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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스스로에게 정직한 이의 아름답고 선연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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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4. 5. 3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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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 시집 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걷는사람시인선으로 출간

 

 

이정은 기자

 

눈물을 한 방울 한 방울 모아/ 마음속 약병에 담아 두었다

 

제주에서 태어나 2019내일을 여는 작가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문경수 시인의 첫 시집 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가 걷는사람 시인선 108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소방관으로 일하며 시를 쓰는 문경수 시인은 스스로를 정직하게 대면하는 자 특유의 회의가 이토록 선연한”(박소란, 추천사) 57편의 시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생을 건드리고 지나가는 것들은 때로 짙은 상흔을 남긴다. 고된 삶을 치열하게 겪어내며 울어도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될 때”(DNR), 실은 그것을 알면서도 울면서 살려 달라고 바짓가랑이를”(단 하나의 의자) 붙잡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을 때,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고유한 비애를 안고 살아가는 고립되어 버린 이들”(여삼추(如三秋))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그저 곧은길을 걸어왔다”(그림으로 가는 사람)는 믿음에 배반당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더는 나아질 게 없는 절망위로 이보다 좋을 수 없는 기회”(단 하나의 의자)를 겹쳐 읽으며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다만, 삶을 그늘지게 만드는 비극을 대면한 문경수의 인물들은 그렇다면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남문사거리)를 자문하고, “나는 진정 나 자신과 싸워 본 일이 없음을”(화마(火魔)) 각성한다. 간혹 생과 함께 죽음을 도모하는 마음을 품을지언정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간으로 실존할 수 있는 궤도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의 인물들에게는 마땅히 맞서야 할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결기가 배어 있다. 눈을 부릅뜨고 불편한 진실을 응시하려는 용기와 삶을 책임지기 위해 안간힘쓰는 마음까지도. 서럽고 분하며 때로는 헛헛한 삶의 치부로 내달리면서도 기꺼이 엎어질 줄”(박소란, 추천사) 아는 이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질긴 각오가 이 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기에, 시인은 화염 앞에 다가서면서 마주한절망 너머로부터 따뜻하다/환하고 밝은 게/때론 아름답기도 하구나”(화마(火魔))라는 가혹하고도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산들바람만 불어도 공병처럼 울보가”(탑동) 될지라도 이 어중간한 마음으로는/전속력으로 달려야 했다”(울면서 달리기)며 처절한 진창 같은 현실의 면면에 산재한 아름다움을 선명하게 길어 올린다.

 

우리는 울지 않기 위해 달려야 한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달린다는 것 자체가 우는 것이며, 오직 울면서 달리는 것만이 삶을 삶으로 끌어안으면서 동시에 시를 바라고 갈구하며 자신을 던지는 몸짓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된다. 원점으로 되돌아갈 운명을 직감하면서도, 그러나 감히 원점의 원점을 향해 자기를 던지는 것. 죽어 가는 새를 보듬고 시를 마음에 각인하는 일 또한 이 같은 역설을 요구하는 일과 다름없음을 시인은 이야기한다. 쓰고자 하는 마음은 스스로에게조차 위축되고 의심당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결국 우리를 환하게 날아오르게 한다는 걸 시인은 직관한다. “세상을 바꿔 본 적이 없지만 기어코 죽지를 않”(남문사거리)언젠가 아름다운 새가 될”(모라토리엄), 모두를 비추는 뜨거운 빛의 일렁임”(올레길)이 우리 안에 있음을(최진석 평론가의 말 인용) 암시한다.

 

좋은 시는 저마다 날카로운 어떤 것을 쥐고 있다라는 믿음을 가진 박소란 시인의 말처럼, 타자를 쉽게 연민하지 않기 위해 단정하게 벼려진 마음이 이 세계에 녹아 있다. 이 시집은 타자의 고통을 단정 짓지 않는 방식으로, 다른 누구도 아닌 틀림없는 내가 되는 오롯한 경험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세화

 

문경수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를 헤쳐 붉은 새가 된 사람을

온몸으로 감싸며

 

일터에서 다치지 말자 죽지말자 살아야지

시시로 안부를 묻는 우리는

 

사람만 생각하고 사람에 우네

 

울어도 울어도 눈물은

바다가 되지 않네 마음의 불을 끌 수 없네

 

새가 날아오르도록

불이 타오르도록 놔둘 수밖에는 없네

 

― 『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 걷는사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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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

 

문경수

 

지난겨울을 떠올리던 여름

달리던 버스가 급정거했다. 총성이 뒤미처 울렸다.

 

깨진 유리에 묻은 성에를 닦고 동상 걸린 손을 바다

에 담갔다

 

눈바람에 흩날리는 네가 칼에 찔린 채 웃고 있었다.

 

그대로 두고 싶었는데

종점이었다.

― 『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 걷는사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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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

 

문경수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는 없고

마주하게 되는 영 엉뚱한 사람들

울고 웃고 때론 고개 숙이고

또 부끄러워지고

 

경수야, 이만큼은 해야 사람들이 알아봐

 

이름 석 자를 내걸고 산다는 건

 

한뉘 거리에 나뒹굴며 세상이 알아줄 때까지

치욕을 짓씹는 유치한 짓은 아닐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려도 수년째

광장에 주저앉아 생존권을 요구하는 보통 사람들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저치라며 욕 들어도

살아내기 위해

이름 같은 건 버린 이들을 모른 척 지나치면

양쪽으로 늘어진 흥성이는 먹자골목 간판들

얼굴을 내건 주방장의 웃는 눈과 마주친다

 

, 문경수! 쪽팔린 줄 알아, 새끼야, 좀 제발

 

사람들이 제 이름을 소리 내 부르지 않는 까닭

알면서도

뭐라도 된 듯

 

나 아냐고

나 들어 본 적 없냐고

 

같은 이름의 누군가를 불러 본다

 

버려선 안 될 것을 버려 가면서까지

그게 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

― 『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 걷는사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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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기자 “눈물을 한 방울 한 방울 모아/ 마음속 약병에 담아 두었다” 제주에서 태어나 2019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문경수 시인의 첫 시집 『틀림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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