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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상처 위에 돋아나는 ‘너와 나’라는 감각, 부스러지고 깨어진 세계를 메우는 회복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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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4. 10. 2.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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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우리는 이어져 있다고 믿어문학동네시인선으로 출간

 

 

하린 기자

 

32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손미 시인이 세 번째 시집우리는 이어져 있다고 믿어를 문학동네시인선으로 발간했다. 끝없는 고통과 폭력의 구조 위에 섬세한 회복의 언어를 직조해 오던 손미 시인은 제32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첫 시집 양파 공동체(민음사, 2013)와 두 번째 시집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민음사, 2019)를 통해 고통을 받아 적는 사람”(시인 이영주)으로서 살아 있어서 아프”(시인 김행숙)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거나, “머나먼 은유를 불러와 사물의 공간을 드넓게 만”(시인 김혜순)드는 시적 면모를 보여왔다.

 

그런 손미 시인이 이번 시집에선 녹록지 않은 현실 세계를 끌어안고 타인과의 끝없는 연대 혹은 유대를 도모해 보려는 노력과 의지를 선보인다. 그 연결은 비록 매끈한 접합이 아니라 쓰라리고 불편한 흉터를 남기는 봉합에 가까운데, 갖가지 의 만남이 축조해 낸 관계적 구조물로써 우리라는 테두리를 실감 나게 하는 방식을 취한다.

 

1마주보면서 멀어진다에는 주로 의 안부를 묻고 확인하려는 의 시도가 담겨 있고, 2별처럼 터진 몸들에게는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폭력의 양상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3잉크는 번지고 커지고 거대해져에서는 생의 과정에서 얻게 된 푸른 멍위에 치열하게 눌러쓴 듯한 시편들을 선보인다.

 

상처가 우리를 훼손하면서 동시에 우리를 강하게 만들듯, 손미의 시는 의 이야기가 회복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이에 얽힌 의존, 상처와 훼손의 역사를 응시하고 기록하면서, ‘가 언제나 이면서 로서 존립해왔음을 일깨워준다.(김보경, 해설에서)

 

손미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나는 세상 끝, 벼랑으로 가/ 팔을 뻗었다라고 말하며 벼랑이 절망의 자리로만 작용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한 자리임을 암시했다. 그것처럼 손미 시인은 앞으로도 시적 상상과 모험을 벼랑으로까지 끌고가 그 벼랑으로부터 새로운 시적 지향점을 찾을 것이다. 그러한 손미 시인의 시적 행보는 출판사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관계적 맥락과 삶과 죽음의 맥락 속에서 미학적 이어짐으로 나타날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몽돌 해수욕장

 

손미

 

네가 돌이 됐다고 해서 찾아왔다

 

나는 아무 돌이나 붙들고

안아봤다

 

거기 있는 돌을 모두 밟았다

돌을 아프게 해 보았다

 

돌들에게 소리지르고

돌 위에 글씨를 써 보았다

 

옷을 벗고

누워 보았다

돌에게 내가 전염됐다

 

이쪽저쪽으로 굴러 보았다

 

돌 돌 돌 돌 돌 돌 돌

사방으로 부서진

 

이토록 많은 충돌

이토록 많은 생각

 

절대 뒤를 보면 안 돼

다시 사람이 될 거야

 

움켜쥐면 말하는 돌

 

너는 누구인가

 

돌을 집어

네 위에 올려놓고

손을 모은다

―『우리는 이어져 있다고 믿어, 문학동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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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

 

꽃병에 금이 갔다

 

나는 물을 보고 있다

저것이 정말 물일까

저 위를 걸어볼까

물은 나에게 녹을까

물은 내가 되고 싶을까

물이 나에게 알을 낳고 가버릴까

 

틈새로 밀려오는 물은

날카로운 물

 

여기가 궁금할까

 

나의 생활을 보고 있는 물

조용히 스며오는 물

 

모여드는 물

나는 침대로 고이는 물

 

우린 같이 살면 안 될까

 

걸어오는 물에게

나는 팥을 한 주먹 뿌렸다

네가 진짜라면 내게 이럴 수는 없다

 

수돗가에서 물을 죽이던 애들은

, 어른이 됐을까

물이 제 집으로 데려가지 않았을까.

 

너는 죽으면 물에 묻어달라고 말했는데

 

물은 불타고 있다

 

나는 물을 보고 있다

병 속에서

물도 나를 본다

 

많은 발자국이 녹아 있어

물은 점점 어두워지고

 

거기서 너는 따라 나온다

틈새로 나오는 물은

우는 것처럼

목소리도 없이

떨어진다

 

내가 미워해서

꽃병에 금이 갔다

 

방울방울

내게 와 차 오른다

―『우리는 이어져 있다고 믿어, 문학동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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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

 

작고 작아져 더 작아짐

너의 몸속에 점처럼 내가 떠다닌다고

아직은 점 만큼 내가 남아있다고

 

영영 발견되지 않는 병균처럼

너를 아프게 할 것이다

 

마침표처럼 조용할 것이다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

올라가는 영혼과 내려가는 영혼 사이

 

점과 점 사이에

내가 있다

 

주사실에서 점에 접종했다.

몸속에 비가 내린다

 

의사는 나의 가랑이 사이에 카메라를 집어넣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초음파로 찍힌 우주가 거기 있었다. 아직 색을 입히기 전, 회색 우주 흐리고 진한 점들의 집합

내가 읽을 수 없는 나의 점

 

이 점과 그 점은 어떻게 다른가요

여긴 죽었다는 건가요 살았다는 건가요

몸 속에서 점이 자라면 죽을까요

 

파티션 너머

하나 둘 하나 둘

점 같은 머리들

 

나의 작은 화분을 왼쪽과 오른쪽에 두고 사이에 앉아 생각한다 내가 잊은 게 뭐였지? 점 보다 밝고, 점 보다 큰 거 점 보다 점 같은 거 소용돌이치고 빨려들게 하는 거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거 공중에서 보면 잠깐 만났다가 흩어지는 거 몸속에 박혀 있는 거

 

작고 작고 작아져 지금 여기

떠다니는 거

 

몸속에 남은 점점점점

그 점들을 이으면

처음 보는 도형

 

영영 발견되지 않는 거

아프고 아픈 모양

―『우리는 이어져 있다고 믿어, 문학동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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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상처 위에 돋아나는 ‘너와 나’라는 감각, 부스러지고 깨어진 세계를 메우는 회복의 언

하린 기자 제32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손미 시인이 세 번째 시집『우리는 이어져 있다고 믿어』를 문학동네시인선으로 발간했다. 끝없는 고통과 폭력의 구조 위에 섬세한 회복의 언어를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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