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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문순 시인의 〈단시조 산책〉 27 _ 강경화의 「국화 분재」

시조포커스

by 미디어시인 2025. 2. 1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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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분재

 

강경화

 

가고픈 길 막힐 땐 포기도 방법이다

 

몸 잘리고 뒤틀리면 구불구불 살아지더라

 

꿈처럼 노란꽃 피고지면 또 그렁그렁 살만하더라

 

강경화, 자주, 걸었다(광주문학아카데미 4시집), 다인숲,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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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목의 줄기나 가지를 보기 좋게 가꾸어서 감상하는 게 분재이다. 식물의 자연적인 생장을 인위적으로 억제해서 작고 예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분재의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뿌리나 가지를 철사로 꼬고, 비틀기도 하며 모양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아름다움으로 가기까지는 사람의 오랜 시간과 손길이 필요하다. 축소시킨 자연을 사람 가까이에 가져다 놓은 예술이 분재라고 하는데 분재의 탄생 과정을 지켜본 일반인들은 아름답다기보다 고통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자유라는 건 인간에게 주어진 최상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유를 침해당하게 되면 저항하게 된다. 인생이 그렇다. 무한히 꿈을 꾸며 세상으로 나아가지만 늘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특히 요즘은 하루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변수들이 많아 생각처럼 자유를 자유롭게 누리지 못한다. 화자는 말한다. “가고픈 길로 나아가려 하지만 잘리고 뒤틀림을 당하게 될 땐 포기도 방법이 된다고. 이것은 포기라기 보다는 한 발 물러섬이 될 것이다. 분재처럼 철사의 위력에 구불구불얽혀 살게 되더라도 노란 꽃 피고지듯 살다 보면 그도 살만하니 너무 현실에 대해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말라고 말한다.

분재의 특성은 기형적 선의 아름다움에 있다. 나무의 기형은 돌밭, 바위 틈, 절벽, 바람 같은 척박한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인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분재의 고통도 이와 유사하다. “그렁그렁처럼 눈물나게 살게 되겠지만 사실 살만하다기 보다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화자는 살아지더라”, “살만하더라처럼 체념적인 표현을 쓰고 있지만 인내에 대한 희망적 메시지를 조근조근 담아내고 있다.

 

 

표문순

2014시조시학신인상 등단, 시집 공복의 구성,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열린시학상, 나혜석문학상, 정음시조문학상 등 수상, 한양대 대학원 박사 과정 졸업(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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