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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에 신작 시집 『하염없이 하염없는』으로 돌아온 강연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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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4. 1. 15.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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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목요일) 오후 5 독자와의 만남 가질 예정

 

 

하린 기자

 

1991문예중앙으로 등단한 후 첫 시집 비단길을 통해 혜성처럼 시단에 등장한 서정주의의 대표 주자인 강연호 시인이 11년 만에 신작 시집 하염없이 하염없는을 시인의 일요일에서 발간했다.

 

첫 시집 발간 이후 그는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기억의 못갖춘마디등의 시집을 발간하며,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우리 시의 서정적 가치를 지켜낸 시인으로 각인된 바가 있다.

 

그는 이전 네 권의 시집에서, 일상의 삶이 품은 비애를 가만히 추적하며 슬픔과 허무의 맥을 짚어나갔다. 이번 시집 하염없이 하염없는역시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우려낸 듯한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중년을 건너가는 삶이 거느린 비루한 삶의 풍경과 마음의 얼룩을 첨예한 보석의 언어로 펼쳐낸다. 일상 속 비애와 슬픔과 허무의 맥을 짚어나가며 서정적 체험을 독자에게 선사하는데, 독자의 마음속엔 잔잔한 감동의 파동이 일어난다.

 

그의 시선은 이따금 밖을 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안을 향해 열려 있다. 삶의 쓸쓸함에 대해, 고요에 대해, 우리를 글썽거리게 하는 것들에 대해 가만가만 중얼거린다. 이전보다 훨씬 두터워진 사유를 통해 느릿느릿 그려낸 세상은 쓸쓸하고 서럽다. 그런데도 그의 시들은 따뜻하고 감미롭다. 언젠가 안도현 시인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팽개치고 싶은 과거도 지루한 일상도 그에게 와서는 단단하게 빛나는 한 편의 시가 된다. 고요하고 섬세하고 낮으막한 것들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눈떠가는 기쁨을 실천적으로 시에 담아낸 후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주는 일. 그의 시가 지닌 미덕이다.

 

돌이킬 수 없어서 다행인 날들의 기억 같은 시, 떨어진 일회용 밴드를 다시 붙이는 마음 같은 시, 외롭고 쓸쓸한 것들이 자아내는 서정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시를 만나고 싶은 독자들에게 하염없이 하염없는을 권한다.

 

한편 2024125(목요일) 오후 5익산 W미술관/W하우스 내 무어서원(한옥별관)에서 강연호 시인은 신작 시집과 함께 독자와의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혼자 밥 먹는 사람은

 

강연호

 

혼자 밥 먹는 사람은 외로워서 강해 보인다

 

기억의 부력은 놀라워서 언제든 기어이 떠오른다

너무 오랜 낮잠으로 불어터진 얼굴을 짓이기며

스쿠터가 슬리퍼를 끌 듯 지나간 게 전부인 오후다

 

세계가 고요하면 긴장해야 한다

 

목련의 실핏줄이 아프게 터지는 계절인데

꽃말처럼 흩어지는 신파를 거두며

찻물이 끓는 동안 입술이 식혀야 할 이름이 있다

 

혼자 노래하는 사람은 쓸쓸해서 강해 보인다

― 『하염없이 하염없는, 시인의일요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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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문체

 

강연호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던 당신

당신에 대한 기억은 귀로 시작되더군

당신은 서술어를 잠시 머뭇거리는 버릇이 있고

당신은 부정인지 긍정인지 모를 표정을 자주 짓고

그럴 때 세상은 비스듬히 깊어지는 것이어서

나는 내 속내를 털어놓는 줄도 모르고 다 털어놓아야 했지

누군가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인생의 가장 먼 길을 가기로 작정했다는 것이지요

이쯤 해서는 내 입술이 당신의 귀에 살짝 닿기도 했을라나

인생은 미완성이라고 누가 한 말은 탄식일까요 비명일까요

완성이었다면 더 살고 싶은 마음이 도대체 생겼겠어요?

유행가 가사에 인생을 실어 나르기 시작하면서

이윽고 줄줄 나를 흘리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의 부끄러움을

스스로 못 이겨 조금씩 말이 늘어지고 서술어를 잠시

머뭇거린 것인데, 아 이건 당신의 버릇인데

당신의 버릇조차 닮아 가는 나를 들켜 얼굴이 벌게질 때

당신은 부정인지 긍정인지 모를 그 표정은 어딘가 참 익숙하다며

누군가와 많이 닮았다며 쫑긋 귀 기울여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얘기에 더 바싹 다가앉은 것인데

말하자면 내가 기어이 가장 먼 길을 가기로 작정하게 만든 것인데

참 오래고 오래된 얘기인데 당신의 귀는

참 오래고 오래된 얘기인데 당신의 문체는

― 『하염없이 하염없는, 시인의일요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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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신

 

강연호

 

아이들이 축구공을 따라 몰려다닌다

운동장에는 아이들의 발길질이 춤춘다

공은 공대로 놀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놀지만

무슨 상관이랴 그는 편을 나누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운동이 싫다

그는 거의 문밖출입을 하지 않는다

유출된 동영상처럼 세월이 넓게 퍼진다

나는 죽은 듯이 살고 싶었다

나는 사는 듯이 살고 싶었다

물론 둘 다 이루지 못한 꿈이다

햇빛 알러지 환자에게는 눈썹처마가 필수지요

의사는 우아한 손동작으로 처방을 내려 준다

정말 두려운 것은 햇빛이 아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몰려다니는 눈빛이다

몰려다니면 결국 무엇인가를 걷어차야 한다

그는 숨은 시인이다 그는 모기만큼 쪼그라든다

그는 점점 짧게 발음된다 나는 숨은 신이다

물론 처음에는 스스로의 의지로 숨었지만

축구공은 골대를 아슬아슬하게 빗나가지 않는다

휘슬이 길게 울리고 그는 잊혀진다

자 그럼 중앙의 비무장지대에서 다시 시작해 볼까

그러나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비무장지대가 가장 위험하다

― 『하염없이 하염없는, 시인의일요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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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에 신작 시집 『하염없이 하염없는』으로 돌아온 강연호 시인 - 미디어 시in

하종기 1991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한 후 첫 시집 『비단길』을 통해 혜성처럼 시단에 등장한 ‘서정주의’의 대표 주자인 강연호 시인이 11년 만에 신작 시집 『하염없이 하염없는』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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