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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도 높게 응축된 정동과 감각적 언술이 펼친 현재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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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5. 10. 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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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훈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산 위의 미술관문학동네시인선으로 발간

 

 

하린 기자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류성훈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산 위의 미술관을 문학동네시인선으로 발간했다. 그는 첫 번째 시집 보이저 1호에게(파란, 2020)에서 우주라는 아득한 망망대해를 건너가는 고독함을 시로 형상화하며 자꾸만 멀어지는 존재 사이에 작용하는 척력을 발견해 냈으며, 두 번째 시집 라디오미르(파란, 2023)에선 모호함과 불확실성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시적 언어로 구현해 내는 작업과 함께 몽타주 기법을 활용하여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풍경에 두고 조망하는 독특한 시 세계를 펼쳤다.

 

그로부터 2년 만에 펴내는 세 번째 시집 산 위의 미술관에서 시인은 밀도 높게 응축된 정동과 감각으로 현재의 순간들을 담는다. 과거에 대한 후회도, 미래에 대한 기대도 없이 시집은 오롯이 현재의 감각들로 가득 차 있다. 현재에 단단하게 발을 디딘 시집 속 화자는 독백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외면하고 지나쳤던 슬픔과 공허를 날렵하게 포착해 감각적으로 언술한다.

 

전통적인 서정시의 형식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으면서도, 감정과 정서의 표현이라는 서정의 본질에 더욱 가까이 다가간 바가 있는 류성훈은 독백을 중요한 시적 요소로 활용한다. 그로 인해 그의 시편들을 살펴보면 누군가의 속마음을 우연히 엿듣게 되었을 때처럼 예민하고 섬세한 정동을 느끼게 된다.

 

또한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는 인물들, 단정할 수 없는 감정들, 수습되지 않는 기억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그로 인해 이 시집은 날것의 현실을 역설적이게도 구현한다. 이 시집에서 말하는 날것의 현실은 삶의 회복이나 성장과 거리가 있다. 화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결과 앞에서 원인을 묻지 않는다. 대신 그가 구사하는 언어는 마치 몸안으로 공기를 들이마시듯, 더 깊은 곳까지 가 닿는다. 그 예로 표제시인산 위의 미술관을 살펴보겠다. 이 시는 죽어가는 아들 옆에서/ 아비는 삽을 들고 서 있다는 상실의 상황과 함께 시작된다. 류성훈은 이 상실의 장면을 평면적으로 그리지 않고, 삶 속에서 상실과 그에 따르는 애도가 어떻게 자리하는지 전체를 조망한다. 따라서 이 시에서 애도는 극복의 단계가 아니라, 존재의 한 방식이다. 이처럼 류성훈은 애도의 종결과 현실 수용이 단순한 회복이나 성장의 서사가 아니라 비가역적인 상실을 끌어안는 행위임을 나타낸다.

 

이 시집의 화자들은 끊임없이 지금에 붙들려 있다. “아무도 내일을 갖고 있지 않아”(산 위의 미술관)라는 구절에서 느낄 수 있듯, 과거나 미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과거는 언제든 현재로 재점화될 수 있는 사화산”(한라봉아 성훈이 먹어라) 같은 시간이며, 미래는 희망이라기보다 유예된 공허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 시집의 시간은 단 하나, 현재뿐이다. 버티기 위해 더 소소해지고, 버텨도 다시 되돌아오는 일상들과 이름을 붙이지 않은 채, 끝내 엎질러진 상태로 남겨둔 상처를 류성훈은 직시한다.

 

과거의 상처와 불투명한 미래가 우리를 만들었다거나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상태에서 현재만을 살아가는 화자들. 그런데 그 화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건 앓는 소리가 아니라 그런 삶도 충분히 진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류성훈의 시 세계가 갖는 변별점이 여기에서 발생한다. 그 변별점이 궁금한 독자라면 산 위의 미술관을 꼭 읽어볼 일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플라스틱 카네이션

 

류성훈

 

5월에 아빠를 보러 가려면

꽃다발도 플라스틱으로 사야지

 

보들레르도 조화를 좋아했다지

그런 소리나 중얼거리며 나는

만 원 어치의 빨갛고 풍성한

한 뭉치를 케이블 타이로 동인다

 

사람 없는 햇빛 아래

물 다 빠진 꽃들을 보며 자라온

유년과, 초년과, 멋쩍은 청년들을

 

이제는 나눌 수도 있고 새것으로

갈아놓으러 올 수도 있지만

 

다행인 건 그래도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걸 우리가 직접 만들어가는 길

 

의지나 추억만으로도

살 수야 있지, 간혹 꽃만으로

살 수도 있는 봄의 물리법칙이

아직 그곳의 밭을 갈고 있어도

 

라일락 냄새가 바람을 타고 와

연등 빛을 문지르는 네 손톱 밑에

다시 어린 꽃물 드는 걸 본다

―『산 위의 미술관, 문학동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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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

 

류성훈

 

계절이라는 말이 인연의 뒷모습을 닮아갑니다 당신과 차나무 밭을 처음 보았던 날 가지 뒤에 숨어 피는 꽃들도, 피고 지는 풀빛 무수한 시간들이 동그랗고 단단하게 묻히는 모습도 보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대해 들려줄 줄도 몰랐습니다 추억하기 위해서도, 뜨거운 마음들 돌아 돌아 더 짙어지기 위해서도, 시든 이파리 위를 더 힘줘 걸어야 할 봄도 있었기에 나는 오래 미뤄야 할 안부에 대해 궁리했습니다 아무리 부쳐도 읽히지 않을 편지처럼 그냥 계속 말하고픈 때가 내게도 오게 마련이었나봅니다 당신이 좋아하던 계절을 먼저 떠올리듯 풍향을 바꾸는 한낮, 살아 한 번 더 보고 싶단 말조차 전할 수 없어 다행이던 뒷모습이 흰 봉오리처럼 아른거립니다

―『산 위의 미술관, 문학동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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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류성훈

 

다 커서도

주머니에 사슴벌레를 넣듯이

자랑할 수도, 넣어둘 수도 없는

시간들만 주워모았다

 

그날 가장 완벽한 솔방울과

차나무 밑 단단한 씨앗들과

매미가 든 매미 허물과

꿩의 더러운 꽁지깃을 쥐고

추억하고 싶었던 건

사람이었을까 바람이었을까

 

당신의 집 앞이 온통

상수리 천지인 것을 알고

지겨운 줄도 몰랐던 기다림이

동글동글 단단히 여물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들과

가장 깊숙이 잘 넣어둘 것들은

왜 비슷한 모습이었을까

 

일주일간 매일 사 모은 복권이

일시에 쓰레기통에 들어가듯

그 일이 다음주에도 반복되듯

 

당신에게 보이지 못한 시간들과

채 숨기지 못한 마음들 모두

소리보다 먼저 떨어지는

가로수들, 툭 툭

자리를 턴다

―『산 위의 미술관, 문학동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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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주크박스

 

류성훈

 

팔을 더듬거리며 너를 찾다

내게도 나 없는 시절 속에서

몇 번이고 잠이 깨고

다시 잠이 든다, 잠 속에서

쌀겨처럼 까슬까슬한

아침이 무심히 와 있다

 

떠지지 않는 몸

감기지 않는 심장

실눈 앞보다 흐린 볕이

묘지 주변을 뛰논다 아이처럼

혼자 건강히, 안녕히

애써 따뜻한 노래만 찾던

너에게 햇빛을 덮으며

 

안녕,은 잘 웃지 않아서

안녕, 갑자기 팔이 안 올라가

심장이 마치 거기 있었던 듯

 

아끼던 이에게도

아낌이 없던 이에게도

저물지 못하던 날들이

빈 호주머니만 뒤진다

―『산 위의 미술관, 문학동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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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기자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류성훈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산 위의 미술관』을 문학동네시인선으로 발간했다. 그는 첫 번째 시집 『보이저 1호에게』(파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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