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곽종희
아무리 이 세상이 콘크리트 벽이래도
꽃 피워 낼 틈새는 분명히 있을거야
보란 듯
보도블록에
가부좌 튼 노숙자
―『오늘의시조』 2025 제19호, 오늘의시조시인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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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에 피어난 꽃에 관한 시는 많은 사람들이 써왔다. 관심을 갖지 않으면 볼 수 없는 현상인데 섬세한 시인들의 눈에는 잘 포착되는 것 같다. 보도에는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다. 제 몸보다 큰 먹이를 낑낑거리며 끌고 가는 개미를 지나치는 경우도 있고, 방향을 잃은 지렁이들의 출현, 그리고 이름 모를 작은 풀들과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씨앗의 발아도 어느 틈에선가 일어나 버젓할 때가 있다. 행인들의 발은 조심성이 없다. 가까이보다는 먼 곳을 보며 걸을 땐 자기에 집중한다. 단단한 콘크리트 속에서 얼굴을 내미는 작은 풀꽃의 의지 같은 것을 염두에 두는 걸음은 드물다.
화자가 오늘 길에서 발견한 것은 ‘민들레’이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에서 노랗게 꽃피운 민들레. ‘세상=콘크리트 벽’이라는 은유로 시작하는 이 글은 아무리 단단한 벽이라도 “꽃 피워 낼 틈새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득 담아내고 있다.
민들레는 뿌리에서 잎이 뭉쳐 나와 옆으로 퍼져 바닥에 엎드려 사는 식물 중 하나이다. 잎이 다 죽고 뿌리만 갖고 있다가도 봄이 되면 누구보다 빨리 나타나는 식물이며 밟아도 잘 죽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민중을 대변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일찍이 김수영 시인이 ‘풀’을 연약하지만 강한 생명력을 가진 민중으로 그렸던 것처럼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존재가 민들레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닐까 한다. 어딘가에 ‘틈’이 있다는 그래서 꽃피울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우린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표문순
2014년 《시조시학》 신인상 등단, 시집 『공복의 구성』,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열린시학상, 나혜석문학상, 정음시조문학상 등 수상, 한양대 대학원 박사 과정 졸업(문학박사)
― 좋은 시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미디어 시in>
표문순 시인의 〈단시조 산책〉 28 _ 곽종희의 「민들레」 < 시조포커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표문순 시인의 〈단시조 산책〉 28 _ 곽종희의 「민들레」 - 미디어 시in
민들레 곽종희 아무리 이 세상이 콘크리트 벽이래도 꽃 피워 낼 틈새는 분명히 있을거야 보란 듯 보도블록에 가부좌 튼 노숙자―『오늘의시조』 2025 제19호, 오늘의시조시인회의. -----------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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