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린 기자
2021년 《열린시학》 신인작품상으로 등단한 손영미 시인이 첫 시집 『자클린의 눈물』을 더푸른시인선 007번으로 발간한다. 손영미는 등단 당시 “세계에 응전하는 유폐된 자의식을 끝없이 탐구한 작품들을 쓰고 있었는데, 현실의 불모성이 가진 횡포와 양상에 대응하는 시 세계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평을 들은 바가 있다. 등단 이후에도 상처적 국면을 진정성 있게 다루면서 미학적 측면을 놓치지 않는 시 쓰기를 선보였던 시인이 그동안의 발표작과 신작시를 모아 『자클린의 눈물』을 구성했다.
표제시 「자클린의 눈물」의 경우 자클린과 화자가 동시성을 가지고 현존하는 고통을 음악적 기표를 통해 표출한다. “슬픔의 원본”으로써의 자아가 “활로 심장을” 켜는 비극을 감내하는 장면이 밀도 있게 전개된다. 그런 와중에도 예술가적 본능이 발현되어 “세상의 모든 미물들이 눈을 뜨고 입을” 여는 예술적 동일화를 이루어 울림의 폭을 넓힌다. 이 시에 나타난 전개 과정처럼 손영미는 끝없이 미학적 상황이나 작품이 어떻게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현존성을 갖게 하는지를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해설을 쓴 황치복 평론가는 『자클린의 눈물』을 ‘페시미즘의 비전과 극적 전환의 시적 미학’으로 분석했다. “페시미즘pessimism, 혹은 염세주의厭世主義는 세계가 불합리하고 비애로 가득하며, 행복은 덧없는 일시적이라고 보는 비관적인 세계관”이다. 그 세계관에 따라 “시집을 펼치면 시적 공간이 온통 회색빛의 비전으로 가득 차 있는데, 도저한 페시미즘의 파토스가 불안과 추락의 페이소스를 조장한다. 모든 관계는 깨어지기 마련이고, 결국 모든 존재자는 몰락과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묵시록적 비전이 시편들을 수놓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시집 중간 부분부터 작은 틈으로 비치기 시작한 햇빛”이 “점차 그 농도를 진하게 하고 영토를 넓”혀 “시집 후반부에서는 따듯한 사랑의 언어가 시적 공간을 장악”하는 묘미를 발휘하고 있다고 언술했다.
해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클린의 눈물』은 현실의 불모성을 염세주의적 세계관으로 다루면서 중간 중간 ‘사랑의 언어’로 시적 공간을 채우는 노련한 시적 전략을 갖는다. 회색빛으로 가득한 먹구름을 뚫고 쏟아지는 빛처럼 ‘사랑의 언어’가 독자들에게 따뜻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시편들은 보편적 감정과 개별적 감정이 어우러져 울림과 떨림을 오래오래 안겨줄 것이다.
또한 진정성과 미학성을 동시에 융합시킨 작품들을 감상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자클린의 눈물』은 의미 있는 읽을거리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보이지 않는 나의 눈은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인가
가녀린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
어떤 우주의 기척이 나를 향해 달려온 것일까
나를 태울 것만 같은 빛이
꽂히듯 무대로 쏟아진다
활로 심장을 켠다
머릿속 음표들이 뛰어다닌다
온기마저 놓아버린 나의 심금이 점점 굳어간다
그런데도 비극은 멈추지 않는다
어떤 악기는 천년을 산다는데
나의 사랑과 사람은 5년 만에 떠났다
나의 몸은 슬픔의 원본
첼로여 더 이상 나를 기록하지 마라
너에게 슬픔이 중독되는걸
차마 허락할 수 없다
난 그저 파국의 주인공처럼 감긴 눈을 한 번 더 감는다
안에서 바깥으로 연주가 흐느낀다
이젠 치유와 씻김이 다른 말로 떠돌지 않는다
한 번도 나를 향해 귀를 열지 않았던
세상의 모든 미물들이 눈을 뜨고 입을 열고 나를 향해 달려온다
소중한 것과 비루한 것
강한 것과 약한 것들이 전부 다 음악이 된다
뇌와 척수가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서도
박수와 환호가 환청으로 떠돈다
마침내 나는 음악과 슬픔의 궁극
눈물과 눈물이 끝없이 이어진다
*프랑스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1819-1880)의 첼로 곡
―「자클린의 눈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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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 묶은 김치로 자작자작 끓여낸 찌개처럼 너는 다가왔다
한쪽 다리가 부러져 버려진 나무 의자처럼 나는 너에게 기댔다
폐업한 후 방치된 폐건물처럼 너는 멀어졌다
정전으로 멈춘 엘리베이터 안에 날마다 갇힌 것처럼 두려웠다
온몸 피멍 뚫고 바위틈 속에서 피어오르는 민들레꽃처럼 나는 무게에 짓눌려 어깨가 아팠다
동이 틀 때 종탑 위 십자가의 떨림처럼 재회는 오지 않았다
오크통에서 십 년 동안 숙성된 와인처럼 내밀하게 나는 침묵했다
공기처럼 후일담은 허다했고, 일기예보처럼 예감은 빗나갔다
태양빛 비켜 새벽 달빛은 슬프게 기울고
새들은 나무 위에서 새봄을 알리지 않는다
담장 밑 수선화처럼 반쯤 고개를 든 채
나는 차가운 대리석 바닥처럼 온기를 자주 버렸다
은밀한 까마귀처럼 누군가 다가와 속삭였다
다시 돌아오면 진짜 사랑이 아니야
먹구름처럼 불길한 것이 나를 끌고 외길을 가고 또 갔다
―「사랑을 위한 비유법」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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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계속 퇴고 중이다
무차별적인 글 속에 퍼부은 자책을 밤새 고치는 중이다
처음부터 감정이입과 노출이 심한 이미지를
문장들은 쉽게 허락했다
이별이 오탈자를 부추긴 채
군데군데 끼어있는 지금
더 나아갈 수도 없는데
구성이 허술하다 못해 뻑뻑하다
후일담이 우리가 모르는 우리를 삭제했다
당신은 말줄임표가 되었고
나는 쉼표로 돌아섰다
생략법처럼 소문이 놓여있다
인과성 없는 비참이 더디게 머물고
위로를 덧붙이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밀고 당기고 두드리자
패기 어린 아집과 독선이
서서히 힘을 빼고 문맥을 벗어나려 한다
당신과 내가 서로 바라보던
아련한 뒷모습처럼
지난날의 아픔이 암시가 되어 서성이다
줄거리 속을 빠져 나간다
여운이 유유히 흐르는 에필로그가
주인공이 모르는 문제를 제시 한다
첨삭이 모두 끝나고 앙상한 뼈로
내가 남아 있다
미친 듯이 부끄럽다
또다시 삭제키를 누른다
―「퇴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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