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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적 상상력과 촉각적 감각으로 발현된 세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4. 10. 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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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파란시선으로 발간

 

 

하린 기자

 

2014열린시학을 동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정우림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파란시선으로 발간했다. 그는 인습과 언어의 맥락이 끊긴 태초의 낯선 세계를 첫 시집 살구가 내게 왔다와 두 번째 시집 사과 한 알의 아이에 보여주었는데, 세 번째 시집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에서는 유목적 상상력과 촉각적 감각으로 발현된 세계를 선보인다.

 

유목이란 우리가 흔히 이해하고 있는 대로 금기와 경계를 넘는 힘의 분출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유목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상상력은 현상과 관념, 세계와 비세계, 이곳과 저곳 등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의미한다.

 

오늘날 일상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인간들이 만들어낸 온갖 경계들은 현대인들에게 폭력과 억압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일종의 포식성으로 작용해 현실 세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낳는 역할을 한다. 온갖 금기의 틀을 제공하는 자리로써 경계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계를 넘어 무한대의 새로움을 지향하는 창조적 가능성으로써 유목을 정우림은 주목했다. 이는 오래된 미래처럼 과거의 시간 속 경험에 대한 확신으로 인해 한층 매력적으로 진화된 정우림만의 시적 몸부림에 해당한다.

 

그러한 특성을 남승원 평론가는 해설에서 주로 분석했는데, 정우림의 시 세계가 갖는 또 하나의 특징으로 소름에 대한 촉각적 감각을 언급했다. 소재나 모티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펼칠 때 시적 상상력과 더불어 촉각적 감각을 동원하는 것을 특이점으로 분석한 것이다.

 

정우림의 시는 시간이 갈수록 깊이와 미학성을 진일보된 상태로 만들어내고 있다. 현실의 모습이 어긋난 단면처럼 보이더라고 시라는 장르를 통해 자신만의 목소리와 의지를 통해 그런 현실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키고 껴안으려고 한다. 일독을 통해 정우림의 시적 행보가 갖는 의미를 확인해 보길 바란다.

 

 

 

<시집 속 시 맛보기>

 

펜로즈 삼각형

 

정우림

 

표정이 자주 흔들리는 문을 열고 들어간다

 

바늘에 걸린 물방울이 튀어 오르고

 

찌를 던지고 기다리는 것은 오히려 떨림

 

물의 심장이 되어 출렁이는 구름

 

수면의 셔터가 번쩍,

 

그늘이 없는 감정의 마디가 휘청인다

 

물의 각이 어긋날 때 물고기와

 

잠시,

 

만났다

 

헤어진다

 

수면이 찰랑

 

메아리 번져 간다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 파란,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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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

 

정우림

 

할아버지가 살고 계시다는 먼 산을 찾아갔습니다

새의 그림자가 시간을 돌립니다

검은 돌에 새겨진 불꽃의 글자들

 

구름이 태어나는 벼랑 같아요

한 번도 뵌 적 없는 할아버지 만나면

주름 깊은 이마를 더듬어 볼 수 있을까요

걷다가 도착한 곳이 여기, 비탈엔 검버섯이 많고

나무들은 등이 굽었어요

 

할아버지 생각은 한 번도 써 본 적 없네요

불에서 태어나신 할아버지

그 먼 이름에 유황 냄새가 배어 있는 아버지의 아버지

돌 속에서 살다가 돌 속에서 돌아가신 돌의 조상님

 

벼랑의 돌주머니에 제비가 살고 있네요

할아버지 품에서 알이 되고

날개를 달고

검은 눈을 가진 새

주술에 걸린 밤과 낮의 수염 자락에 매달린 집

돌기둥 육각형 안에는

포도주처럼 발효된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할아버지의 불은 차갑게 식어 돌이 되고

지금도 돌덩이 등에 지고 산을 오르시나요

 

꿈이 쏟아져 내리는 밤마다

말랑말랑한 과일을 찾아 맛봅니다

돌도서관에 사시는 할아버지,

살구나무 피리를 불어 드릴 테니

 

진흙과 석양의 음악을 조금 들려주시면 안 될까요

불의 씨앗을 저에게 주시면 안 될까요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 파란,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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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들려주는 시

 

정우림

 

초원에서는 구름이 말을 한다지 그 말귀를 잘 알아들은 말과 양 떼가 그 노래를 따라 부른다지 야크는 천천히 걸으면서 읊조린다지 눈 속에서 꽃대를 밀어낸 에델바이스가 여름의 눈썹으로 피어난다지 그렇게 천천히 푸른 풀밭을 산책하며 건너간다지 짧은 여름이 온다지 구름이 말을 건네면 풀을 뜯는다지 향기 나는 꽃은 먹지 않는다지 오물거리는 입가에 향기가 묻어난다지 구름은 어린아이 발자국을 따라간다지 바람의 손을 잡고 오래 기다린다지 밤에는 별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그러다가 울기도 한다지 구름의 틈 사이로 번개를 치고 비를 쏟아 낸다지 아주 멀리서 다가온다지 구름은 초원을 어루만진다지 때론 빠르게 때론 무섭게 두드리다가 초원이 깜짝 놀라 길을 내고 강을 만들게 한다지 그러다 구름은 초원을 다독인다지 자라나는 어린 짐승들을 보살핀다지 초원에서 함께 뛰어논다지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 파란,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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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적 상상력과 촉각적 감각으로 발현된 세계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 2014년 『열린시학』을 동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정우림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 파란시선으로 발간했다. 그는 인습과 언어의 맥락이 끊긴 태초의 낯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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