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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진 고요와 응축된 사유로 나타낸 섬세한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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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5. 11. 2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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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미화의 두 번째 시집 나의 아웃, 너의 미래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

 

 

 

하린 기자

 

2010매일신문신춘문예 당선과 2014시인수첩신인상을 받으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석미화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나의 아웃, 너의 미래를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했다.

 

이 시집은 첫 시집 당신은 망을 보고 나는 청수박을 먹는다에서 보여준 정갈함을 넘어, 더욱 깊어진 고요와 응축된 사유를 담아내고 있다. 단순한 침묵이 아닌, 수많은 소리와 감정들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고요는 독자들에게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울림을 선사한다. 또한 이 시집은 삶의 복잡한 층위 속에서 발견하는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며,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자기 내면의 깊이를 들여다보게 하는 힘을 지닌다.

 

고요는 역설적으로 다양한 소리들의 축적으로부터 시작된다. 시인은 삶 속에서 풀려나간 소리들, 검은 동굴을 지나/굴러오는 나무 둥치 소리여우울음소리, 그리고 연필 깎는 소리와 같은 기억들을 다시 불러들인다. 이처럼 사라진 듯 보이는 소리들을 재조명함으로써 시집은 소리 없음과 소리 있음이 공존하는 독특한 시공간을 창조한다. 이는 마치 낡은 악보처럼 수많은 감정을 담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깊은 침묵을 유지하는 모습과 같다.

 

이러한 소리들의 복원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현재의 고요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러한 소리의 여정은 독자들에게 익숙하지만 잊고 지냈던 감각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시집 속 색채 이미지 또한 고요를 더욱 섬세하게 부각시킨다. 특히, ‘검은색이미지는 고요를 만들어 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귤꽃 향기 엄습하는데 첼란을 읽다니지독한 여름이니까와 같은 시에서 반복되는 검은색은 단순한 어둠이 아닌, 수많은 경험과 고통이 응축된 결과로서의 색을 의미한다. 시인은 이러한 검은 빛을 통해 삶의 힘든 순간들을 뱉어내고, 그 과정에서 한 번도 잔 적 없는마음을 재워줄 공간을 마련한다.

 

시집 나의 아웃, 너의 미래는 이처럼 삶의 모든 색이 합쳐져 만들어진 검음을 통해, 마침내 희고 고요한상태에 이르는 시인의 여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궁극적으로 시집은 독자들이 내면의 소란함을 넘어선 고요와 마주하며,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따라서 나의 아웃, 너의 미래는 소란스러움과 속도감으로 지친 현대인들에게 정서의 복원을 가져다주는 좋은 읽을거리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장편

 

석미화

 

유월에 먹은 케이크 개수는 헤아릴 수가 없어요

장마가 시작되는 날부터였지요

 

살구케이크 망고케이크 이별케이크

뱃속에 쌓이는 생크림은 나를 휘핑크림으로 부풀어 오르게 해요

 

케이크 좋아하세요,

기린모형이 서 있는 곳으로 가면 케이크를 산뜻하게

빗줄기가 쏟아지는 계절로 가면 케이크가 끔찍하게

 

우울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요

다음 꿈에서는 무섭지 않기 소멸하지 않기

 

아무도 모르게 도시에서 도시로 흘러 다니기

밤을 새워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어하지요

 

안드로메다에서 아직 내게로 오지 못하고 있어요

유일하게 개와 고양이에게 다녀오기

 

이야기 옆에 케이크가 놓여 있어요

누가 가져다 놓지 않았는데 부풀어 올라요

정유정은 나보다 더 잘 먹어요 주말에는 아이스크림도 먹는대요*

 

내가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케이크는 갸또아이스크림 구겔호프아이스크림

 

고개를 들면 바깥은 새벽인지 저물녘인지

고개를 들 때마다 손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사실 케이크를 한 입도 먹지 못했어요

 

참혹한 장편,

 

끝내기 전에 그 맛을 알면 온통 무너져요

 

* 살인범 정유정의 부산 구치소 식단 기사에 대한 댓글

 

―『나의 아웃, 너의 미래, 시인의일요일,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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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이라는 말

 

석미화

 

멀쩡한 게 하나도 없다는 언덕으로 단풍놀이를 가기로 했다

눈도 코도 입도 흐려진

우리는 붉은 립스틱을 챙겨 길을 나섰고

 

갇힌 여인들이 립스틱이 없어 창백을 감추지 못했다는 아우슈비츠, 그 기억이 왜 떠올랐을까 붉은 기운 돋우려 입술을 깨물었을까

 

무서운 것이 잊혀진 무서운 세상에서

속이 타들어 가야 단풍놀이를 나설 수 있냐고 물어오면

 

고통에는 고통이 없다고

수북한 잎들

색이 바래고 빛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입술을 덮고 구멍 난 잎을 덮고

영혼 위에 두는 발은 흔적 없이 미끄러지는

 

죽음에 차렷 경례,

폭력과 비문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하나둘 사라져간 여인들의 립스틱 색을 찾을 수 없어 핏빛 단풍놀이는 끝나고 무엇을 몸에 문지를까 생기를 찾아야 하는데 벗어나야 되는데

 

말라가는 잎이 많으니 절정이지요 슬픔에는 슬픔이 없는 것, 난장의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죽음에 차렷 경례!

 

절정이라는 말의 멀쩡함,

 

대낮을 나선 우리는 우리라 말할 수 있는가, 한 사람이 되물었다 떨어진 잎들은 색바랜 립스틱으로 오래도록 붉었다

 

입술이 까매지도록 어둠을 물고 있는 날이 거기 있었다

―『나의 아웃, 너의 미래, 시인의일요일,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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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석미화

 

나귀를 봤다

짧은 다리, 둥글고 낮은 잔등 노새도 아닌 진짜 나귀를

 

청도 어디에 살고 있다는 그놈을 보러 가자며 스틸사진 한 장 보내온, 실어증 앓던 그녀가 말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나는 청도를 천축으로 알아듣고 천축국을 허공에 쌓는다 환한 어둠 태우고 내 앞을 천천히 지나가는 봄날

 

세상이 달라질까하여,

 

혜초의 나귀라면 그 변방 봄빛 어디든 따라가 볼까

돌아드는 천산북로는 어디인가 천축국은 얼마나 먼가

 

보이지 않는 길 젊은 혜초는 풍등의 눈빛을 데려오려고 거기 있어 진짜, 라는 말을 타 넘는다

 

하얀 발과 하얀 입 이마에 달을 몇 개나 올려 차며말며 미루나무 긴 귀를 뻗어 올리고 허적허적 눈발을 불어내며

 

그러나 밤새 무겁고 서러운 꿈을 꿔 깊은 골짜기 넘어오고 넘어가고

죽은 말 대가리가 굴러다니는 흰 불면을 지나

 

시간이 달라질까하여,

 

폐위와 옹립의 문장을 얹어볼까

검은 봄이 지나고 있다고

 

모래바람 부는 강이라 느끼지 않는가 붓끝처럼 흔들리며 두루마리 냄새 가득 담은 사막의 눈동자

 

먼 곳에서 방울 소리 펼쳐

다시 말하자 폐위와 옹립을 제대로 읽어내면

 

먼지 속 피리 소리가 들리는 스틸 사진, 실어를 풀어버린 그녀의 입을 빌려 왔다

 

넌출넌출 넘어가는 봄빛

천축을 지나 청도를 비껴서면 흰 산이 우는 소리 가득한 보름달 밝힐까하여,

―『나의 아웃, 너의 미래, 시인의일요일,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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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웃, 너의 미래 | 석미화

석미화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나의 아웃, 너의 미래』. 이 시집은 첫 시집 『당신은 망을 보고 나는 청수박을 먹는다』에서 보여준 정갈함을 넘어, 더욱 깊어진 고요와 응축된 사유를 담아내고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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