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기자
올해로 18주년을 맞는 시인광장이 2024년 1월 13일(토) 서울 동숭동 ‘예술가의 집’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이번 기념식에서는 「당신 영혼의 소실」을 쓴 황인찬 시인이 <올해의좋은시賞>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우원호·김왕노 발행인의 이·취임식이 진행되었다.
이날 행사는 총 2부로 이루어졌다. 1부 〈올해의좋은시賞〉 시상식에서 단상에 오른 황인찬 시인은 다음과 같이 당선소감을 밝혔다. “동료 시인들의 뜻이 모아져서 투표로 주는 상으로 알고 있다. 그보다 더 감사하고 기쁜 일이 있을까 생각한다. 큰 응원과 격려를 받아서 좋은 시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이어서 자신의 당선 시를 낭독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깊고 또렷했다.
(전략)
식탁 위에는 1인분의 양식이 있고
창밖으로는 신이 연산해낸 물리 법칙에 따라 나무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너는 분갈이를 해야 한다며
거실에 앉아 식물의 뿌리와 씨름을 하고 있었는데
(이미 구면인 신이 찾아와 내게 말을 건다
<이것이 당신의 영혼입니다>
-작군요
<이것이 당신의 슬픔입니다>
-없는데요
<그것이 당신의 슬픔이군요>
(후략)
― 「당신 영혼의 소실」 中
기념식 2부에서는 우원호 발행인과 김왕노 발행인의 이·취임식이 진행되었다. 우원호 발행인은 서울 출생으로 2001년 월간 <문학 21>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시인의 길을 걸었다. 시집으로 『도시 속의 마네킹들』, 『폴 세잔의 정물화가 있는 풍경』, 『아! 백두산』을 출간하였다. 2006년부터 2007년 시인광장 편집주간을 역임했으며 현재까지 시인광장의 대표이자 발행인으로 시인광장을 지켜왔다. 수년간 이어지는 병마에도 시인광장을 지키겠다는 사명을 놓지 않았기에 이번 이·취임식에 대한 그의 소회는 남달랐을 것이 틀림없다. 목소리조차 잃은 발행인을 대신하여 채종국 시인이 그의 편지글을 대독하였다.
우원호 발행인은 자신이 사랑했던 수많은 작가들을 나열하며 꿈만 같은 인생이었다고 회고한다. 책장마다 책들이 가득한 서재에서 18년간 24시간 365일을 쉬지 않고 일했으며 성실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오로지 시문학의 발전을 위해 살았다고 고백한다. 수천 명의 독자들과 편집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웹진 시인광장이여 영원하라’는 외침으로 끝을 맺은 우원호 발행인의 편지글은 그의 뜨거웠던 삶과 열정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었다.
시인광장의 새 발행인이 된 김왕노 시인은 「올해의 좋은 시 100選」 서문에 우원호 전 발행인을 기리는 시 「차라리 광장의 장엄한 나무 한 그루로 -우원호 선생님에게- 」를 실었다.
시인광장을 밤새워 살을 깎아가며 당신이 가꿨습니다.
시의 이파리마다 당신의 숨결이 잎맥으로 도드라지고
당신이 영역한 시가 남아메리카로 북경으로 케이프타운으로
옥빛 조선의 하늘을 스쳐 시 구름으로 흘러가는 것을 봅니다.
찬란하게도 시의 광장을, 광야를 초인처럼 가꿀 자 누구입니까.
당신의 분신인 시인광장에 당신이 쓴 백두산이란 시가
백두대간처럼 용트림하며 가슴을 뜨겁게 달굽니다.
(후략)
한차례 수술을 이겨낸 우원호 대표의 몸은 한결 가벼워보였다. 단상에 오른 김왕노 발행인과 우원호 전 발행인에게 격려와 감사의 박수가 쏟아졌다. 우원호 발행인의 시 몇 편을 지면에 싣는다.
自序
우원호
플라톤Platon의 <국가론>을 읽고 정치가와 사상가의 꿈을 꾸기도 했고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읽고 여행가의 꿈을 꾸기도 했고
찰스 다아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 과학자의 꿈을 꾸기도 했고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를 읽고 철학자의 꿈을 꾸기도 했다.
또한
한때 나는 체 게바라Che Guevara의 자서전을 읽고 혁명가를 꿈꾸기도 하였지만, 2001년 48세에 말기암의 선고로 사실상 인생의 사형을 언도받고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절망과 죽음의 시간이 아니라
진실과 희망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꿈꾸었던 시인의 길이었다.
그날 이후, 나를 죽음에서 구원하고 완전하게 해방시킨 것은 바로 문학의 힘이었다. 무엇보다 詩의 힘이었다.
― 『우원호 詩全集』, 시인광장 시인선,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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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내가 존재하는 것은-存在의 理由1
우원호
지금처럼 세상이 고요한 것은
세상의 중심이 우주의 중심이
고요함에 있다
지금처럼 마음이 고독한 것은
마음의 중심이
우주의 중심이
고독함에 있다
지금처럼 그대가 그리운 것은
마음의 중심이
우주의 중심이
그리움에 있다
그리고 너와 내가 존재하는 것은
마음의 중심이
우주의 중심이
사랑 안에 있기 때문이다
― 『우원호 詩全集』 시인광장 시인선,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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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 李箱의 「거울」을 패러디함
우원호
거울 속의 나는 진정 내가 아니라오
내가 조정하는 그냥 로봇일 뿐이라오
눈이 있긴 해도 나의 눈이 아니라오
코가 있긴 해도 나의 코가 아니라오
귀가 있긴 해도 나의 귀가 아니라오
입이 있긴 해도 나의 입이 아니라오
물론, 얼굴이 있긴 해도 나의 얼굴이 아닌
거울 속의 나는 마술사일 뿐이라오
거울이 걸려 있는 벽에서는 안 보이니
헤카테(Hecate)의 농간 같소
벽에 걸린 거울 속의 나를 볼 때마다
무척이나 너무나도 슬프다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가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화가나
베토벤과 같은 음악가나
헤르만 헤세 같은 시인을 꿈꿀 수도 없으니 말이오
거울 속의 나는 진정 내가 아니라오
내가 조정하는 그냥 로봇일 뿐이라오
그냥 눈으로만 보이는
허깨비일 뿐이라오
― 『우원호 詩全集』 시인광장 시인선, 2023
시인광장 올해의좋은시賞 시상식 및 우원호·김왕노 발행인 이·취임식 성료 < 현장+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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