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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시in〉 스페셜 집중 조명 _ 서안나 시인편1

스페셜 집중조명

by 미디어시인 2024. 3. 1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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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나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애월(여우난골, 2023) 발간 기념 인터뷰

애월이라는 질문들과 애월이라는 진혼곡

 

 

 

인터뷰 진행: 이정은 시인

 

서안나 시인의 시집 애월(여우난골, 203)이 시인수첩 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서안나 시인은 1990문학과 비평겨울호로 등단한 이후, 치열하게 35여 년간 시 창작활동에 몰두하며 시적 성과를 보여준 바 있다. 서안나 시인은 기존의 네 번째 시집 새를 심었습니다3권의 시집을 이미 상재 한 바 있으며, 이번 시집 애월은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서안나 시인은 그간 모던하고 감각적인 시풍과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작품 속에 담아내어 독자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중견 시인이다. 특히 이번 시집 애월은 그가 추구해 온 기존의 작품 성향에 <제주>라는 지역적 특성과, 특히 <애월>이라는 지명의 특수성을 확장하고 증폭하고 있다. 시의 서정의 결과 준엄한 역사 인식을 동시에 결합하여 개성적인 시적 세계관을 담아낸 의미 있는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죽음에 관한 진중한 사유를 유감없이 펼쳐 보이고 있다. 이는 개인사적인 가족의 죽음의 체험과 근현대사의 가장 처절한 학살이 자행된 제주 <4.3 항쟁> 그리고 지구 곳곳에 발발하고 있는 전쟁의 비극성을 정교하게 직조하고 있다. 시인이 이번 시집을 통해 공들여 그려내고 있는 제주의 비극적 서사는, 제주 4·3 항쟁의 비극에 대한 고발과, 제주어의 발견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1950년 현 제주국제공항 자리에서 자행된 집단 학살과 암매장을 고발하고 있는 시에서 시인은 죽음을 밟지 않고 제주에 착륙할 수 없다죽음을 껴안지 않고는 제주를 떠날 수 없다라고 통렬하게 진술하고 있다. 시인은 또 다른 집단 학살을 고발하고 있는 시 밤의 애플민트에서 무심히 애플민트를 꺾은 자신을 돌아보며 그 여리고 푸른 것들 앞에/내 무심한 폭력을 내려놓는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시인은 여기서 더 나아가 제주의 참혹한 역사를 확장하여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애월, 우크라이나), 신장 위구르에서 자행되고 있는 참혹한 폭력(애월, 신장 위구르)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이를 통해 시인은 고백은 고백할수록 더 참혹해지지만, 이런 추악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추악함을 견뎌야 한다”(애월, 신장 위구르)라고 힘주어 말한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제주도의 비극적인 역사를 고발함과 더불어, 제주어의 발견을 통해 신과 인간이 함께 조우하고 혼융된 제주도의 원형과 서사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제주어는 이제 소멸의 단계에 들어선 실정이다. 이에 시인은 제주어가 지닌 시어의 어감을 살려 제주와 제주 사람들이 오랜 시간 가슴속에 묻고 살아온 통한의 역사를 작품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는 시인이 역사 인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특유의 결연함에서 출발하고 있다. 시집에 담긴 역사 담론에 내재한 힘과 사유는 <4.3 항쟁>이라는 거대한 사건 속에 스며들어 현재 시점에서 사건을 유추하고, 또 제주 사람들이 겪었던 아픔을 예리한 감각과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다. 이번 시집은 그런 의미에서 근현대사의 비극을 재조명하는 귀중한 목소리를 담고 있으며, 아울러 올해 시인의 아버지 3주기 기일에 맞추어 시집을 출간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혼자 남으신 늙으신 노모에 대한 애틋함을 담은 시편들이 독자들의 가슴에 고요한 슬픔의 진동을 전해주고 있다. 시인 개인에게도 애정이 깃든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인터뷰> 사진 제공: 서안나 시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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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시집 애월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다섯 번째 시집이 되는데요. 독자에게 인사 말씀해 주세요.

 

제주 애월 한담 해변의 저녁 풍경

 

 

답변: 안녕하세요. 시를 쓰는 서안나라고 합니다. 소중한 지면에 초대해 주신 미디어 시IN 측과 인터뷰를 진행해 주시는 이정은 시인께도 감사드립니다. 제가 시집을 쓰고 출간하는 과정을 독자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 저에겐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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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애월시집을 읽어보면, ‘아버지의 죽음‘4.3 희생자들의 제의서사가 시집 안에서 묵직하게 직조된 듯합니다. 창작하시는데 어려움이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답변: . 이번 시집은 시의 소재나 그 외 시적 장치 혹은 시의 구성면에서 특히 고민이 많았어요. 역사 인식이 강하게 부각된다는 점과 기존의 시 창작법과 결을 달리했다는 점이 이전 출간한 시집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이정은 시인님이 질문하셨듯, 아버지의 죽음과 제주 그리고 4.3 사건과 검은색 등 시집을 관통하는 몇 개의 키워드가 있어요. 서툴지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보려합니다.

 

#애월 1, 아버지와 고향

 

인터뷰 질문지를 읽다 보니, 제 시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시집도 다시 펼쳐 보게 됩니다. 제가 애월연작시를 발표한 지도 꽤 오래되었어요. 애월 혹은작품이 첫 번째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이 수록된 시집이 3번째 시집입니다. 2013년에 립스틱 발달사가 발간되었으니 거의 10여 년 동안 애월을 품고 있던 셈이 됩니다.

애월 관련 작품을 틈틈이 쓰고 지면에 발표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늘어날 때마다 혹여 기회가 된다면 시집으로 한 권 묶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긴 했었어요. 하지만 애월연작시 작품 수가 그리 많지 않고, 작품의 밀도가 미약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오랫동안 애월을 걷고 있었고, 애월 바다의 파도처럼 술렁거리며 애월의 밤과 절벽과 함께 달을 쳐다보고 있었던 듯싶어요.

 

할머니와 부모님과 나와 강아지

 

 

제가 애월연작시를 쓰고 발표하고, 다시 수정하는 동안 지난 10여 년간 개인적으로 많은 부침이 있었습니다. 특히, 제게 너무나 소중한 아버지의 병환과 돌아가신 일이에요. 아버지의 부재는 저를 오래도록 상실에 빠지게 했어요. 피를 나눈 혈육이 병으로 힘들어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그 지난한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저에겐 형벌과도 같았어요. 특히나 코로나 기간이라 병원 입원이나 그 외 여러 면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많고 복잡했어요. 그 시간 동안 저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오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절망에 짓눌리기도 했는데요. 아마도 그 힘으로 애월 시편을 더욱 가까이에 두게 된 것도 같아요. 죽음이라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명사가 구체적인 얼굴로 저에게 다가온 것 같아요.

우리는 일상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죽음을 나와 아주 먼 곳에 두기에 내 영혼의 대지에 죽음이 설 자리를 절대 허락하지 않습니다. 내 일상의 어느 한 틈에도 죽음을 초대하지 않습니다. 잔인하게도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다 평등합니다. 인간이 유한성을 지닌 유기체적 존재이기에 누구도 죽음을 비껴갈 수는 없으니까요.

바보 같게도, 저는 아버지가 병환이 깊어지셨을 때도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아버지가 금방이라도 툭툭 털고 일어서실 것만 같았어요. 아픈 사람 옆에서 그에게 죽음이 천천히 밀물처럼 다가오는 시간을 바라보는 일은 참혹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은 참으로 커다란 위로의 손길을 지닌 것 같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힘들어하는 저에게 지인들이 장례를 치르고 3년 정도 지나면, 슬픔과 거리 조절이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전 그 말을 들으면서도 지인의 말에 수긍할 수 없더라고요.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죽음을 추모하는 방법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그때 쓴 시가 애월 공무도하나쁜 기적등입니다.

 

#애월 2. 검은색에 기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 당시의 상황을 검은색의 색채 이미지로 감각 했던 것 같아요. 죽음을 검은색으로 바꿔 읽은 셈이 되었는데요. 그런데 신기한 것이 어느 날인가는 검은색이 입체적으로 보였어요. 검은색은 일반적으로 삶과 죽음 혹은 생성과 소멸 중 죽음과 소멸의 이미지와 더 친밀한 색입니다. 게다가 우리에게서 빛과 사물을, 빛을 통과한 것들을 자신의 커다란 외투 자락으로 감싸안아 버립니다.

그런데 저는 그 검은색의 힘에 내내 기대어 앉아 있었더라고요. 검은색에 영혼을 기대면 검은색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 같았어요. 검은색이 어떤 존재와 사물들을 감추고 소멸의 방향으로 삭제시키는 것이 아닌, 탯줄이 있고 피가 흐르는 온열의 동물 같다고나 할까요. 마치 안고 있으면 온몸이 함께 따스해지는 사람처럼요. 검은색은 어떤 방향성이나 면적 같은 질감이 있어서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갈 수가 있는 색 같아요. 안온함이 있고 침묵이 있어요. 검은색 안에서 어둠과 침묵이 어둠과 빛이 어둠과 영혼이 동의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 시집에서는 검은색과 아버지와 죽음 그리고 어머니와 고향을 다룬 시편들이 많아요. 그리고 아버지의 부재를 통해서 차츰 애월이라는 시적 공간을 넓혀갔어요. 애월이라는 실제의 장소성에서 차츰 그 장소의 상징성으로 확장하고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애월 3, 애월과 진혼의 노래

 

시집 애월5시집 인데요. 제가 90년 겨울호에 등단한 것을 헤아린다면 출간 시집이 적은 편입니다. 첫 시집도 등단 후 거의 9년 만에 나왔고요. 그 이후의 시집들도 출간 간격이 다 비슷비슷합니다. 그 와중에도 다행스러운 점은 제가 시집을 출간할 때마다 모두 지원금을 받았다는 점이 커다란 위로가 되었어요.

이번 시집의 경우에는 우선 2년 전인 2022년에 문예진흥기금을 수혜하여 출간한 4시집 새를 심었습니다이후 1년 만에 나온 시집입니다. 기존 시집의 출간 시기와 비교해 보면 이번 시집 출간은 저에겐 파격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번 시집을 출간하면서 가장 고심했던 것 중의 하나가 시집 제목입니다. 시집 제목을 애월로 정한 데에는 나름의 고민이 있었어요. ‘애월이 지니는 특수성과 장소성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주력하여 시집을 묶었어요. 애월은 제주의 지명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거느린 유토피아적인 곳인 동시에 근대사의 비극 또한 흉터처럼 간직하고 있는 곳이에요.

시집에서 첫 작품으로 수록한 제주국제공항 388이나 밤의 애플민트등에 나타난 비극적 서사처럼요. 제주국제공항 388의 경우, 제주에 입도하는 관광객이 처음 대면하는 곳이 바로 제주 국제공항 활주로인데요. 이 활주로 터는 4· 3 때 참혹한 학살과 매장이 자행된 곳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주에 입도하기 위해선 비행기 안에서 그 야만의 장소를 공중의 언어로 읽어야만 하고 또 제주를 떠날 수 있어요. 제주 혹은 애월로 표상되는 공간에서 자행된 비극성은 역사와 기록으로만 봉인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권력에 의한 무차별한 학살과 죽음은, 비단 애월을 넘어서서 중국 신장 지역의 포로수용소,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지구, 이태원 10.26 참사 등 지구촌 전체에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개인적 가족 죽음 체험 서사가 그 하나라면, 근현대사의 비극인 4·3의 희생자들의 제의 서사가 또한 거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 경험하는 아버지의 죽음, 생과 사에 관한 근원적 질문을 제기하는 동력으로 기능하고 더 나아가 아버지 세대의 죽음은 곧 과거의 폭력적이고 기형적인 권력의 탄압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이들의 기억과 긴밀하게 연동되고 있어요. ‘아버지를 통해 추적하는 죽음에의 기원은 진혼의 노래인 동시에, 억울한 죽임을 당한 희생자들이 역사를 증폭된 힘으로 구체화하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애월은 미분리된 하나의 표상이자 기표라 할 수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혼융된 제주의 신화와 전설과 무속은 죽은 자를 호출하여 그 죽음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영혼을 달래주는 종교적인 상상력이 탄생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또한, 희생된 영혼을 지금- 여기로의 호출은 이념과 권력의 광기와 은폐된 폭력성, 희생된 죽음을 추적하고 기억하려는 시적 의지이며 시집에서 제 시의 방향성의 요체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 내뿜는 파동과 자장 그리고 그 죽음이 지니는 힘의 역동성으로 은폐된 공권력의 폭력적인 맨얼굴을 수면 위로 부상시키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두 개의 서사를 통해 직조된 죽음의 무늬가 뿜어내는 힘의 아우라와 역동성을 드러내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죽음의 망각이 아닌 죽음의 기억을 기록하고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은 곧 기형적이고 부패한 권력의 힘에 관한 저항이기도 합니다.

시집이 출간된 계절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주기가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아버지의 마지막 표정은 슬픈 얼굴로 각인되어 있지만, 이제는 아버지와 손을 잡고 슬픔의 영토에서 기쁨의 영토로 함께 가고 싶습니다. 한없이 다정하셨던 아버지는 분명, 그곳에서 따스하고 넉넉한 제주 바다 같은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을 것 같아요. 못난 내 시집을 나보다 더 아껴 주셨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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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시인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나 에피소드가 있는 시가 있다면 한 편 소개해 주세요. 그리고 봇디창옷이란 작품의 창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답변: 이정은 시인님, 제 시집을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시집의 1부에 수록된 봇디창옷이란 작품을 통해 질문에 답해보려 합니다. 봇디창옷은 우연히 저와 옷의 인연이 닿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옷의 명칭과 실물을 처음 접했을 때, 옷 모양새와 이름이 주는 어감이 무척 신선하고 독특했어요. “봇디창옷이라고 여러 번 읽었더니, 내 혀와 입술에 어떤 끈적한 감정 같은 것이 남아 있더라고요. 특히 소매가 긴 옷의 외형적 모양새에서 느껴지는 어머니의 기다림과 순연함이 좋았어요. 마치 그 긴 소매가 아이가 전생에서 걸어 나오는 걸음을 어미가 오래도록 지극하게 기다리는 시간들, 그런 상상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더불어 아이의 몸에서 풍겼을 비릿함도 함께요.

봇디창옷은 갓난쟁이들이 입는 배냇저고리인 셈인데요. 박물관이나 어머니의 낡은 옷장 어느 한 귀퉁이에 색이 바랜 보따리 안에 보관되어 있기도 할 만큼 소중한 사물이에요. 배냇저고리에는 세상에 갓 도착한 아이들의 첫 우주가 담겨있으니까요. 이러한 상상력을 통해 봇디창옷을 소재로 삼아 시를 써보고 싶었어요. 물론 제주어가 지닌 아름다움이 옷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옷이 더 매력적으로 저에게 다가왔어요.

또한, 제주어를 활용하는 데도 고민이 많았답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제주어가 지닌 어감을 살리려고 과감하게 각주 처리하지 않았어요. 제주어의 경우는 지역어의 삶과 민속적인 부분 그리고 개성적인 측면을 드러나게 하지만, 더불어 독자와의 소통이 어려운 점이 한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탄생과 죽음은 인류 전체가 경험하는 통과제의며 가장 원형적인 사건이니 굳이 각주로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달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제가 이번 시집에서 제주어를 구사하려 했던 이유는 언어는 육군과 해군을 가진 방언이다.”라는 박스 바인라이흐의 문장과 그 맥락을 같이 합니다. 획일화한 표준어가 지닌 언어 일반 권력에 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1985년부터 표준어 정책으로 전국의 학교 교실에서는 수업을 표준어로 진행해야만 했습니다. 그로 인해 전국의 아이들, 특히 제주 아이들의 경우에, 제주어를 일상에서 사용하는 빈도수가 현저히 줄었답니다. 제주어 대신 표준어를 사용하다 보니, 지금의 아이들은 제주어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 때문에 현재 제주어가 소멸 단계를 거치는 상황입니다. 유네스코에서 제주어를 소멸 직전 단계의 언어로 분류하고 있어요.

언어를 통해 권력 강화를 구축하고 언어를 통해 전국을 통합하려는 무지한 정책으로 이제 우리나라는 균질화된 하나의 거대한 표준화의 감옥에 갇히는 꼴이 되었어요. 이를 한번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았어요. 2차 세계대전 때 미국과 영국의 경우도, 영어를 통해 세계 정복의 야욕을 기획했다는 내용이 있어요. 이를 대변하는 처칠의 말은 언어 권력의 민낯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언어를 지배하는 것이 민중들에게서 지역이나 경작지를 빼앗거나 그들을 착취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보상을 가져온다. 미래의 제국은 정신의 제국이 될 것이다.”

 

제가 애월이란 공간을 확장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공권력이나 폭력적인 권력으로 누군가 억울한 희생이 있는 곳은 모두 애월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동시에 지역어의 구사는 곧 중앙집권이란 권력의 구축에 균열을 내는 점에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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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애월시집에서 첫 시로 제주 국제공항 388” 그리고 마지막 시로 애월, 이공본풀이를 배치한 데는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애월시집을 통해 전하고 싶은 바가 무엇일까요?

 

답변: 이번 시집 애월에서 그간 제가 다루어 온 여러 가지 측면을 실험하는 시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먼저 질문해 주신 시집의 배치 부분에서도 많이 고민했습니다. 물론 시집의 작품 배치는 저만이 아니라 시집을 엮는 시인들이 반드시 고민하는 작업일 것입니다.

제주라고 할 때, 제주는 아름다운 풍광만을 지닌 장소로 기억되곤 합니다. 특히 애월은 누구나 좋아하는 관광지이기 때문입니다. 전 제주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자꾸 삭제되고 지워지는 역사적인 비극과 공권력에 희생된 과거의 고통을 현재에 기입하고 동시에 그 영혼들을 진혼곡으로 달래주고 싶었어요. 다행스럽게도 시집의 해설을 써주신 이홍섭 시인께서 그러한 저의 의도를 너무도 정확하게 간파하였기에 그 내용으로 대신해 봅니다.

 

이번 시집은, 시집을 여는 첫 시로 제주의 비극을 고발한 시 <제주국제공항 388>, 마지막 시로 서사무가 이공본풀이을 차용한 시 <애월, 이공본풀이>를 배치하면서 시집 전체가 장중한 진혼가로 읽히도록 구성하고 있다. 시인이 <제주국제공항 388>에 이어 두 번째 시로 <재의 풍경>을 싣고 있는 것도 진혼가로서의 의미를 증폭시킨다.

이번 시집이 한 권의 장중한 진혼가로 읽히는 것은 이러한 시의 배치뿐만이 아니라,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노래하는 많은 개인적 서사가 아버지의 병과 죽음에서 비롯된 것이고, 제주도의 서사 역시 4.3 항쟁의 비극적 역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애월은 이 개인적 서사와 역사적 서사를 품고 달래며 물결처럼 퍼져 간다. 앞부분에서 던졌던 질문 즉, 그동안 애월을 시집의 표제로 삼기를 주저했던 시인이 왜 이번 시집에 이르러 애월을 표제로 내세우게 되었는가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 이홍섭, 애월시집 해설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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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어려운 질문이기도 합니다만, 시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시인님의 시론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어느덧 등단한 지 30여 년이 훌쩍 넘어서고 있네요. 시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이고 덩치가 큰 문제는 한마디로 쉽게 단정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시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시를 창작하는 자체가 곧 시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시란 완결된 지점이 아니라 계속 세계를 끊임없이 인식하고 관찰하는 과정 그 자체인 것 같아요.

사실 시를 처음 쓸 때는, 시 한 편의 미학과 완성도에 집중하는 탓에 내가 쓰는 시의 주제나 인식의 사유에 관한 고민 없이, 눈에 띄는 대상이나 사건 혹은 사물들에 의해 촉발된 심상을 시로 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시를 쓰다 보면, 전체와 부분을 연결하게 됩니다. 자신의 작품 경향을 스스로 파악하게 되고, 각 시집의 차별화된 전략에 관해서도 고민하게 됩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곧 내가 세상의 접면에 부딪히는 노이즈 같아요. 그 과정에서 시인은 자기 갱신이 요구되는 존재 같아요. 정위 되지 않는 좌표가 없는 어떤 방향성을 지닌 동사 같아요. 방랑자의 운명을 지녔기에, 발길이 멈추지 않고 확장하는 흐름, 정신 혹은 에너지 덩어리 같아요.

언젠가 인상 깊게 마주했던 브론즈 작품들을 기억합니다. 빼빼 마른 몸으로 고개를 떨구고 가는 사람. 세상의 모든 고독을 다 짊어지고 가는 그 조각상에서 그가 제일 먼저 조우하는 이는 바로 자신이며, 자신을 통과해야만 외부로 나아가 타인을 껴안는 힘으로 발현된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파각 이후가 비로소 시가 조금씩 변하는 지점 같아요. 시인에겐 저마다 깨야 할 껍질이 겹겹이 겹쳐 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시는 잔인한 장르 같아요. 그래서 매력적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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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답변: . 마지막 질문이군요.(웃음)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좀 더 삶을 단순화하는 것입니다. 나의 내면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나 자신과의 만남을 많이 가지려고 한다는 의미이기도 한데요. 소로우의 월든을 보면 약 22개월간 그는 손수 지은 오두막에서 살아갑니다. 마치 자발적 외로움처럼요. 자기 내면에 집중할 때, 좀 더 성숙한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 제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독서와 산책입니다. 최근에 그동안 읽었던 책을 다시 읽거나. 쟁여두었던 책들도 읽곤 합니다. 그리고 장편 소설과 산문집도 많이 읽으려고 해요.

독서의 매력이란 게, 책을 읽다 보면 눈에 보이는 문장보다, 오히려 작가가 고민하면서 지운 문장을 만날 때가 있어요. 문장을 수정했을 작가의 노고가 보인다고나 할까요. 일상이나 글쓰기나 덜어내고 지울 때 오히려 더 아름다워지는 것 같아요. 독서하다 보면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작가가 힘들게 쓴 문장과 지운 문장들로 세상은 참으로 찬연하고 아름답게 다시 탄생한다는 것을요.

독서와 산책이 일견 시 창작과 멀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쩌면 시와 가장 지근 거리에 있는 창작의 원동력 같아요. 시와 산문을 쓸 때, 중요한 핵심 기능이 사유의 힘과 어휘력이 아닌가 싶어요. 좋은 글을 쓰는 이들을 보면 사유가 깊고 그 관찰과 탐험의 세계를 유려한 문장으로 잘 표현하곤 합니다. 그래서 시 창작 역시 언어로 나의 시적 세계관이나 시적 지향점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사유와 어휘력은 아주 중요한 창작의 요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독서나 산책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선물은 관찰력과 상상력입니다. 은유적으로 표현해 보면, 관찰이란 우리 주변의 것에서 아직 누군가 발견하지 못한 문장이나 사건을 포착하는 것 같아요.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이질적인 사물로 덧씌워 새로운 존재로 탄생시키는 것요. 움직이고 부대끼고 그리하여 무성해지는 사물들의 거대한 의지와 만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사물들이 지닌 미적 요소를 나름으로 관통하여 나만의 새로운 대상으로 탄생시키는 것은 곧 독서와 산책을 통해서 그 원동력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독서와 산책은 그래서 글을 쓸 때 아주 중요한 것이기에, 나의 삶에 하나의 습()으로 자리 잡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거예요.

특히, 시집을 출간하고 나면 시가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나의 시가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면야 더 바랄 게 없지만, 한발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외부의 상황이나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 나의 시 세계를 얼마나 밀고 나아갈 수 있느냐에 가치를 두면 글쓰기 그 자체만으로 행복해집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시는 계속 쓸 수 있으니까요. 지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올해는 모두가 느리게 걸어도, 성공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시간을 만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랜 시간 제 시집 이야기를 함께 해주신 이정은 시인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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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시in〉스페셜 집중 조명 _ 서안나 시인편1 - 미디어 시in

—애월이라는 질문들과 애월이라는 진혼곡 인터뷰 진행: 이정은 기자 서안나 시인의 시집 『애월』 (여우난골, 203)이 시인수첩 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서안나 시인은 1990년 《문학과 비평》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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