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린 기자
1996년 4월 문학과지성시인선 178번으로 발간했던 김신영의 첫 시집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을 더푸른시인선 006번으로 복간했다.
발간 당시 문학과 지성사는 김신영의 시집을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생존을 위해 지방질 육체를 좁은 전철 안으로 밀어넣어야만 하는 세계, 꽃이 피지 않는 황량한 세계, 데모와 헛된 구호로 어지러운 세계 속에서 침몰하지 않으려고 허우적거리며 요술할멈 없는 마술의 노래를 부른다. 그 온갖 잡탕 홍수 속에서 시인으로 하여금 노래하게 하고 팔을 내젓게 하는 힘은 시인이 바라보거나 시인을 조용히 바라보는 고독한 정신이다. 그 고독한 정신은 때로 섬과 같은 신이며, 초콜릿이며, 그리움이며, 문명화되지 않은 미개지이며, 신화이며, 애드벌룬처럼 가벼운 자유이다.”
소개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엔 그 당시 시인이 인식한 불모적 환경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그 의지의 추동력은 ‘고독한 정신’이다. 그런데 그 ‘고독한 정신’은 관념으로 머물러있지 않고 섬, 신, 초콜릿, 그리움, 미개지, 신화, 자유 등으로 변주되며 시의 깊이와 상상력을 더한다.
시인들에게 첫 시집이란 특별한 떨림과 패기 넘치는 치기를 드러내거나 가슴 속에 뭉쳐 있는 응어리들을 모두 토해내는 장이 되곤 하는데, 김신영의 경우엔 후자에 가깝다. ‘시인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시인은 “나는 제외된 세상”에서 무언가를 스스로 “선택하기도 전에 이미 타자를 위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고 고백하며, 피동적(혹은 피학적) 삶에 대한 직관적 자의식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주체적 인식은 주체적이지 못했던 자신을 시적으로 감지하면서, 혹은 감당하면서 발산되거나 수렴되는 형상을 갖는다.
지금도 “무의미한 존재의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엔 많다. “사회로부터 가치 없이 여겨지는 일을 해야” 하고, “가끔 들러리가 되”어야 하고, “반쪽이의 역할이거나, 무의미하게 평가받”는 사람들에게 시집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은 적잖은 위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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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종이의 가장자리
김신영
하느님 당신이 그리운 사람입니다
가슴이 꼬옥 닫힌 사람
구멍 숭숭 난 제 가슴에 아직도 찬 바람만 불어요
당신에게 속살이는 이 말이 들리시나요
하느님 당신이 저를 사랑하신다면
저를 안아주세요 하느님
당신 의 그늘 구석에 매몰되어
바람만 맞는 허기진 저를.
우리끼리만이라도 다른 이야기는
하지 말도록 해요
당신이 내 기도를 듣고 또 들어주신다면
그 시간 조금 오 분을 틈내어
내 가슴에 불을 심어주세요
홍수로 갈아엎은 세상
불을 일으킬 시간일지라도
하느님 당신이 정말로 나를 사랑하신다면
고운 손길로 나를 보듬어주세요
쉼 없이 혼자 걸어온 이 길의 끝
이제 찬 바람만 부는 벼랑에 서 있는 저를
하느님 정말로 꼬옥 안아주세요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더푸른출판사,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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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을 위하여
김신영
쓴 약을 먹었어요
오로지 초콜릿을 위하여 그렇게 했어요
아무도 내게 그저 초콜릿을 주진 않았어요
나는 초콜릿이 몸에 나쁘다는 것도 알아요
그러나 아시잖아요
초콜릿에는 마약처럼
나를 당기는 무언가 있다는 것을
나는 초콜릿이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것 같아요
그 열량 많은 달콤한 맛을 이해하시죠
나는 초콜릿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어요
초콜릿을 내게 주신다면 나는
어떤 일이든지 쓰다고 말하지 않겠어요
아파서 약을 먹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서 초콜릿을
얻을 수 있었지만
또 가끔은 일부러 아팠어요
초콜릿을 얻기 위하여 나는 울기도 했어요
이 초콜릿에 대한 비밀을 그대는 알고 있나요
그대 역시 하나의 초콜릿처럼
내게 달콤한 눈물이라는 것을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더푸른출판사,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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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을 기다리며
김신영
누가 나의 집 문을 두드리시나요
나가고 싶지 않아요
문 하나도 열고 싶지 않아요
쉿!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아직 나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말하여서 천지로 돌아다니기보다
나는 집중하고 싶어
나를 이끌어내실 생각은 하지 마세요
아직 나는 준비가 덜 됐어요
아직아직 나는 내 방에 홀로 있고 싶어
미완의 얼굴 보이고 싶지 않아요
좀 더 따뜻해지면
따뜻한 공기 내 방문 틈에 새어들면
따뜻한 몸, 완성된다면
그때 문을 열겠어요
내 집 문을 두드리지 마세요
지금은 나갈 수가 없어요
미완의 내 얼굴, 보여드릴 수가 없어요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더푸른출판사, 2025.
“무의미한 존재의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각별한 위로 < 신간+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무의미한 존재의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각별한 위로 - 미디어 시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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