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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 시인의 〈時詩각각〉27 _ 이달균의 「펀드매니저」

시조포커스

by 미디어시인 2025. 1. 2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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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매니저

 

 

이달균

 

 

악어라 불리는 사내가 있었다

눈빛은 달빛에 벼린 칼날처럼 차가워

냉철한 포식의 순간을 숨죽이며 기다린다

 

주파수는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한다

모였다 흩어지는 개미들의 두런거림

이빨이 자라는 만큼 귀도 함께 자란다

 

모니터에 찾아온 악어새를 데불고

낮고 느린 음악에 생각을 태우며

고요한 늪의 시간을 묵상으로 이끈다

 

드디어 장이 선다 먼지가 밀려온다

지축을 흔드는 누 떼의 움직임

벼려온 칼을 던져라 과녁이 바로 여기다

 

 

― 『달아공원에 달아는 없고, 가히,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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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가 먹이를 기다리다 잡아채는 것 같은, 냉철한 포식자의 느낌을 펀드매니저라는 자본형 인간에 빗대어 표현한 시다. 자본주의가 낳은 생존경쟁의 매니저인, ‘악어라 불리는 사내는 자산운용사다. 그는 타인의 자본으로 돈을 불려주고 보수를 받아 돈을 버는 존재다. 누구보다도 돈 냄새를 잘 맡아야 한다. 그에게는 냉철한 분석력과 판단력이 필요하다. 자본을 불리기 위해서는 주식시장의 흐름을 수시로 모니터링하며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어떤 주식을 사고팔아야 할지 탐색해야 한다. 그는 악어처럼 예리하게 지켜보고 있다가 괜찮은 먹이라는 판단이 서면 지체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잽싸게 과녁을 향해 화살을 날린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드디어 장이서고, “먼지가 밀려오면, “지축을 흔드는 누 떼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과녁이 바로 여기임을 알아차린 사내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누 떼를 향해 벼려온 칼을 던져야 한다. 강을 건너는 누 떼를 습격해 물속으로 끌어들이는 악어의 모습이다. 강가에서 물을 마시거나 도강하는 중에 악어의 무차별적 공격을 받아 잡아 먹힐 위기에 처한 누 떼의 모습을 동물의 왕국에서나 보아 오지 않았던가. 시인은 인간의 동물적 생존본능을 통해 자본주의 시대의 비정한 인간상을 그려낸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그리고 승자독식의 동물 세계를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그대로 병치시켜 놓았다. 시인은 살아남기 위해서 생명의 소중함은 보지 않고 자신에게 유용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돈이나 권력에 혈안이 된 속물적인 자본주의 인간 군상을 보여주고 있다.

넓게 보면 한탕주의를 욕망하는 인간의 야만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일 수 있다. 극단적으로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시인은 이런 모습이 서글프고 애잔하다는 느낌을 깔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키고 보호해야 할 가치나 태도가 있는 법인데, 이런 요소들을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 경각심을 주기 위해 쓴 시가 아닐까. 자본의 논리에 포섭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잃어버린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한다. 재물과 건강은 함께 취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지나치게 재물을 욕망하면 건강한 삶을 잃고 사람을 잃는다. 지금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우선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송희)

 

 

 

 

이송희

2003조선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했으며 열린시학등에 평론을 쓰며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환절기의 판화,아포리아 숲,이름의 고고학,이태리 면사무소,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대명사들,내 말을 밀고 가면 너의 말이 따라오고평론집 및 연구서 아달린의 방,눈물로 읽는 사서함,길 위의 문장,경계의 시학,거울과 응시,현대시와 인지시학,유목의 서사등이 있다. 고산문학대상, 오늘의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전남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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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 시인의 〈時詩각각〉27 _ 이달균의 「펀드매니저」 - 미디어 시in

펀드매니저 이달균 악어라 불리는 사내가 있었다눈빛은 달빛에 벼린 칼날처럼 차가워냉철한 포식의 순간을 숨죽이며 기다린다 주파수는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한다모였다 흩어지는 개미들의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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