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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24 _ 공화순의 「와이파이 유목민」

시조포커스

by 미디어시인 2024. 10. 2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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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이 유목민

 

공화순

 

드넓은 초원을 향해

소 떼를 모는 목동처럼

 

먹이가 있는 곳마다 모여드는 포노사피엔스 우리에게 안락한 소파 따윈 필요 없지 빠르게 휘두르는 와이파이 채찍들이 세상 끝까지 누빈다 생명줄 같은 멀티파이 혼자서 유랑하는 랜 망의 여행처럼

 

어디든 멈추면 끝장이지

아직도 갈 길은 머니까

 

공화순, 나무와 나무 사이에 모르는 새가 있다, 상상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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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정보에 노출되면서 정신적인 피로감이 커졌다. 누구나 손쉽게 방대한 양의 자료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데이터의 양적 팽창은 간혹 진실(진짜)과 거짓(가짜)을 가리는 능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진위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듯한 혼란과 불안을 마주하며 부단히 스크롤을 내린다. 신기루 같은 허상이 아니라 실제의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게 된다.

공화순 시인의 시 와이파이 유목민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 떼를 모는 목동이라는 원시적인 이미지와 와이파이 채찍이라는 현대적인 기술이 대비되면서 강렬한 인상을 안긴다. 이 시는 단순히 기술 발전에 대한 찬양이나 비판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유목적 삶과 그 이면에 숨겨진 인간 고독의 갈증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시적 주체는 현대인을 포노사피엔스라고 명명하며, 그들이 먹이가 있는 곳마다 모여드는존재임을 강조한다. 여기서 와이파이는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며, “멀티파이는 그들의 생명줄과 같다.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하는 대목이다.

현대사회에서 사이버 공간이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매김하면서 현대인들은 이미 사이버 매체에 길들여졌다. 와이파이를 통해 유목민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기를 원한다. 더 나은 신호를 찾아 끊임없이 몸을 이동시킨다. “안락한 소파와 같은 정착된 삶은 이제 그들에게 무의미하다. 속도 중심의 삶이 안락함의 상실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연결이 오히려 사람들을 소외시키기도 한다. 스마트폰 하나면 전 세계와 연결될 수 있지만 정작 마음을 나눌 진정한 관계 맺기는 어렵다. “랜 망의 여행은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을 잘 보여준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욕망하지만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들의 위기는 마음을 초조하게 한다. “멈추면 끝장인데 아직도 갈 길이 먼 디지털 시대의 인간은 하염없이 변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박에 싸여 있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하지만 기술을 활용하는 주체는 바로 우리 자신임을 기억해야 한다. 지식의 정글 속에서 우리는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처럼 움직이고 있다.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희미해진 나의 윤곽, 진정한 행복의 단서를 찾아야 한다. (김보람 시인)

 

 

 

 

김보람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모든 날의 이튿날, 괜히 그린 얼굴,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 연구서 현대시조와 리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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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24 _ 공화순의 「와이파이 유목민」 - 미디어 시in

와이파이 유목민 공화순 드넓은 초원을 향해소 떼를 모는 목동처럼 먹이가 있는 곳마다 모여드는 포노사피엔스 우리에게 안락한 소파 따윈 필요 없지 빠르게 휘두르는 와이파이 채찍들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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