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기자
국가무형문화재 제49호 ‘송파산대놀이’와 서울지방문화재 제3호 ‘답교놀이’의 복원 및 제정과 계승에 평생을 바친 인간문화재49호인 한유성(韓有星, 1908~1994)선생은 금전도 명예도 따르지 않는 일에 스스로 뛰어들어서 전력을 기울여 한국의 소중한 민족문화를 지켜낸 분이다. 이러한 교훈을 우리에게 남긴 선생의 예술정신을 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해 ‘한유성문학상’ 제8회 수상자로 하린 시인이 선정되었다. 수상작은 「관찰자」 외 6편이다.
하린 시인은 금전도 명예도 따르지 않는 시 창작과 시론 탐구에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전력투구해 왔다. 시는 그의 존재 근거이고 삶의 근원적 동력이다. 그는 세상의 유형무형의 모든 것을 관찰하며 그 안에 담겨있는 삶의 정조를 찾아내 시를 써왔다. 이러한 업적을 귀중히 여겨 심사위원 이건청, 나태주, 이숭원(심사글). 전원은 그를 제8회 〈한유성문학상〉 수상자로 천거했다.
수상자 하린 시인은 수상 통보를 받은 즉시 울컥했고 먹먹해. “한 가지 분야에만 오랫동안 몰두하다 보니 드디어 내게도 이런 영광스러운 일이 생기는구나. 비주류의 ‘설움’이 한꺼번에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며, “저는 끊임없이 변두리와 변방의 정서를 노래해 왔다” 고 했다. 또한 변두리와 변방으로 자리한 개인의 정서는 주체성을 강렬하게 드러낼 때가 있고, 타자성을 강렬하게 드러낼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 모티브의 양상을 정밀하게 관찰하고 사유한 후 내밀하게 형상화하여 의미 있는 좋은 시가 되도록 창작해 왔습니다.”라며 심사를 맡아주신 이건청 시인. 나태주 시인. 이숭원 문학평론가 선생님과 어려운 환경에서 쉼 없이 《포엠포엠》을 발간하고 ‘한유성문학상’을 제정하고 운영하고 계신 한창옥 대표님, 세 번째 시집과 네 번째 시집 해설을 써주신 유성호 평론가님. 오민석 평론가님과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들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아내와 두 딸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고 했다.
상을 제정한 문학매거진 <포엠포엠>은 이번 겨울호에 104호를 발행했다. 한창옥 발행인은 “소리없이 앞서가야 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 외로운 길이다”라며, “어렵게 해나가는 일들이 문학과 문화예술의 가치와 품격을 지켜나가는데 도움이 돼야한다는 소신은 변함없다”고 전했다.
한편 제8회<한유성문학상>은 《포엠포엠》(대표 한창옥)과 송파구(서강석 구청장)후원으로 12월13일(금) 오후3시30분 송파구청 4층대강당에서 시상식을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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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공개>
관찰자
하린
유치원에서 딸아이가 울면서 돌아옵니다
울음은 착합니다
누군가 엄마가 없다고 놀릴 때마다
아빠마저 없는 것보단 낫잖아
그렇게 소리치라고 차마 말해주지 못했습니다
한쪽만 있다는 건
불편한 것일까요
부끄러운 것일까요
사라지기 좋은 계절이란 걸 압니다
채팅하던 사람이 자살을 한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조문을 가고 싶은데 사는 곳을 모릅니다
나에게 말을 거는 종교 전파자를 가끔 만납니다
귀찮아할 때까지 경청합니다
인상도 좋고 눈도 선한 당신들
최선을 다합니다만
나의 걱정거리가 지천이고
지척인 이유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택시를 타면 미터기를 걱정합니다
라디오는 왜 기사가 원하는 주파수만 갖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사는 도시는 오후 4시부터 정체라서
불안과 불신이 밀려옵니다
새가 나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날아갑니다
나무 위 빈 둥지가 불현듯 궁금합니다
알 대신 무엇이 웅크리고 있을까요
관찰과 관찰자의 차이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내 숨통을 조이는 역할을 타인이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한다는 생각
딸아이는 자라면서
관계라는 말도 습득해 갈 것입니다
대답이 뻔한 질문들을 다분히 나에게 던질 것입니다
당황하는 척을 하며
감당해야 할 세정(細情)*에 대해
거리낌없이 말해줄 수 있을까요
*세세히 맺힌 정, 자세한 사정이나 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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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
하린
겨울잠 자기에 가장 좋은 곳은 통조림 속이다
이렇게 완벽한 밀봉은 처음
모든 수식어가 바깥에 머문다
이곳에서 1인극은 생리적 현상
숨이 막혀도 웃을 수 있고 들키지 않게 울 수도 있다
그대로 멈춰서 극한의 목소리를 삼키면 그뿐
믿어야 할 것은 오직 잠이고
유통기한은 무한대니 적을 필요가 없다
용도는 단순하게, 목적은 비릿하게
미발견종으로 1000년쯤 살다가
우연히 발견되는 고고학적 취향을 즐기자
미라가 돼서 타인의 꿈속을 유령처럼 걸어 다니자
누구든 통조림 안이 궁금해서 서성이게 만들면 된다
한참 후에 발견될 유언 몇 줄을 바코드로 새긴 상태면 족하다
어떤 천사가 뚜껑을 딱하고 딸 때까지
처음 그대로 변질도 없이 참다가
젓가락을 가져가는 순간, 꿈틀대면 되는 거다
계절은 딱 하나다, 궁핍도 가난도 비굴도 없다
머릿속 황사가 걷히고 심장 속 늪지대가 마르고
내가 나에게 들려주던 거짓말도 삭제된다
누군가를 저주하던 버릇은 버린 지 오래다
그런데 왜 증오는 토막 난 후에도 싱싱해지고 있는 걸까, 점점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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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의 탄생
―가장자리
하린
헌책들이 쌓여 있는 가게
이것을 세상의 모든 가장자리라고 해두자
무너질 것처럼 쌓여 있으니
가장자리가 가장자리에게 보내는 위안이라고 해두자
결과는 기록이 되고 기록은 전진한다
가장 가장자리다운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왜 그렇게 문장들은 치열했던 것일까, 후회한다
먼지를 뒤집어쓰는 것도
아파하는 것도 가장자리의 특권이지만
소멸보다는 자멸에 가깝다
기록은 불현듯 속도를 잊는다
겨울에 문을 닫고
여름에도 문을 닫는 중고 서점
주인은 지금 새 주인을 찾는 중이다
책을 살 사람이 아니라
책과 함께 늙어갈 사람이다
책방 임대 중이
책방 정리 중으로 바뀌고
다시 책 가져갈 사람 찾아요로 바뀌는 동안
가장자리는 니힐리스트가 된다
일 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쯧쯧 혀를 차며 지나갔지만
그 시절 마스크는 흔한 연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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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의 탄생
―눈사람
하린
어떻든 사람입니다
천사가 아닙니다
마당이거나 골목이거나 언덕이거나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랫목은 어디입니까
고드름은 왜 생깁니까
그것이 궁금하다면
당신은 백색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늘로부터 주관성을 부여받았습니다
눈 속의 눈이 생길 수 있고 깊어질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많은 감정이 없습니다만
특별한 비밀이 있습니다
적막과 대면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뼈와 살과 피와 심장과 마음이 하나라는 착각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잠든 사이에 길고양이를 찾아 나설 참입니다
나를 보고 놀라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물어볼 것입니다
벌벌 떨고 있는
배고픈 새끼 고양이를 만난다면 처음으로 울 것입니다
그만 녹아 흐를 것입니다
머리가 재빨리 심장에 달라붙어 기형이 되어 무너질 것입니다
전이일까요
자리바꿈일까요
끝까지 실패만 하는 생이란 없으니까
수평이 된다고 끝이 아닐 겁니다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누군가 그리운 겨울엔 기필코 사람입니다
제8회 〈한유성문학상〉 수상자 하린 시인, 수상작은 「관찰자」 외 6편 < 현장+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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