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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사랑의 전류가 교차하는 시의 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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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5. 12. 2.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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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신의 다섯 번째 시집 미래는 미장 또는 미장센아침달시집으로 발간

 

 

하린 기자

2016현대문학신인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 시집 비금속 소년』 『홍콩 정원』 『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 『미분과 달리기를 펴냈던 정우신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미래는 미장 또는 미장센을 아침달 시집으로 출간됐다.

 

정우신은 이전 시집들에서 해체되고 미분된 몸, 흐르는 시간과 전류처럼 유동하는 감각, 일상과 죽음 사이의 긴장을 독특한 이미지로 포착해 왔다. 이번 시집에선 사랑과 존재, 언어와 일상의 경계를 섬세하게 탐색하며 비어 있음으로부터 그동안 누벼온 경로를 재검색하고 나아가 도래할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1부에서 정우신은 갈라지고 훼손된 몸과 사라져 버린 존재의 감각을 포착하는 것에 집중한다. 공장, 고물상, 일상의 공간에서 분화되고 미분된 몸들을 묘사하며 죽음과 삶의 간극에서 나타나는 고통과 상실을 직시한다.

 

2부의 중심에는 버들치의 사랑이 있다. 존재는 끊임없이 흐르고 흔들린다. 물속을 유영하는 버들치는 정우신의 시선 속에서 인간의 불안과 유동하는 감정을 대리하기도 한다. 흐르는 시간과 전류처럼 유동하는 감각, 인간과 자연 그리고 삶과 기억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섬세하게 엮어내는데, 시인은 이를 통해 일상의 순간들이 어떻게 기억과 감정 속에서 서로 연결되고 흔들리는지를 보여준다.

 

3부는 기계음과 생활어, 도시의 풍경이 교차하는 언어의 장이다. 정우신은 사랑과 상실을 동시에 경험하는 인간의 내면을 그리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관계가 어떻게 미세하게 흔들리는지 보여준다.

 

4부에서는 죽음과 상실이 가까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루며 절망을 관조하면서도 이를 견디는 일상의 수행을 보여준다. 화자는 반복되는 행동과 공간적 이동 속에서 슬픔과 불안을 견디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모색한다.

 

사랑과 교육,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시적 회로의 완결편이라 할 수 있는 5부에서 정우신은 가족과 타인에게 닿는 전류처럼 사랑을 새로운 흐름으로 변환하는 방식을 시를 통해 구현한다.

 

정우신은 미래는 미장 또는 미장센에서 사랑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는 한 인간의 심리적 양상을 기계음과 생활어, 종교적 기호와 도시의 풍경이 교차하는 복합적 언어의 장으로 펼쳐 놓는다. 문학평론가 송현지는 해설에서 시인은 시간을 좌표화하고 재배치하여 그 흐름을 다시 설계하는 기하학적 회로를 구성함으로써,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에 완전히 휩쓸리지 않는 방법을 찾은 듯하다라고 언술했다.

 

일상에서 고단함과 불안을 느낀 누군가는 삶과 시간과 관계가 어찌 흘러가는지 잘 모르겠다고 여길 것이다. 그럴 때 정우신의 시를 읽어보면 좋겠다. 그의 시는 단어 자체보다, 단어가 만들어 내는 흐름과 감각으로 독자를 감싸는 힘이 있다. 독자들은 새로운 차원의 시간을 만난다. 읽는 이는 자신이 지나쳐 온 순간, 놓쳤던 관계, 그리고 사소하지만 소중한 감정들을 떠올리며 일상에서 자신만의 미장 또는 미장센을 찾아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뻐꾸기가 놓인 방

 

정우신

 

새인 줄 알았지. 그냥 새소리인 줄 알았지. 그 방에서는 새소리가 잘 들리니까. 그 방에 창문이 있었어? 새벽이면 가로수 잎사귀들이 일제히 쫑긋했지. 너는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지. 뻐꾸기 머리를 쓰다듬다가 창밖을 바라봤지. 기도를 오랫동안 할 때 새소리가 났지. 새소리가 나서 다시 아침인 줄 알았지. 그것도 그 방이었나? 그 방에서 나무를 베는 소리였지. 쓰러진 나무 사이를 걷다 보면 겨울이 왔지. 빗소리가 커졌지. 새소리가 나는데 새는 보이지 않고 의자가 녹슬어 갔지. 초침 소리가 들리는 곳엔 슬픈 일이 많았지. 허공의 시간을 재보는 침엽수를 생각할 뿐이었지. 빈방에 남은 오렌지를 생각할 뿐이었어. 그냥 새인 줄만 알았지. 새소리를 들어서 네가 잘 있는 줄 알았지. 그 방의 잎사귀는 전부 이명을 앓았지. 그 방의 가구를 만질 수 있었나? 너는 그 방에서 새를 닦고 있었지. 창밖이 뿌옇게 채워지고 있었지. 그 방에 네가 있었어? 그 방의 향은 꺼지질 않았지. , 음악, 바닥, 성령이 있었지. 어쩌다가 네가 너의 소리를 듣는 방이었지.

― 『미래는 미장 또는 미장센, 아침달,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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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치의 사랑

 

정우신

 

버들치는 사랑받았다

 

버들치는 렌즈를 닦는다

 

버들치는 십분마다 뛰쳐나가고 두 시간씩 이동한다

 

버들치는 검수원을 만나기 전 버들치를 먹는다

 

버들치는 손가락보다 짧거나 길다

 

버들치는 정류장 옆 나무에 온종일 서서 버들치와 대화한다

 

버들치는 옆구리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궁금하다

 

버들치는 상점 유리나 거울에 난 손자국을 보면 견디기 힘들다

 

버들치가 종점에서 졸고

 

아홉 번째 버들치가 물비린내 가득한 방으로 돌아왔을 때

 

이십 년이 한여름의 댐처럼 단번에 쏟아질 때

 

버들치는 자신이 몇 번째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한강대교 펜스를 붙잡는 동안

 

손가락 사이로 버들치가 흘러나왔다

― 『미래는 미장 또는 미장센, 아침달,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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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위

 

정우신

 

운전을 하다가 차를 갓길에 세운 건

 

언젠가 고라니가 나타날까 봐

 

등 뒤의 누군가가 갑자기 나를 푹 찌를 것 같아서

 

아침에 밥을 안 지어놓고 온 것 같아서

 

남은 두부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오지 않아서

 

당신이 웃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몸속에 꽃이 피어서 피지 않아서

 

검은 핏줄이 혹시 나에게도 번지지 않을까

 

누군가 차에 시동을 걸지 않을까

 

정말이지 내가 이제 그만하자고 말한 건

 

차에도 침대에도 길거리에도 지하철역에도

 

당신의 눈동자 속에도

 

꿈속에도 키위가 놓여 있어서

 

그것이 심장처럼

 

나를 작동시키는 것 같아서

― 『미래는 미장 또는 미장센, 아침달,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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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육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정우신

 

소매가 당겨지고 뼈마디가 썰렸습니다

 

핀셋으로 혈관을 들었다 놨다 하며 이물질을 제거하였습니다

 

작업 중에는 집으로부터 가장 먼 나라의 공원으로 가서

 

새의 둥지를 옮겨주었습니다

 

어깨에서 자갈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팔에 전기가 돌았습니다

 

나는 귀와 발가락을 움직여보았습니다

 

날짐승 울음이 빽빽하게 찬

 

숲을 걸었습니다

 

줄기가 돋을 생각을 하니 즐거웠습니다

 

오늘은 차가워지는 당신을 위해

 

전등을 달아야겠습니다

― 『미래는 미장 또는 미장센, 아침달,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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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사랑의 전류가 교차하는 시의 회로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2016년 《현대문학》 신인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 시집 『비금속 소년』 『홍콩 정원』 『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 『미분과 달리기』를 펴냈던 정우신 시인이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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