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국 헛꽃이 푸르게 지듯
이토록
사랑이여
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답니다
간신히
꽃잎 한 장 남았을 늦은 날에
우리가,
한 뼘인 그곳엔 못 갈 듯
영 못 갈 듯
― 『이후의 세계』, 가히,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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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라는 명사가 ‘가르침을 주는 사람’에서 일반적인 존칭 명사로 바뀐 건 이미 오래다. 마찬가지로 사랑이라는 명사도 남녀 간 좋아하는 마음에서 고객 응대의 방식으로 바뀌면서 여기저기 사랑이 남발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어떤 존재를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측면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에 반박할 여지는 없지만 낯선 사람에게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땐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다.
사랑에도 종류가 많고 대상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지지만 이 시의 화자는 남녀 간 사랑에 관해 말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초장에서 “사랑이여/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답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종장에서는 “한 뼘인 그곳엔 못 갈 듯/ 영 못 갈 듯”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어법의 전형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반어법(Irony)은 주지하다시피 반대로 말하는 표현방식이다. 강한 부정은 긍정을 나타내는 것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한 뼘’ 밖에 안되지만 (한 길 사람 속이라는 말에서 나왔을 듯 싶다) 도달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하는 화자의 심경이 드러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제목에는 산수국이 등장하고 있다. 산수국의 특징을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산수국의 꽃은 헛꽃과 참꽃이 있는데 헛꽃은 참꽃보다 화려해서 산수국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헛꽃이 진짜 꽃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열매는 참꽃에서 맺히게 된다. 화자는 산수국처럼 사랑을 헛꽃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화려해서 유인당하고 있지만 진짜 꽃에는 이를 수 없는 사랑의 함정 또는 오묘함에 대해 토로하고 있다.
표문순
2014년 《시조시학》 신인상 등단, 시집 『공복의 구성』,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열린시학상, 나혜석문학상, 정음시조문학상 등 수상, 한양대 대학원 박사 과정 졸업(문학박사)
― 좋은 시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미디어 시in>
표문순 시인의 〈단시조 산책〉24 _ 이토록의 「산수국 헛꽃이 푸르게 지듯」 < 시조포커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표문순 시인의 〈단시조 산책〉24 _ 이토록의 「산수국 헛꽃이 푸르게 지듯」 - 미디어 시in
산수국 헛꽃이 푸르게 지듯 이토록 사랑이여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답니다 간신히꽃잎 한 장 남았을 늦은 날에 우리가, 한 뼘인 그곳엔 못 갈 듯영 못 갈 듯― 『이후의 세계』, 가히,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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