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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희 시인의 세 번째 시조집 『세상의 두근거림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인동네 시인선으로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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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4. 3. 1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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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쓸모없는 것들의 고귀함

 

 

정지윤 기자

 

2003매일신문신춘문예로 등단한 손영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세상의 두근거림은 다 어디로 갔을까가 시인동네 시인선 224로 출간되었다. 손영희 시인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창신대 문예창작과, 고려대 인문정보대학원을 졸업했다. 시집으로 불룩한 의자』 『소금박물관현대시조 100인선 지독한 안부등이 있다. 오늘의 시조시인상, 이영도시조문학상 신인상, 중앙시조대상 등을 수상했다.

 

손영희 시인은 쓸모와 효용성의 이데올로기가 주변화한 것들을 주목한다. 그동안 우리는 합리성과 이성의 잣대로 얼마나 많은 세상의 두근거림을 버렸는가. 하여, 손영희 시인은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 속에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두근거림의 기원과 힘을 찾는 일에 매진한다. 이 시집은 근대성이 버린, 쓸모없는 것들의 고귀한 목록을 보여준다. 거기에 근대 이후의 새로운 시적 이정표가 있다.

 

벤야민(W. Benjamin)생산자로서의 저자에서 현대 작가의 가장 긴요한 과제를 작가가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를 깨닫는 것,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기 위해 그가 얼마나 가난해져야만 하는지를 인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가난의 다른 이름은 궁핍 혹은 결핍이다. 자신과 세계의 궁핍을 보지 못하는 시인은 시인이 아니다. 자신과 세계의 가난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시의 출발이고, 그런 출발을 하기 위해서 시인은 누구보다 가난해져야만한다.

시인은 예민한 안테나로 자신과 세계의 헐벗음을 포착한다. 이 포착의 순간, 자아와 세계는 문제적인 것(the problematic)이 되며 시인은 문제적인 사유를 시작한다. 가령, 왜 존재는 빈 구멍으로 가득한가. 세계는 왜 존재들의 행복으로 충일하지 않은가. 이 시집의 제목처럼 세상의 두근거림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인이 세계의 궁핍을 따지듯 건드릴 때 비로소 시적 사유가 시작된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손영희 시인의 이 시집은 제목에서 이미 드러나다시피 중요한 어떤 것들이 사라진, 그리고 사라지고 있는 세계에 관한 질문과 성찰로 이루어져 있다. 소수의 영웅이 세계의 주인이 아닌 것처럼, 세계는 거대 서사의 콘텐츠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세계의 궁핍은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도정일)의 부재 때문에 생긴다. “고귀한 것들의 리스트를 쓰잘데만으로 작성하는 자들은 쓰잘데없는 것들의 고귀함을 모른다. 세계는 크기나 부피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아무런 영향력도 없을 것 같은 작은 것들의 끝없는 연쇄가 세계를 만든다. “흙덩이 하나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도/유럽의 땅은 그만큼 작아진다는 말은 시인 존 던(J. Donne)의 엄살이나 허풍이 아니다. 쓰잘데없는 존재는 없다. 다만 쓰잘데없어 보이거나 쓰잘데없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존재만 있을 뿐이다. 손영희 시인은 이 시집에서 우리를 궁핍하게 만드는, 우리를 가난하게 만드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한다. 그것들은 쓰잘데없어 보이지만 고귀한 것들의 목록이다.”라고 평했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시래기 엮음

 

 

손영희

 

 

한데에 그대를 널자 생기가 사라졌다

 

묶이는 어떤 생은 갈피가 많다는 것

 

기어코 남은 향기는 허공에나 꽃피운다

 

혼이 나갔으니 날마다 환청인데

 

조이면 바스러질 목줄처럼 서걱대다

 

서러운 싸락눈에나 뺨을 내줄 뿐

 

몸을 부풀리던 기억의 습성은 남아

 

사막에 길을 터준 별빛에 기대어

 

시 한 편 물에 불리며 여물어 가겠네

— 『세상의 두근거림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인동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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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사막

 

 

손영희

 

 

아버지, 간밤에 말이 죽었어요

 

그때 고삐를 놓은 건지 놓친 건지

 

쏟아진 햇살이 무거워 눈을 감았을 뿐

 

한 발 올라가면 두 발 미끄러지는

 

잿빛 모래언덕도 시간을 허물지 못해

 

이곳은 지평선이 가둔 미로의 감옥입니다

 

한세월 신기루만 쫓다가 허물어지는

 

사방이 길이며 사방이 절벽입니다

 

아버지, 간밤에 홀연히 제 말이 죽었어요

— 『세상의 두근거림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인동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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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 산책

 

 

손영희

 

 

햇살은 저 눈부신 함정을 모른다

 

투명하게 얼어 있는 이슬의 본질을

 

나무는 옹색한 변명을 환부처럼 매달고

 

누구는 용케도 비껴갔다 노래하고

 

누구는 덜컥 헛발질하다 걸려들고

 

돌아와 거울을 보니 머리가 하얗다

— 『세상의 두근거림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인동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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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희 시인의 세 번째 시조집 『세상의 두근거림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인동네 시인선으로

정지윤 기자 2003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손영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세상의 두근거림은 다 어디로 갔을까』가 시인동네 시인선 224로 출간되었다. 손영희 시인은 충북 청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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