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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언어의 보석, 그 속에서 빛나는 시인의 마음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4. 3. 19.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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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성향의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강인한 시인의 열두 번째 시집 장미열차

 

 

 

하린 기자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강인한 시인이 팔순을 맞아 열두 번째 시집 장미열차(포지션, 2024.)를 발간했다. 그의 등단작은 종결부에서 예민한 사회문제를 쉬르리얼리즘 기법으로 처리한 과감한 형태였다. 카프카의 그로테스크한 방법론을 폭탄처럼 시단에 던지며 등단한 시인은 사회적인 현실을 다루되 탐미주의적 미학과 모더니즘을 지향하는(불길 속의 마농) 시를 초기와 중기 때 창작했다. 그래서 그 당시 강인한의 시편들에 대한 이가림의 지적은 음미할 만하다. “비근한 사물과 풍경의 배후에 감춰진 삶의 진정한 실체를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통찰력과 그의 빼어난 형상 능력에서 우리는 상상력의 깊이에서 우러나는 예술품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라며, 대상과 현상이 갖은 본질을 깊이 있게 간파하고 그것을 미학적인 의지로 빼어나게 형상화하고 있음을 언술했다.

 

그는 일찍이 5.18 광주를 고스란히 몸으로 살아낸 중년의 시집 전라도 시인(1982) 칼레의 시민들(1992)을 간행하여 애틋한 서정과 강인한 시적 이미지를 독자들에게 심어준 적이 있다. 그로부터 30여년 지난 후 펴낸 장미열차60년대 후반부터 군사정부 시절과 민주화 이후의 역동적인 사회 변화를 두루 거친 시인의 면모를, 다양한 성향의 파노라마처럼 담아내고 있다.

 

등단 초기의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를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한 번 들여다볼(새벽의 질문, 풍등風燈) 수도 있으며, 영상 감각과 애상적 음악의 해조(삼각해변을 달리는 개,눈물)를 특별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것과 더불어 코로나19의 상황이 담긴 시(밤새 안녕하신가요), 금혼식이라는 개인 신변(어느 새벽)이 담긴 시, 인류세의 종말(불타는 노틀담)을 담은 시 등은 그의 관심사가 얼마나 다양한지, 그 관심사가 어떻게 미학적으로 변용되고 변화 양상을 가져오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시력 40년을 넘어서면서부터 시인이 내놓은 시에 대한 정언은 단호하다. “시는 언어의 보석이다. 그 속에서 빛나는 것은 시인의 영혼이다.” 그리고 시에 임하는 자세를 나의 종교는 시다.”라고 결곡하게 밝힌 바가 있다. 그의 정언대로 이번 시집은 보석처럼 아름다운 언어를 꿈꾸며 영원한 사랑을 노래(장미열차)하는 시인의 올곧은 정신과 노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독자들은 이 시집을 통해 나이에 상관없이 좋은 작품을 알아보고 직접 창작에 임하는 강인한 시인의 심미안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게 될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장미열차

 

강인한

 

부드러운 슬픔을 친구의 어깨처럼 기대고

그대는 나직나직이 울고 싶은 게지.

퀸 엘리자베스

장미의 이름으로 피어있는 오늘.

 

겹겹이 여민 분홍 베일 사이로

향기는 흐른다.

오랜 옛날도

바로 어제처럼 기억하며

 

내가 타지 않은 열차를 떠나보낸다.

잠들지 못하는 그대에게

보내고 또 하염없이 열차를 떠나보낸다.

 

작은 장미 정원에서

밤마다 피고 지는 꿈

한 닢 두 닢 헤아리는 그대에게

오월에 떠나보내는 장미 열차.

 

강인한, 장미열차, 포지션,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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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

 

강인한

 

항아리를 기울인다.

 

빛을 기울여

오후 4시를 붓는다.

 

그림자 비스듬히 흘러

천천히 눈에

띄지 않게 길어진다,

조금씩

 

가라앉는 시간의 틈새로

숲속의 키 큰 나무들,

 

짙은 그늘 속에

엄격한 명암

부드럽고 뚜렷하게 세운다.

 

강인한, 장미열차, 포지션,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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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수선

 

강인한

 

더듬거리네.

 

넘실거리는 물결

지그시 눌러보는 체중.

 

킬킬 간지럼 타는 당신의 바다 위에

물살이, 물살의 혀가 송곳처럼 꼿꼿해지다

끝없이 오르는 금빛 수평선 뒤집어 버릴 듯

 

위로 아래로

배의 몸통을 어루며 어루만지며

물살은 더듬거리네, 가장 비밀스런 언어로

더듬거리네.

 

멀고 먼 데서 시작된 희미한 선율이

한꺼번에 찾아온다.

마침내 당신의 바다를 끌어올린다.

솟구쳐 폭발하고, 산화하는 금빛 소용돌이.

 

강인한, 장미열차, 포지션,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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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해변을 달리는 개

끌로드 를르슈, 남과 여

 

강인한

 

우이

우이 우이

우이 우이 우이

뛴다 말 한 필이 뛴다

말이 뛴다 말 두 필이 뛴다

말이 뛴다 말이 뛴다 말 세 필이 뛴다

새도록 짖으며 달리고 또 달리는 장 루이의 차

말이 뛴다 말이 뛴다 말이 뛴다 네 필의 말이 뛴다

아이들이 소리치며 해변을 달린다 파도처럼

파도가 짖으며 해변을 달린다 개처럼

새벽 유리창에 흐르는 배기음

삼각해변을 달리는 개

우이 우이 우이

우이 우이

우이

 

강인한, 장미열차, 포지션,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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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언어의 보석, 그 속에서 빛나는 시인의 마음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강인한 시인이 팔순을 맞아 열두 번째 시집 『장미열차』(포지션, 2024.)를 발간했다. 그의 등단작은 종결부에서 예민한 사회문제를 쉬르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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