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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영 시인의 시를 위한 편식1 _ 나금숙의 「사과나무 아래서 그대는 나를 깨웠네」

포엠포커스

by 미디어시인 2025. 5. 2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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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 아래서 그대는 나를 깨웠네

 

나금숙

 

사과나무 아래서 그대는 나를 깨웠네

나무 아래 사과들은 해거름에 찾아오는

젖먹이 길짐승들의 것

꿈에서 깨어도 사과나무는 여전히 사과

베이비 박스 속의 어린 맨발은

분홍 발뒤꿈치를 덮어 줘야 해

쪼그맣게 접은 메모지에

네 이름은 사과

그러나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지을 때까지 지어 보려는

파밀리아 성당처럼

사과들은 공간을 만들고

구석을 만들고

지하방을 만들고

삼대의 삼대 아비가 수결한 유언장 말미의 붓자국처럼

희미한 아우라를 만들고,

산고를 겪는 어미의 거친 숨결이

사과나무 가지 사이로

새로운 사과를 푸르게 푸르게 익혀 가는 정오쯤

우리는 비대면을 위해 뒤집어쓴 모포를 널찍이 펼쳐서

하늘을 받는다 하늘의 심장을 받는다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사과나무 아래서 그대는 나를 깨웠네, 천년의시작,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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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금숙 시인이 감각한 사과나무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항상 사과나무 아래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우리는 그 비밀을 생각한다. 우선 사과에 대한 편식으로 흔히 성경에서 비유되는 금단의 열매를 들 수 있다. 먹지 말라고 하나님이 말했으나 기어이 먹고만 희대의 사건으로 인간은 거짓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끊임없이 금단의 무엇을 넘나든다. 유혹의 곁을 지나간다. 우리는 떨리는 손으로 열매를 따고 이리저리 살피며 얼른 베어물지 못한다. 그러나 끝내 베어 물고 만다. 그러므로 사과는 지독한 편식이다.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먹어버린 편식이다. 우리는 자주 편식한다. 먹지 말라는 것도 많고 하지 말라는 것도 많다. 그러나 편식은 너무나 큰 유혹, 그 손길을 만류하기는 힘들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하물며 달달하고 시원하지 않은가 말이다.

 

두 번째로 사과는 용서에 대한 대응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금숙의 시에서는 이것은 사과가 아니라고 거듭 항변한다. 사과가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푸른 사과가 붉게 익어가고 있지만 그전에 벌써 사과는 떨어지고야 만다. 그러므로 사과는 불완전하다. 사과는 하늘의 심장이지만 한참 모자란다.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니라는 항변은 요즘 세태를 닮았다. 누구나 화는 잘 내지만 사과는 제대로 할 줄 모른다. 사과를 해도 건성으로 사과한다.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에게 눈물 흘리며 사과해야 한다. 그런 사과를 할 줄 모르는 시대, 이 시대에 살다 보니 그것은 사과가 아니라고 시인은 거듭 말하고 있다.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과는 베이비 박스에 적혀 있는 어린아이의 이름이다. 그 이름은 완성될 때까지 지어지지 못한 파밀리아 성당과 같다. 크고 웅장하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한 작은 분홍맨발이다. 그는 아직 지어지지 못한 채 모포에 싸여 있다. 그러므로 그 아이의 이름이 작은 종이쪽지에 씌여졌다 해도 그것은 사과가 아닌 것이다.

우리 사회의 단단한 편식, 어두운 면, 그러면서도 따뜻한 풍경을 시인은 섬세한 손길로 그려내고 있다.

 

 

 

김신영

1994년 계간 동서문학신인상에 당선하였으며, 시인, 평론가,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중앙대 국문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홍익대 대전대 호서대 등 외래교수를 역임하였다. 시집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문학과지성사, 1996), 불혹의 묵시록(천년의 시작, 2007), 맨발의 99만보(시산맥, 2017), 마술상점(여우난골, 2021)과 평론집 현대시 그 오래된 미래(한국학술정보, 2007), 시 창작 이론서 아직도 시를 배우지 못하였느냐(행복에너지, 2020) 등을 발간했다. 2020년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 사업, 경기문화재단 2019 우수작가/ 2016 출간지원 작가 사업에 선정되었으며, 2023년 심산재단 시문학상과 기독여성신문 주관 2024년 여성지도자상을 수상했다.

현재, 이천문인협회 회장, 기독교문학가협회주간, 중앙대문인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으며, 이천문화재단, 돌봄센터 등에서 시 창작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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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영 시인의 시를 위한 편식1 _ 나금숙의 「사과나무 아래서 그대는 나를 깨웠네」 - 미디어 시

사과나무 아래서 그대는 나를 깨웠네 나금숙 사과나무 아래서 그대는 나를 깨웠네나무 아래 사과들은 해거름에 찾아오는 젖먹이 길짐승들의 것꿈에서 깨어도 사과나무는 여전히 사과베이비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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