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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잃지 않는 그늘의 현상학 또는 그늘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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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5. 8. 29.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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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백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그늘흔』 걷는사람시인선으로 출간

 

 

 


하린 기자

김성백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그늘흔』이 걷는사람 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그늘 속에서 유영하던 밤들”(「시인의 말」)을 지나 비로소 내보이는 이 시집은, 어둠과 침묵의 시간을 견디며 ‘그림자뿐인 생’을 살아온 존재들의 언어 없는 고통을 비로소 ‘시’로 호명하는 작품이다. 김대현 문학평론가의 해설이 말하듯, 이 시집은 “자본에 내재된 구조적 모순과 이에 꾸준히 저항해온 이른바 노동시들의 계보와 친연성을 가지”면서도, 그것을 “내부에서 교란하는 낯섦”으로 전혀 새로운 정서적 국면을 연다.

『그늘흔』은 제목 그대로, 그늘에 남은 흔적이자 흔적에 머무는 그늘의 시학을 펼쳐 보인다. 여기서 ‘그늘’은 단순히 빛이 닿지 않는 곳이 아니다. 그것은 제도와 권력의 시야로부터 배제된, 사회가 관리하지 않는 존재들의 자리이다. 말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말해지지 않도록 설계된 비가시의 장소. 시인은 그 침묵의 장소를 언어로 옮긴다. 단정하거나 유려하지 않은, 뾰족하고 무거운 문장으로, 오히려 그늘의 윤리를 지키는 말들로, 김성백은 말한다. “다친 글자들이 서로의 허리와 팔다리를 그러쥐고 안간힘으로 폐허를 전하려”(「사량 思量」). 그의 시는 말해지지 않은 존재들의 고통을 다시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던 그 침묵 자체를 끌어안는 언어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 시집에서 ‘그늘’과 ‘그림자’는 반복적으로 소환되는 이미지이다. “우리의 삶을 훼손하고 있는 자본의 지배와 그에 수반하는 비참한 노동의 현실”(김대현, 해설)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김성백의 시는 단순한 이분법에 갇히지 않는다. 그는 자본과 권력이 구축한 ‘말해지지 않는’ 존재의 조건, 곧 제도적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얼굴 없는 이들’을 시의 감각으로 복원한다. “목이 부러진 스패너”, “고장 난 작업일지”, “그려진 비상 버튼”(「살고 싶은 아이」)은 단지 장치의 고장이 아니라 구조의 고발이다. 그렇기에 시집의 여러 시편은 사회적 약자, 특히 노동 현장에서 사라져 간 이들의 존재를 담담하고 절제된 언어로 직시한다. 「보기 중에 없음」에서 시인은 말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보기 중에 없어요”(「보기 중에 없음」). 이 세계는 정답지를 감추고, 해설 없는 문제만을 내던진다. 그 물음 앞에서 김성백은 ‘대답 없는 말’이 아닌 ‘묻는 말’로서의 시를 선택한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시인의 태도는 “그늘 속에서 유영하던 밤들”(「시인의 말」)의 기록을 가능케 한다.

김성백의 『그늘흔』은 침묵을 잃지 않는 언어로, “흐릿한 기척을 부여잡고”(「시인의 말」) 끝내 “그 손을 누가 좀 잡아 줬으면 하”는 마음을 조용히, 그러나 끝내 포기하지 않고 건네는 시집이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한 순간들. 그런 순간에도 말이 남아야 한다면 그 말은 농도가 짙은, 비의를 은은하게 품은 시일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그늘흔

김성백

소포를 열자
여름이 들어 있었다 

마지막 계절에 들어선 아이는 더 두꺼워졌을까
녹아 버렸을까 

그림자 없는 소년과 그림자뿐인 소년이 서로를 발굴했다 
한 겹씩 벗겨낼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유물처럼 과거에 대해서만 말했다 
그해, 

두 입술은 더디게 지워졌고 
쌍니은을 닮아 갔다 
상처는 아무는 게 아니라 노을처럼 저무는 거라고

엎질러진 얼굴을 주워 담으며 우리는 
서로에게 앞자리를 양보하듯 무릎을 꿇고서      
얘들아, 더 투명해져야지 

거울 깊숙이 울음을 파묻는 놀이 
아이는 꼬리를 잘라 그늘을 살찌웠다
여름이라는 짐승, 그 서늘한 발작 
                              
여름에서 하나씩 버리면 
어른이 되지     

기다림이 어두울수록 끄트머리가 헐거워지는 
그늘의 실패 

그날, 
절반의 피조물 
더 진해진 여름이 멸망하고 있었다 
―『그늘흔』, 걷는사람,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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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숨        

김성백

장화가 떠올랐다 

그 안에 몸을 송그리고 오랫동안 숨을 참는다 
숨이란 안과 밖의 응어리를 녹이는 일 
 
벌을 주기 위해 고안된 물이라는 기계 앞에서     
  
손과 발을 잘라내도 손등과 발바닥이 가려운 
둥근 죄

물에 녹은 아이가 있다 
물의 의지일까 아이의 의지일까  

자그르르 울음 아래로 번지는 폐허의 진격
장화가 있던 자리엔 발자국이 촛불처럼 자랐다 
차마 태우지 못한 그을린 기억  

사진이 액자에 녹듯
이름이 화로에 녹듯 

다 식었다 

지금부터는 엄마의 방학  
물에 녹았던 아이는 다시 아이로 돌아갈 수 없다

조등이 꺼지자 
맥박이 뛰기 시작했다 

어둠의 보늬를 벗겨내는 빛의 징후   
이때, 누군가 장화에 올라탄다   

방향이 생겼다 

세상의 모든 물은 아이가 녹은 물이다  
―『그늘흔』, 걷는사람,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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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계    

김성백

어떤 기억은 영혼이 몸을 떠난 후에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몸 깊은 중심에 앉아 이승의 손익을 따져 본다
뼈와 살이 다음 일정에 떠밀려 허겁지겁 몸을 떠나도 
어떤 이별은 쇠말뚝처럼 자리를 지킨다  

업을 이어받은 소년은 아비의 몸을 조각조각 잘라 독수리 무리에 던져 주었다 원래 저들 것인 양   

망자의 몸이 투명해지자 초보 천장사天葬師는 마니차를 돌렸다 
하품이 나왔다 

토렴하듯 비린내 나는 경전 한 줄 공중에 나부꼈다
바람이 부조금 몇 푼 던져 주고 갔다   

식은 밥과 더 식은 삶이 서로의 온도를 맞춰 가고 
먹는 살과 먹히는 살이 서로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제일 오래된 소멸의 경우 

소년은 손과 얼굴을 씻고 산에서 내려갔다 

독수리 한 마리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멀리서 이승을 더듬거렸다  
―『그늘흔』, 걷는사람,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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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잃지 않는 그늘의 현상학 또는 그늘의 사회학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 김성백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그늘흔』이 걷는사람 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그늘 속에서 유영하던 밤들”(「시인의 말」)을 지나 비로소 내보이는 이 시집은, 어둠과 침묵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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