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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형철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그날 밤 물병자리』 시인의일요일시인선으로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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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4. 1. 2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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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지극하고 속 깊은 서정의 노래

 

 

하린 기자

 

자연과 생명의 질서에 천착하며 깊이 있는 서정성을 보여온 황형철 시인이 세 번째 시집 그날 밤 물병자리(시인의일요일 간, 20241)을 펴냈다. 199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6년 계간 시평으로 등단한 이후 첫 시집 바람의 겨를과 두 번째 시집 사이도 좋게 딱에서는 자연의 순환 질서와 따듯한 서정성을 보여준 바 있는 황형철 시인은 그날 밤 물병자리는 일상에서 발견한 크고 작은 흔적을 섬세한 시선으로 살피고 사유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시 곳곳에서 정제된 목소리와 살가운 언어적 생동감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유연하고 탄력 있는 사유와 감각이 혜안으로 이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뜬구름을 보면 이와 같은 시인의 성정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우레와 번개 아무리 법석거려도/본디 모습으로돌아와서 산그림자 번지는 고요를익힌다. 끝내는 눈도 비도 품어서”(뜬구름일부) 나아가고자 한다. “떨어진 기운도 차리고 헐한 걱정”(푼푼한 점심일부)을 비워내고 자유로운 잠행”(일요일일부)을 바라는 것은 뜬구름과 다른 것이 아닌데, 생의 근원적 결핍을 성찰하고 치유해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배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자유롭고 고요한 존재론적 깊이를 통해 일종의 역설적 제의를 치러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이번 시집은 5.18이나 제주4.3과 같은 비극의 현대사와 반지하 방에서 고독사한 사건까지 역사에서부터 주변의 일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심사를 드러내고 있는데 여기에는 그만이 가능할 것 같은 감각의 서정이 있다.

 

특히 특유의 역동성과 생동감으로 제주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시 읽기의 즐거움을 더한다. 한통속을 보면 제주에서는 성별이나 성씨, 고향, 친소관계 같은 걸 따지지 않고 자기보다 나이 많으면 삼춘을 붙이는데, 이 말은 너울에 헐고 바람에 깎여 모난 데를 따뜻한 벳이 녹여주는 말이다. “만 팔천이나 되는 신이 있어”(제주특별자치도 취업난) 제주는 그 어느 곳과 비교도 안 되는 신성의 땅이다. 시인은 그네들과 한통속 되기를 통해 더 넓은 바당으로 잔잔히 나아가는”(서귀포) 것이다. 제주라는 장소성은 물론 특정 지역을 초월한 보편적 가치를 통해 서정시의 기본 원리를 충실하게 보여주는 것은 그의 미덕이다.

 

무엇보다 이번 시집은 시가 개인의 경험에 그치지 않고 보편성을 가지며 세상을 향해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시적 대상이 되는 모든 것들을 생의 의지와 견고하게 결합함으로써 공감을 주고 있는데, 해설에서도 언급했듯이 구체적 사물의 이미지로 회복하고 궁극적으로 그 질서에 자적(自適)하려 하는모습을 통해 아름답고 지극하고 속 깊은 서정을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최근 우리 시단이 거둔 일대 수확이요, 그를 언어에 대한 집념과 소리에 대한 명민한 감각의 시인으로 만들어 줄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도 그 언어와 소리에 새로운 귀를 열게 될 것이다라는 말 또한 그날 밤 물병자리의 의미와 가치를 잘 드러낸 해석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흰사슴자리

 

황형철

 

새 직업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을 찾아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었다 대개는 별 볼 일 없다고 나무랐지만 지구의 시간이 닫히면 우주로 가는 길이 열렸다

 

우주복 한 벌은 스물한 겹으로 이뤄졌대, 우리는 서로의 겹이 되어 압력을 이겨냈고

 

투명하게 빛나는 별과 별을 이어 뿔이 뚜렷해 흰사슴자리로 작명하고 섬에서 가장 높은 산에 놓아주었다

 

중산간 달리며 흐느끼는 걸 옮겨 음악을 지었다 흰 사슴을 보았다는 목격담이 오름처럼 흩어졌다

 

오늘의 별자리는 지도에 넣지 않고 간직하기로 했다 세상에 없는 점성술을 갖게 됐다

― 『그날 밤 물병자리, 시인의일요일,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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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이 피었나 안 피었나 궁금은 하고

 

황형철

 

삼백오십 살쯤 됐다는 화엄사 홍매에 주말 인파 몰렸다는데 한눈에 봐도 우아한 자태에 가 보고 싶은 속내 숨길 수 없지만 그래도

 

동백이 피었을까 제일 궁금스럽다

 

벚꽃이 활짝 전농로나 녹산로 소식은 심심찮게 오고 오동도나 선운사 같은 전국적 명소도 있지만 비할 게 아니고

 

동백은 향기가 없어 빛으로 새를 불러 모은다지

 

큰넓궤 가는 길에 잃어버린 마을에 점점이 피기 시작할 즈음 제법 시적인 말을 근사하게 얹어서 부쳐 준다면 그 사람 평생 사랑하고 말 텐데

 

누추한 뜰이나마 한 그루 가꾸어 설룹게 스러진 정낭 살그머니 어루만지며 빛으로 말하고 음악도 풍경도 지을 것을

 

남쪽 섬에서 연락이 오나 안 오나 빨갛게 속을 태우고 있다

― 『그날 밤 물병자리, 시인의일요일,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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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철 집 앞

 

황형철

 

마땅히 삼을 만한 명칭이 없어 사방에 밭뿐이니

그냥 권상철 집 앞

 

아픈 아내에게 선물한 세상 유일무이

버스 정류장

 

종로에 송해길 진도에 송가인길

충무로 퇴계로 세종로 위인의 시호를 딴 길도 흔하지만

수억 원에 팔린 지하철 역명도 있지만

 

명치에 걸리는 게 많다 싶고

염소처럼 뿔나는 일이 많은 요즘인데

야단스러운 시간에서 옆으로 비켜나

 

권상철 집 앞에서

좀처럼 오지 않는 버스 기다리면

별이 앉고 동이 트고 멧새가 울고

열매에 뜨거운 빛이 들어

 

눈이 가닿는 반경 모두가

부부의 해로여서

 

엔진보다 크게 뛰는 심장으로

후진도 우회도 없이 어디든 못 갈 데 없어

 

부르릉부르릉 꺼지지 않고

백 년은 거뜬히 살 거 같아

 

제아무리 평판이 높은 누구보다도

아무렴 대단하고말고

 

울컥 복받치고 마는

백두대간로 어느 버스 정류장

― 『그날 밤 물병자리, 시인의일요일,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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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형철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그날 밤 물병자리』 시인의일요일시인선으로 발간 - 미디어 시in

하종기 기자 자연과 생명의 질서에 천착하며 깊이 있는 서정성을 보여온 황형철 시인이 세 번째 시집 『그날 밤 물병자리』(시인의일요일 간, 2024년 1월)을 펴냈다. 199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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