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농사
공화순
아부지, 감 농사를 망친 것 같습니다
지금쯤 나무 밑에 생선토막을 묻을까요
듬성한 어느 가지 끝에
불을 켜야 할까요
―공화순,『나무와 나무 사이에 모르는 새가 있다』, 상상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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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풍경 중 하나를 들라면 뒷마당 돌담에 곁을 둔 감나무를 들겠다. 노랗게 익은 감이 가지가 꺾이도록 휘어진 모습을 보면 “그 집 참 감 농사 잘 지었다”라며 보는 것만으로도 덩달아 마음 환해지는 게 감이다. 그것은 공중에 불을 켠 등(燈)처럼 곱게 매달려 시각적으로 꽤 자극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이 시에서 화자는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아부지’라는 호명이 격의 없는 부녀관계를 유추하게 하며, 보다 따뜻한 시골감성을 담고 있는 방언(아부지)을 씀으로써 이 시에 흐르는 다정한 분위기를 살려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생선토막’에 있다. 친환경주의를 잘 보여주는 이 시는 평소 자연을 가족처럼 대하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로 보인다. 감나무 밑에 넣어줬던 각종 음식물들이 맛있고 실한 감의 내력이 되었던 것인데, 아버지의 부재로 감을 보살피던 일들이 어렵게 되면서 감 농사를 망치게 된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먹음직한 생선토막이 나왔지만 그 쓰임의 적절한 때(지금 쯤)와 장소(어느 감나무 밑)를 알 수 없는 화자는 해답을 묻는 방식으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다. ‘감 농사를 망친 것 같습니다.’라는 문장 속에 담겨있는 화자의 정서가 그리움의 등불을 환하게 켠 듯 감나무 가지 끝에 걸려 있다.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지만 문장 속에서 아버지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을 발견할 수 있는 공화순 시인만의 화법이 절창으로 보여진다.
표문순
2014년 《시조시학》 신인상 등단, 시집 『공복의 구성』,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열린시학상, 나혜석문학상, 정음시조문학상 등 수상, 한양대 대학원 박사 과정 졸업(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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