 이렇게 상호 반려적인 태도로 접근한 시집은 보지 못했다. 일방적인 반려가 아닌 대상과 호흡하면서 상호 반려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시를 김명신 시인은 진심으로 쓰고 있었다. 반려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롤랑을 기억하는 계절은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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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호명

 

김명신

 

발터_로쟈_롤랑_꼬나_꼬두_꼬세_꼬네_꼬오_초검_민트_크림_벨라_테오_피나_빌리_릴리_라이언_타샤_뮬란_막시무스_수박_레몬_망고_메론_로즈_호랑이_여우_녹두

 

비스듬히 누운 이름들은 모두 다른 세상으로 날아갔지만

한 번 이름을 부르게 되면 발터에서 녹두까지 부르게 되고

 

각자의 이름에 화답하듯 일렬로 와 앉기도 하고 숨어 버리기도 하고 어디선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없는 아이들을 불러오는 듯도 하고

 

죽은 새들은 죽은 사실로

살아가는 새들은 움직임으로

 

각자의 숨을 놓을 때까지

 

롤랑을 기억하는 계절, 끝과 시작,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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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을 기억하는 계절

 

김명신

 

0

어느 순간 살아 있다는 감각을 모를 때가 있는데요,

 

아무 이유도 없이 자살해 버린 당신을 생각할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1

롤랑은 베란다 건조대 철문 모서리 위에 앉아 있다 갑자기 허둥지둥 날아다녔다. 핏방울이 철문으로 튀겼고 다른 앵무들이 함께 놀라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롤랑도 어쩔 줄 몰랐다. 그때 롤랑은 매우 높은 곳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한참 후에야 마홍 가슴으로 와 헐떡이는 롤랑의 몸은 더없이 작았다. 호기심이 많은 롤랑은 하필 마홍이 열어젖힌 안쪽을 들여다보다 닫히는 문에 부리가 깨져 버린 것이다.

 

치명상이었다. 그날 이후로 발터는 롤랑 곁에 오지 않았고 마치 죽음을 예견한 것 같았다. 어떤 냉정한 기운이 감돌았다. 롤랑은 그러든지 말든지 혼자의 시간을 더없이 명랑하게 보내고 아기 앵무들도 살뜰히 살폈다. 다행히 마홍 주변에서 놀거나 좋아하던 나무로 가 몸의 열을 식히며 쉬기도 했는데, 어두워지면 마홍의 어깨로 와 있다가 손안에서 잠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사고 3일 후 바깥나들이를 하고 돌아온 롤랑은 결국 영원한 잠 속에 빠져들었다.

 

여름 뒷산은 새들이 놀기 좋았고 롤랑은 마홍이 즐겨 산책하는 언덕의 소나무 아래 묻혔다.

 

2

무엇을   있었을까요롤랑에게 

괜스레 이 말이 한숨처럼 나오네요.

 

베드로, 당신은 이런 날 요안나 콘세이요의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를 펼치다 깃털을 발견하고 소리 내어 읽어요. 깃털을 만지는 감촉을 배경으로 깔고 아주 천천히.

 

어떤 희미한 목소리가 귓가로 와 입김을 내뿜고 있다는 걸 누구도 알아챌 만한 계절이 왔어요.

 

 장을 넘기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롤랑, 롤랑이 와 있었구나.

 ,

새가 되었던 거니?

 

* 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

 

롤랑을 기억하는 계절, 끝과 시작,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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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곳으로

 

김명신

 

가던 그곳으로 가

강물이 흘러서 좋은 곳으로

 

거기 창밖 너머 플라타너스, 강가 옆 수양버들, 앉아 있는 사람들 웃음소리

반짝이는 곳으로

 

사뭇 다른 마음이 도사리고 있을지라도

숨 한 번 고르면서 생활을 곧추세우고 바라보는 1940년생 소녀가

 

좋아하는 곳으로

 

(앙상한 검은 얼굴의 늙은 여자. 의자에 걸쳐진 외투처럼 졸고 있다.)

 

얼마나 다행인가, 이 얼마나 다행이야

무엇이 다행인지도 모른 채 노래를 하네

 

노인들은 죽고 싶어서 울고 자식들은 살고 싶어서 울고

저 강물은 어디로 가는지 바쁘게도 흘러가네

 

어떤 꿈을 꾸나요, 죽지도 살아 있지도 않은

그녀의 석류나무, 그녀의 덩굴장미는

 

언제 윤슬에 오래 누워 볼까요

 

나의 어린 어머니

 

롤랑을 기억하는 계절, 끝과 시작,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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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신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롤랑을 기억하는 계절』 끝과 시작에서 발간 - 미디어 시in

하종기 기자 김명신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롤랑을 기억하는 계절』이 ‘끝과 시작’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2009년 등단한 이후 김명신 시인은『고양이 타르코프스키』『남아있는 이들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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