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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성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모란의 저녁』 시인동네 시인선으로 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4. 1. 1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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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비의(秘義)를 밝히는 낯섦의 시학

 

하린 기자

 

2011미네르바로 등단한 김경성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모란의 저녁이 시인동네 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김경성 시의 특징 중 하나는 감각을 중심으로 전개양상을 갖는 것인데, 이번 시집에서도 그것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감정을 쉽게 노출 시키거나 서사를 통해 독자의 감성을 유도하지 않고 절제된 시상 전개를 통해 매력적인 징후 하나를 제시한다. 대상에 대한 치열한 관찰과 집요한 묘사로 이미지를 적층하고 그것에서 정서와 사유를 직조해 내는 힘이 그의 시에는 내재 되어 있는 것이다.

 

사물들의 이항 대립이 만들어 내는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이미지와 의미망을 창출해 내는 그의 감각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일은 시는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이다. 일상의 익숙한 사물에서부터 타국의 낯선 대상이나 풍경에 이르기까지 시가 갖는 모티브 혹은 배경이 무한하게 등장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시인의 프리즘을 통과하고 나면 새로운 이미지와 낯선 분위기를 입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로 인해 독자들은 심미안이 다각도로 넓혀지는 감상을 맛보게 된다.

 

김경성 시 세계는 낯설고 직관적인 이미지를 매개로 의미를 구현하면서 확장되어 왔다그것은 본질에 근접하고자더 정확해지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시인은 안정적이고 익숙한 것의 힘을 포기하고 끊임없이 낯선 것들을 찾아 나설 뿐만 아니라 시인 자신으로부터도 낯설어지고자 부단히 노력한다이 낯설어지고자 하는 고투는 나만의’, ‘우리만의라는 견고한 경계를 허물고 타자와의 공유지대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에 다름 아니다.

 

그의 시 세계 안에서 익숙한 대상들은 고정된 실체를 사상한 채 자유롭게 섞이고 스미고 번지며 낯선 이미지를 입고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한다이 낯선 것들타자화된 것들 속에 웅크리고 있는 비의(秘義)를 밝혀 드러내는 것이것이 김경성 시가 획득한 의미이자 그의 시에서 발현되는 경이로운 아름다움의 요체일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모란의 저녁

 

김경성

 

물의 결이 겹겹이 쌓이는 저녁이 오고 있다

멀리 왔으니 조금 오래 머물고 싶다고

지친 어깨에 내려앉는 노을빛은 붉고

무창포 바다 왼쪽 옆구리에 쌓이는

모란의 결

누군가 마음속에 넣어두었다가 꺼내놓았는지

꽃잎 사이사이 조약돌 같은 꽃술이 바르르 떨린다

바다가 너울너울 무량하게 피워내는

모란

바람의 깃에 이끌려 꽃대가 흔들린다

초승달에 걸린 바다가

허물어진다

모란이 지고 있다

― 『모란의 저녁, 시인동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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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김경성

 

그림자가 없는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한결같이

날개를 활짝 편, 새 한 마리씩 데리고 간다

저 새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어떤 새는 숲으로 들어가고

어떤 새는 골목길에 있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간다

날지 못하는 새는 눈물 흘리며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데

자꾸만 날개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사소한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젖어 있을 때만

날개를 펼 수 있는 새의 운명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날개 접은 새를 안고 버스 뒷자리에 앉는다

버스 문이 여닫혀도 놀라지 않고

부리로 무언가를 쓴다

모스 부호 같은 말들을 읽느라 내릴 곳을 놓쳐버린 나는

우음도 가는 사강 어디쯤에서

지도에도 없는 길 너머로

젖은 새를

날려 보냈다

― 『모란의 저녁, 시인동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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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미르에서 쓰는 편지

 

김경성

 

세상 모든 별들은 파미르 고원에서 돋아난다고

붉은 뺨을 가진 여인이 말해 주었습니다

염소 젖과 마른 빵으로 아침을 열었습니다

돌산은 마을 가까이 있고

그 너머로 높은 설산이 보입니다

아이들의 눈빛이 빛나는 아침입니다

나귀 옆에 서 있는 사람의 그림자가 나무 우듬지에 걸쳐 있고

풀을 뜯는 나귀의 등에는 짐이 없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백양나무 이파리가 흔들릴 때

왜 그렇게 먼 길을 떠나왔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멀리 있고

설산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고원에 부는 바람을 타고 나귀가 걷기 시작했습니다

나귀가 노인을 이끄는지

노인이 나귀를 따라가는지

두 그림자가 하나인 듯 천천히 풍경 속으로 들어갑니다

― 『모란의 저녁, 시인동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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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성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모란의 저녁』 시인동네 시인선으로 발간 - 미디어 시in

​하종기 기자 2011년 《미네르바》로 등단한 김경성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모란의 저녁』이 시인동네 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김경성 시의 특징 중 하나는 감각을 중심으로 전개양상을 갖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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