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설계도
조규하
마음을 얻으려면 낭비가 미덕이다
돈이고 시간이고
기꺼이 퍼내는 것
따지던 잣대를 던지고 무작정 베푸는 것
— 조규하, 『구름 오케스트라』, 책만드는집,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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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는 게 ‘글’이라는 게 쓰는 사람과 영판 별개라고만 볼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물론 문학 작품에서 화자가 글쓴이와 동일인인 경우가 많다고는 볼 없지만 이 시는 특히 ‘조규하’라는 시인을 보여주는 면면이 보인다. 세상에는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가장 쉽고,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돈 없는 사람에게는 이치에 맞지 않는 표현이겠지만 자본주의사회 최고 교환수단인 돈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데는 의구심을 가질만 하다.
이 시의 화자는 먼저 “마음을 얻으려면”이라는 가정으로 시작하고 있다. 수많은 답을 가지고 있는 질문 같은 가정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화자는 단호하게 “낭비가 미덕이다”라고 은유적이면서도 역설적인 표현을 구사하고 있다. 낭비가 어떻게 미덕이 될 수 있는가.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 할 때는 다르다. “돈이고 시간이고” 헤프다 할만큼 아끼지 않는 지극한 것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런 것들에는 손익을 따지는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되며 “무작정” 퍼내는 목적 없는 선의가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기본 설계도”라는 제목처럼 친구를 또는 사람을 곁에 두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 중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돈과 시간을 ‘무작정’ 내놓을 수 있는 내 마음의 크기부터 넓혀 놓는 게 우선임을 화자는 강조하고 있다.
혼밥, 혼술, 1인 가정이 대세인 현대사회에서 어려운 과제인 건 확실하다.
표문순
2014년 《시조시학》 신인상 등단, 시집 『공복의 구성』,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열린시학상, 나혜석문학상, 정음시조문학상 등 수상, 한양대 대학원 박사 과정 졸업(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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