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도시 산책자가 써 내려간 바로미터의 시학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5. 10. 26. 12:37

본문

전영관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에덴 입장권청색지시선으로 발간

 

 

하린 기자

 

2011작가세계신인상으로 등단한 후 시집 바람의 전입신고』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슬픔도 태도가 된다』 『미소에서 꽃까지와 산문집 좋은 말』 『슬픔에 참견하지 않는 마음등을 발간한 바 있는 전영관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에덴 입장권을 통해 독자들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시인은 첫 번째 바람의 전입신고(2012)에서 시의 원형을 복원하려는 의지와 삶의 순간들을 기억하게 만드는 언어의 힘을, 두 번째 시집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2016)에서 일상의 환멸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지극한 삶의 성찰을, 세 번째 시집 슬픔도 태도가 된다(2020)에서 아픔이 가져다주는 섬세한 깨달음을, 네 번째 시집 미소에서 꽃까지에서 세상의 불행에 응전하는 다양한 의미의 미소에 대해 보여준 바가 있다.

 

이번에 발간한 다섯 번째 시집 에덴 입장권을 통해서는 소요자가 된 시인이 직관적으로 감각하고 사유한 도시의 편린과 고독, 절망, 고통 등을 기록하듯 형상화한다. 혜안을 가진 소요자가 되어 도시의 세목들을 통찰하듯 읽어내고 미학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본지에서는 전영관 시인이 이번 시집을 통해 추구하고 있는 시 세계를 조금 더 알아보기 위해 미니인터뷰를 진행했다.

 

-----

 

질문: 시집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다섯 번째 시집을 발간한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답변: 시집 출판은 퇴고가 끝났다는 뜻입니다. 시집의 생인손에서도 토로했듯이 이제야 퇴고지옥이 끝난 겁니다. 후련하면서도 시집을 펼쳐보지 못 하겠고 또 시인 누구라도 오류를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불안한 저를 격려하는 기분이랄까요. 다음 시집에서도 이럴거라고 수긍합니다. 대중 앞에 창작물을 내놓는 사람의 숙명이겠죠. 숱하게 무릎이 깨졌는데 한 발 앞으로 나간 느낌입니다.

 

-----

 

질문: 네 번째 시집과 다섯 번째 시집 사이 변화 양상이 있나요? 아니면 같은 흐름을 갖고 있나요?

답변: 세 번째인 슬픔도 태도가 된다때문에 실제로도 슬픈일이 자꾸 생기나 싶어서 네 번째는 아름답고 좋은 일들을 바라는 마음에서 미소에서 꽃까지로 했습니다만 운명론자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 능동적으로 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시집 자체를 에덴 입장권으로 정했습니다. 인내, 열정의 보답인 입장권 사서 당당하게 들어가겠다는 거죠. 거기 역시도 슬픔, 미소, 고독이 그득할 테니까 선택은 제 몫이겠죠. 같은 흐름이라면 제 나름의 응시, 연민, 재해석입니다.

 

-----

 

질문: 시집 제목이 어떤 의도가 있는 듯 보입니다. 제목에 담긴 특별한 의도나 각별한 의미가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답변: 앞에서 에덴을 전경화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입장권에는 또 다른 계약서라는 양가감정이 있습니다. 제가 이사를 많이 했기에 벗어나고 싶은 마음, 장남이 전세사기를 당한 탓에 안전한 입장, 시집의 주류정서인 독신 도시 생활자의 평화 같은 지향이 의도라하겠습니다. 혼자가 독거라는 일인분의 상징이라 하겠습니다.

 

-----

 

질문: 시집 속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나 특별한 사연이 있는 작품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답변: 청평호입니다. 아내와 북한강 줄기의 카페를 탐방하는데 대형 베이커리카페가 자본주의적이고 소란스러운반면 <아우라>라는 카페는 호젓했고요. 오후 내내 물가에 앉아 얘기하다가 슬픈 일, 소용 없는 일은 서로가 피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나 장남이나 심각한 상태를 겪었고 37년을 부부로 살았으니 눈물버튼을 잘 알기 때문이죠. 그런 심사를 고백의 형식으로 가감없이 써서 애착이 갑니다.

 

 

-----

 

질문: 이번 시집을 통해 시인님만이 전달하고 싶은 특별한 주제나 주제 의식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답변: 잰 체 해봤자 인간은 거기서 거기(모녀) 아니겠습니까(웃음). 제 시 역시 거기서 거기라는 반성을 하면서도 애틋함의 시선만은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이 각박한 세상을 사랑도 없이 어찌 살겠습니까. 산책하며 쓴 시와 가만히 앉아 바라만 보는 마음을 받아낸 시가 섞여있는데 아무래도 응시한 것들이 물기가 있습니다. 카페 테라스, , 분리배출, 같은 시편입니다. 마음의 눈으로라도 이웃을 바라보자는 주제를 세웠습니다. 택배시대니 택배원같은 시를 예로 들 수 있겠고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희망도 없더라고요. 희망은 겪으며 만들어지는 무엇이었습니다. 거개가 SNS를 통해 사생활, 감정을 드러내면서 외부화 된 자신을 느낄 것입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힘을 얻는 일은 결국 고독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힘내라는 댓글처럼 힘빠지는 것도 없죠. 결론적으로 모든 위로는 일인분이라는 겁니다. 자력으로 에덴입장권을 마련하려고 애썼습니다.

 

-----

 

질문: 시를 쓰는 일 말고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나 취미 활동이 있나요?

답변: 어릴 때부터 낚시를 다녔고 서른 무렵엔 스노우보드에 열광했고요. 직장생활 때는 골프에 빠졌었는데 특히 플라이낚시는 지금도 다닙니다. 영화 <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낚시입니다. 영화평을 쓰고 싶지만 능력 밖의 일이라 영화만 열심히 봅니다. 하나 더 한다면 분재를 해보고 싶습니다.

-----

 

질문: 시를 쓸 때 전영관 시인님만의 패턴이나 루틴, 혹은 버릇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답변: 저는 서재 붙박이 스타일입니다. 창작촌 같은 곳에 간 적도 없는데 이런 패턴은 아내의 배려에서 굳어진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희생이죠. 집이 편하고 서재에 앉아도 고요하니까 몇몇 시집들을 꺼내보고 묵은 사진들을 들춰보다가 한 가닥 잡으면 쓰기 시작합니다. 산책길에서 본 것들을 소재로하는데 메모만 했다가 며칠 지나서 씁니다. 제 나름의 숙성이겠죠. 자동태엽시계를 책상에 뉘어놓기만 하니까 태엽도 감으며 시계를 매만지는 버릇이 있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시계수집가가 됐을 겁니다.

 

-----

 

질문: 지금까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시집을 읽게 될 독자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크게 구분하면 걷는 느낌의 산책시편’, 대답 없는 천사에게 하는 말(기대와 실망)’,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는 개인이렇게 셋입니다. 정서의 온도가 낮다고 느끼는 독자님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치는 우울, 불안으로 이해하시면 좋겠고요. 갈망하는 힘으로 살아가지만 도망가려는 심사가 삶을 이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난을 피하려는 힘으로 여기까지 살아냈습니다. 앞으로 시집과 산문집을 더 내고픈 조급증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출판사가 받아들여준다면 좋겠습니다.

 

 

 

<시집 속 시 맛보기>

 

 

택배원

 

전영관

 

집배원의 유사품으로 인식되는 사람

곧바로 전할 수 있는 1101호가 최고라는 사람

맹견 없는 집을 편애하는 사람

바람과 세월과 달리기하면 일등인 사람

새벽잠 대출로 돌려막기 하는 사람

쌀밥 먹는데 쌀은 무거워 힘겹다는 사람

벨 누르고 도망가는 악동은 아닌데 놓고만 가는 사람

불안과 의심이라는 누명이 덧입혀진 사람

모두가 기다려주는데도 뒷모습이 쓸쓸한 사람

수수료 받는 생계형 산타클로스인 사람

 

트럭으로 질주하니까 그의 급여는 부의봉투에 넣어주는 셈이다 택배가 오지 않을 때에야 그를 찾으니까 부재로 존재를 증명하는 주인공이다 그는 보이지 않으면서 세상을 돌린다 상품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유물론자다 대낮에 일하는데 야행성 느낌이다

―『에덴 입장권, 청색종이, 2025.

 

-----

 

생일

 

전영관

 

아버지는 청양 출신 삼류 투수였다

쓰리볼 카운트에서 직구로 강판을 면했다

종신직 지명타자더라도

허탈함은 피할 수 없었다

한 번 더 던졌는데 볼이었다

볼넷이 된 아버지는

14녀라는 성적을 만회하느라

손가락 물집이 그치지 않았다

스트라이크는 아들

볼은 딸이라는

가부장적 편견도 만담(漫談)이 되었다

투수에게는 던진 공을 자식처럼 여겨야한다는

스포츠정신도 포함되었다

던진 투수보다

받아낸 포수가 죄인이 되는 시절이었다

 

빈곤, 실직 같은 백네임 붙인 강타자들이

아버지를 괴롭혔다

선수는 관중이 자신만 보는 것 같아서

자신을 잃고

그들은 자신의 맥주와 치킨을

즐길 뿐이다

홈런볼을 받으면 행운이 온다고 하지만

호되게 맞아 멀리 날려간 공인 것이다

개중 불행한 주인공을 받은 셈인데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현자는 선수에게 돌려준다

불행은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것 같아도

제가 앉을 만한 곳에 찾아오는 불청객이었다

 

수비수 전체를 관장해야하는 어머니

슬픈 포수, 어머니와 처음 만난 날이다

―『에덴 입장권, 청색종이, 2025.

 

-----

 

부품의 탄생

 

전영관

 

임가공이란 뜻은

주문대로 깎고 다듬어 광내는 공장들의 기술

 

간판에 쓰인 말들이

이러저러한 것들을 마련해드린다는 메뉴로 보인다

탱크도 제작한다는 자신감이다

 

나란한 공작소들에게 주문서를 넣고 싶다

오랫동안 사랑에 사용하지 않은 심장의 녹을 벗길 것

스텐리스 밥그릇은 얼굴이 비치도록 광을 낼 것

아이들용은 수저를 포함해 정성을 다할 것

휠체어 바퀴는 재료비만 받고 작업할 것

 

쇠붙이골목을 달려 봐도 맴돌 뿐이라거나

달려가고 싶은 곳이 아득하다는 이에겐

고성능엔진을 추가로 주문하고 싶다

 

이직한 동료와

노모 곁에 갈 때까지

꺼지지 않는 엔진을 조립할 것

눈물 흘리면 멈춰버리는 경고장치를 부착할 것

 

스피닝 벤딩 밀링 같은 전문용어로

주문만 들어오면 받드는 골목이다

임가공은 명사인데 동사(動詞)가 깃든 것 같아

깎고 다듬고 광내는 뻐근함이 느껴진다

 

중국집 전단지에

면발이 불기 전에 배달하겠다고 적어놓는 동안

경인로 74길 짬뽕국물 노을이

서둘러 도착하고 있다

―『에덴 입장권, 청색종이, 2025.

 

-----

 

새벽

 

전영관

 

나쁜 꿈을 겪고 일어나면

그것들이 휘발될 때까지 침대 끝에 앉아 있었다

옮겨갈까봐 당신을 바라보지 않았다

어서 일어나라고 하려다가

비겁하게 함께 도망가자는 것 같아서

우린 끄떡없다고

거실 TV를 크게 틀어놓았다

해치려는 사람이 생기더라도

적의(敵意) 없이 밀어내는 법을 알게 되었다

 

서로를 토템으로 여기는 집

 

뇌리에 비눗물을 부을 수도 없어서

샤먼의 마음으로 손을 씻었다

기분전환하려면 풍경의 전부를 사용해야하니까

커튼을 활짝 열었다

창밖 새소리처럼

어젯밤의 찻잔 둘을 나란히 정리했다

―『에덴 입장권, 청색종이, 2025.

 

 

도시 산책자가 써 내려간 바로미터의 시학 < 신간+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도시 산책자가 써 내려간 바로미터의 시학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후 시집 『바람의 전입신고』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슬픔도 태도가 된다』 『미소에서 꽃까지』와 산문집 『좋은 말』 『슬픔에

www.msiin.co.kr

 

관련글 더보기