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열전
유종인
침방울이 날리는 건 침묵이 야윈 방증,
원숭이와 박쥐서껀 염병이 옮아온 건
귀보다 입을 많이 쓴
말의 쏠림 탓일까
석씨釋氏의 귓불을 그리듯 가만한 경청이면
엿보듯이 노리듯이 해코지도 돌려세워
그윽한 그 고요 앞에서
사경寫經하듯 소슬한 날
개들의 입질에는 입마개를 채워주듯
그간의 허구한 말로 버력 하날 다독였나
입에도 차꼬를 채워
제 숨소리 들으란듯
가끔은 인파를 멀리 홀로 든 대숲에서
파하, 하고 더운 한숨 단시短詩처럼 토할 때면
귓등에 걸린 입마개
나비처럼 팔랑이네
― 『용오름』, 황금알,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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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방울이 튀는 까닭은 말을 자제해야 하는데 입이 가볍고 말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입을 통해 음식을 먹고, 입을 통해 말을 한다. “원숭이와 박쥐서껀 염병이 옮아온 건” 그만큼 귀보다 입을 많이 썼다는 방증이 아닐까. 석가모니의 귓불이 아래로 처져 늘어진 것은, 석가모니의 귀가 커서 경청傾聽을 잘하며 관대하다는 뜻이다. 입은 되도록 닫고 귀로 잘 듣는다면 누구에게 해코지를 당하거나 원망을 살 일은 없을 것이다. 버력은 하늘이나 신령이 사람의 죄악을 징계하기 위해 내린다는 벌을 말한다. 신이나 영험한 존재가 인간의 잘못에 대해 벌을 주는 행위다. 허구한 말, 즉 거짓말, 빈말, 진실하지 않은 말을 하면 신에게 벌을 받는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일까.
“입에도 차꼬를 채워/ 제 숨소리 들”어야 한다. 수갑이나 사람을 옥죄는 도구인 차꼬는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 두는 용도로 쓰인다. 말을 줄이고, 자신이 내뱉는 말을 스스로 듣고 성찰하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이 시는 좋지 않은 소문은 입을 통해 금세 번지고 전염병 역시 입을 통해 퍼진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되도록 입을 다물고 조용히 경청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누군가 자신을 해치거나 염병에 걸릴 일도 없다는 뜻이다.
마스크는 소문도 막아 주고 감염도 막아 주어서 여러 가지로 유용하긴 하지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못해 적잖이 답답한 측면도 있다. 그래서 “가끔은 인파를 멀리 홀로 든 대숲에서/ 파하, 하고 더운 한숨 단시短詩처럼” 토한다. 자신만 알고 있는 진실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말을 쉽게 내뱉으면 불편한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고, 염병에도 걸릴 수 있다. 그래서 조용히 대숲에 들어가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쏟아내고, 마음의 울결鬱結을 비워내고 싶은 것이다. (이송희)
이송희
2003년 《조선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했으며 『열린시학』등에 평론을 쓰며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환절기의 판화』,『아포리아 숲』,『이름의 고고학』,『이태리 면사무소』,『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대명사들』 평론집 및 연구서 『아달린의 방』,『눈물로 읽는 사서함』,『길 위의 문장』,『경계의 시학』,『거울과 응시』,『현대시와 인지시학』,『유목의 서사』 등이 있다. 고산문학대상,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전남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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