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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크한 ‘재미’로 풀어낸 박제영식 풍자와 해학 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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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5. 11. 1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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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 시집 아흔아홉 개의 달과 아흔아홉 번의 겨울달아실 시선으로 발간

 

 

 

하린 기자

 

1992년 등단 이후 삼십여 년 동안 여섯 권의 시집을 통해 삶의 슬픔과 고통을 해학으로 어루만지고, 사회의 불공정과 부조리를 풍자로 비판해 왔던 박제영 시인이 일곱 번째 신작 시집 아흔아홉 개의 달과 아흔아홉 번의 겨울을 달아실시선으로 펴냈다.

 

박제영의 시편들을 단순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거칠게 요약하자면, ‘서사(敍事)와 사설(辭說)’이라는 뼈대에 풍자와 해학이라는 살을 입히는 식으로 거듭 발전해 왔다. 읽기에 불편한, 자신만의 시 세계에 갇힌 시들과는 다르게 삶 안에 흐르는 생의 비의를 예민하게 포착한 다음, 그것을 유니크한 재미로 풀어낸다. 그로 인해 매번 시집을 낼 때마다 그의 시집은 시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는 극적인 서사를 동반하고 판소리 사설 같은 경쾌함을 가미하여 자연스럽게 을 돋군다.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를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하는 창작 기법을 선보인다. 이번 시집엔 특별히 사랑이란 주제가 한 축을 이룬다. 이를 두고 전윤호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박제영 시인은 원래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런 그가 입심에 더해 아이러니와 말장난까지 장착했으니 시집을 읽다가 현기증이 다 난다. 다행스럽게도 그 이야기의 주제가 사랑인지라 그래도 읽다 보면 고개도 끄덕여지고, 누군가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내 얘기 같기도 하다.”

 

또한 유성호(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문학평론가는 박제영의 시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언술한 바 있다. “박제영의 시는 가령 썰물과 밀물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술래잡기의 형식으로 찾아온다. 그는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멋진 문장수선소를 차려서 한 페이지를 읽는데/천년이 걸리는 사람으로 살아가는가 하면, 시인으로서 당신의 부재를 완성할지도 모를시간을 술래잡기처럼 숨기고 기다리고 끝내 그것을 찾아내 우리에게 들려준다.” 단순히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시의 기저에 깊이와 오묘한 맛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이번 시집의 발문을 쓴 시인 박정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감출수록 드러나고 드러낼수록 감춰지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시의 경지에 그는 당도해 있다. 감춤과 드러냄이 서로 길항하며 이룩하는 선명함이 시의 바탕을 이루었으니 그의 시는 이상하게 재밌고, 이상하게 아름답고, 이상하게 감동적이다.” 박제영 시의 미학적 측면을 강조한 말이다.

 

아흔아홉 개의 달과 아흔아홉 번의 겨울은 이상하게 재밌고, 수상하게 아름답고, 괴상하게 명랑한 시집이다. 그런데 그것이 갇힌 극장에서 이루지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과 함께 즐기는 열린 극장에서 격이 없이 이루어진다. 박제영만의 시가 갖는 깊이오묘함사랑을 이번 시집에서 제대로 맛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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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사랑은 끝말잇기와 같아서

 

박제영

 

탱고에는 실수가 없어, 도나

 

사랑은 끝말잇기와 같아서

슬픔과 아픔 같은 울증의 감정은 물론

기쁨과 미쁨 같은 조증의 감정도 숨겨야 해

어설픈 코스튬을 흉내 내서도 안 되지

새벽녘이나 저물녘은 피아 구분이 어려우니

조심 또 조심하고

붉은 제라늄은 독초라는 것을 명심하고

라듐이나 이리듐 같은 맹독은 더더욱 피해야 하지

 

사랑은 끝말잇기와 같아서

필사적으로 피하려 해도 언젠가는

금기의 단어와 맞닥뜨리게 되는 것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차오르다가

어느새 슬픔으로 치다를 테니

파국을 피해 종횡을 누빈다 한들

마침내 픔과 쁨과 튬과 듐과 늄 그리고 녘이라는

외통수에 다다르는 것이니

그것이 사랑이라는 끝말잇기의 숙명이지

 

하지만 애인아

절망할 이유는 없어

 

사랑은 끝말잇기와 같아서

둘뿐 아니라 셋도 넷도 가능하니까

내일 또 누군가를 만나서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실수하고 스텝이 엉켜도 계속 추는 거야 그게 탱고야

―『아흔아홉 개의 달과 아흔아홉 번의 겨울, 달아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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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박제영

 

쌀을 안치는 저 오래된 애인이

오늘 처음 만난 이국의 여자였으면 좋겠다

아무도 모르는 저 오랑캐 여자와

아무도 모르는 북쪽 오슬로 숲에서

모르는 북쪽 말과 남쪽 말이 서로를 더듬어

낙엽처럼 뒹굴다가 낙엽처럼 붉어져서

벌거벗은 몸 위에 이국의 언어를 필사하다가

통음과 통정으로 마침내 한통속이 되었으면 좋겠다

속으로 하무뭇하니 콧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쌀을 안치는 애인에게 한다는 말이

그런데 애인아, 오랑캐 여자는 어디로 갔을까

이상하지 화를 낼 줄 알았던

오래된 애인은 기꺼이 처음 만난 오랑캐가 되었으니

쌀이 밥이 되든 죽이 되든 무에 상관이랴

오늘 밤은 오랑캐의 말을 반드시 배우리라

캄캄한 오슬로 숲이 크엉 크엉

오랑캐의 울음소리로 저물어가다가

달 하나를 낳으리라

―『아흔아홉 개의 달과 아흔아홉 번의 겨울, 달아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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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이별에 관한 포에트리 슬램,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를 위한 서곡

 

박제영

 

내가 오는 동안

너는 갔구나

네가 가는 동안

나는 왔구나

오는과 가는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 하는 동안

갔구나와 왔구나

사이는 점점 더 벌어져

마침내 멀어졌구나

멀어진 것들이

오도 가도 못 하는

동안을

누구는 밀물과 썰물이라 부르고

누구는 자전과 공전이라 부르네

허무하고

맹랑하고

맥락 없는

언어의 시소게임을

무게 중심이 사라진 문장을

당신이 시라고 소리 내어 읽는 동안

나 잡아봐라

영구 없다

나는 게 눈 감추듯

사라질 테다

―『아흔아홉 개의 달과 아흔아홉 번의 겨울, 달아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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